몇 해 전 김응수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과거는 낯선 나라다'(2007)를 본 적이 있다. 영화는 기록 필름 한 조각과 익숙한 풍경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긴 호흡의 인터뷰를 통해 평범한 사람들이 기억하는 과거에 느린 속도로 접근해 나간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며 인터뷰라는 것이 단순하게 전문적인 지식의 자문, 또는 감정을 무차별적으로 끌어내는 인위의 행위가 아니라 진실의 실체에 다가가는 조심스러운 응시의 과정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적지 않은 사람이 과거라고 말하며 그만 잊어야 한다고 반복하는 세월호. 세월호 침몰로 희생된 이들에 관한 기록이 있어 소개할까 한다. 세월호 유족들의 인터뷰 음성을 기록한 금요일엔 돌아오렴이다. 제목 그대로다. 금요일에 돌아온다고 말하고 집을 나섰던 아이들이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 세월호와 함께 꽃 같은 생명은 파도 아래에 묻혔다. 이 육성기록집은 작가기록단이 직접 아이를 잃은 가족을 만나 인터뷰한 기록으로 채워져 있다. 대부분 가족은 사고 당일 아침 연락을 받고 아이들의 옷을 챙겼다고 한다. 아이들의 죽음을 상상도 못 했던 부모들은 진도에 내려가 아이의 옷을 갈아입혀 안산으로 함께 돌아올 생각만 했다. 하지만 그 작은 희망은 무너져 내렸다. 가족이 도착한 진도는 생지옥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아이들은 이름이 아닌 번호가 붙은 주검으로 돌아왔다. '4월 29일에 우리 애가 나왔어요. 205번째로. 애들 시신 확인할 때 보니 사람이 그냥 번호인 거예요. 몇 번 몇 번 몇 번…. 애들이 그냥 번호구나.' (222쪽)

아이들과 그 부모가 경험했던 세상은 그들에게 다시 돌아온 셈이다. 1987년 6월항쟁을 보며 자랐고 IMF 경제위기 때 가족만을 바라보고 버텨왔던 그들인데, 우리 현대사의 급류 끝에서 참사로 아이들을 잃은 당사자가 되어 그렇게 다시 길거리에 앉아 있는 것이다. '87년 6월항쟁부터 거의 30년이 지났는데도 세상은 그때하고 달라진 게 하나도 없어요. (…) 참담하죠. 내 딸을 잃고 나서야 그런 생각이 간절해졌어요. 우리가 꼭 진실을 밝힐 거예요. 이 문제를 지금 해결하지 못하면 30년 후에 나 같은 사람이 또 가족을 잃고 이 자리에 앉아 있지 않겠어요?' (311쪽)

2학년 3반 김소연 학생의 아버지 김진철 씨의 이야기는 읽는 내내 마음이 너무나 아렸다. 소연이는 돈이 없는 아빠 대신 장학금으로 음식값도 계산하고 아픈 팔을 병원에서 수술할 때는 아빠의 보호자도 되어주었다. 그런 딸을 훌륭하게 키워보고 싶었던 아빠의 단단한 꿈은 4월 16일 멈춰버렸다. '수학여행 가기 전에 제가 딸에게 100만 원을 줬시유. (…) 딸이 그래유. "아빠, 돈을 아껴야지. 나 대학 가려면 등록금이랑 많이 들잖아요. 이렇게 쓰면 저 대학 못 가요." 나중에 딸 물건 정리하면서 서랍을 열어보니 조금밖에 안 가져가고 그대로 있더라구유.' (106쪽)

물리적으로 2014년 4월 16일은 과거다. 하지만 그 과거가 단순한 과거가 아닌 이유는 '사람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시간을 재는 기계장치의 시간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그리고 말없이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사람의 시간이다. 이제 그 시간을 기억하는 사람과 그 시간을 기록하는 사람의 노력이 필요하다. 선거에 이기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특별법과 진상규명을 약속하는 저들이 아니라 하늘의 별이 된 아이들의 이야기를 잊지 않고 남겨줄 '사람' 말이다.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