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이들에게 '오월 광주'에 대한 기억은 '핏빛' '광주' 그리고 포연처럼 최루탄 가득 피어오른 캠퍼스 풍경 등으로 점철된다. 1980년에 태어난 이가 올해 35세가 되니 벌써 한 세대를 훌쩍 넘겼다. 그런데도 아직 5월은 우리 모두에게 아물지 않은 상처다. 그래서 다음 세대에, 우리 아이들에 '오월 광주'를 끊임없이 이야기해야만 한다.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

나는 아직도 아픕니다는 어린이와 청소년에 오월 광주를 말하는 책이다. 어린 '아재'가 겪은 오월 참상, 어른이 돼서도 그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아재, 똑같은 고통에 시달리는 '남자'의 이야기다. 결국, 이야기가 지닌 치유의 힘 덕분에 어른 아재는 기나긴 고통의 터널에서 벗어난다.

책 속의 주인공 아재는 열두어 살 어린 나이에 동네 형, 친구들과 저수지에서 물놀이하던 중 느닷없이 쏟아진 총탄에 형과 친구들을 잃는다. '탕, 탕!'. 눈앞에서 고꾸라진 아이들, 물결을 타고 훅 끼쳐오는 피비린내. 공포에 휩싸인 아재는 몇 번이나 물속에 잠겼다 떠올랐는지 모른다. 꿈일 거야. 하지만 꿈이 아니었다. 풀숲 가 하얀 운동화, 빨간 핏방울이 점점이 박힌 하얀 운동화. 꿈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게다가 난리 통에 안부가 걱정돼 할머니 치마폭을 붙잡고 찾아간 형은 처참한 주검으로 만났다.

잊으려 해도, 지우려 해도 계속 엄습하는 공포와 슬픔. 이는 거대한 괴물이 되어 아재가 어른이 되어도 쫓아다닌다. 참혹한 모습이 떠올라 하얀 운동화는 신을 수 없었고, 다시 밀려들 고통이 두려워 형의 무덤조차 찾아갈 수 없었다.

그러던 아재는 트라우마 치료차 찾은 병원에서 '남자'를 만난다. 아재를 괴롭히는 똑같은 괴물에 쫓겨 다니는 남자. 죽은 형과 비슷한 또래의 남자에게 아재는 처음으로 자기의 이야기를 쏟아낸다. 남자를 만나 이야기를 털어놓고 돌아온 아재는 얼마 만인지도 모를 깊은 잠에 빠져들고, 꿈속에서 끝내 괴물과 맞서 싸워 이긴다. 삶의 의욕을 되찾은 아재는 흰 운동화를 꺼내 신고 한 번도 가지 못한 형의 무덤을 찾는다.

아재를 만난 남자는 하루도 편히 잘 수 없었다. 아재가 털어놓은 피해의 이야기는 곧 남자가 겪은 가해의 이야기였다. 30여 년 전 지하도에서 남자는 괴물의 명령을 받고 죽어가는 청년에게 총을 쏘았다. 남자는 절규한다. "난 아니야! 난 절대 너 같은 괴물이 아니라고!" 남자는 힘겹게 지하도 계단을 내려간다. 이윽고 남자는 깨닫는다. 고통의 기억과 마주해야 한다는 것을. 남자도 망월동 묘역을 찾아 나선다.

저자는 이 책의 배경인 광주에서 1967년 태어났고, 광주민주화운동의 시발점이 된 전남대를 다녔다. 중학교 1학년 때 오월 광주를 겪은 저자는 세월이 흘러 두 아이의 엄마가 됐고, 오월 광주의 기억들이 가물가물해지던 어느 날 하얀 운동화를 가슴에 품고 우는 늙은 아재를 만났다고 했다.

작가의 말에서 그는 "광주는 여전히 아프다. 이야기 속 아재와 지하도의 남자처럼 죽지 못해 살아가는 사람이 아직도 허다하다. 그러나 끊임없이 말해야 한다. 두려움 뒤에 숨어 지내면 두려움이 괴물이 된다. 묻을수록 상처는 더 커지는 법이다. 드러내고 표현해야 치유된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