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사과를 깎던 엄마가 건어물 장사를 해보겠다고 선언했다. 가족들은 엄마가 농담한 거로 생각했다. 퍼주는 걸 좋아하는 엄마 성격에 저울에 맞추어 상품을 줄 수 있을지, 수다 떠는 걸 좋아하지만 그건 아는 사람들에게만 한정된 것이라서 손님에게 태연히 말을 걸 수 있을지 등등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마의 고집은 꺾을 수 없었고 그로부터 몇 달 뒤 '고향 건어물'은 문을 열었다.

손님은 많지 않았다. 가게를 연 곳은 시장임에도 상권이 좋지 못했고, 그보다 더 문제가 된 것은 아이템을 잘못 선택했다는 데 있었다. 생선이나 과일과 달리 쥐포나 오징어는 밥반찬으로 그날 꼭 먹지 않아도 되는 음식이고, 술안주로 먹을 때도 편의점에서 소량으로 사들이지 않는가! 지금이야 소자본 창업지원센터 등이 있어서 창업과 관련한 도움을 쉽게 얻을 수 있지만 20년 전에 그런 걸 알 턱이 있었겠는가. 그렇게 가게는 쫄딱 망했다.

이명랑의 장편소설 삼오식당을 읽으면서 엄마 생각이 난 건 엄마의 가게가 있었던 '시장' 때문이다. 가게에 손님이 없어서였을까? 엄마는 주위 상인들과 애틋한 관계를 형성하며 밤낮 수다를 떨었는데, 학교를 마치고 가게에서 숙제를 하던 나도 자연스럽게 시장통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삼오식당'은 마치 그 옛날 엄마가 시장 상인들과 나누던 수다를 듣는 것 마냥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영등포 시장에서 삼오식당을 운영하는 엄마를 둔 딸(지선, 나)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소설 '삼오식당'은 시장이 단지 물건을 사고파는 장이 아니라 '삶'이 펄떡거리는 공간임을 말한다. 소설의 시작은 외국말이라고는 '와이프'밖에 모르는 영등포 장사꾼 영철과 여대 대학원까지 나온 지선이 결혼(상견례 이후)을 앞두고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이때 지선이 자기의 결혼 전후를 가감 없이 전달하고 있기에 독자는 뒤이어 등장하는 시장 사람들의 삶을 진정성 있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영등포 시장에는 별별 이야기가 다 있다. 먼저 지선이 과외를 했던 현미네 집 엄마는 과일가게 0번 아줌마로 통하는데 0번 아줌마의 사연은 참 기구하다. 남편이 노름빚 3000만 원에 내몰리면서 위장이혼을 하고 이후 시장의 인기남 황 씨와 정분이 나 임신을 한 채 딸인 현미에게 쫓겨난다. 다가구 주택에 사는 나와 은지 엄마는 보일러실 사수를 위해 구둣방 사장과 맞서며, 공중화장실 문 앞에 지키고 앉아 오줌이나 똥을 누러 가는 사람들에게 돈을 뜯어내 사람들 복장 터지게 만드는 똥할매 이야기까지 사람들 사연도 생각도 각양각색이다.

앞집에서 뭘 시켜먹는지, 곗돈은 언제 내는지, 누구와 무슨 일로 따귀를 올려붙였는지, 끝없이 이어지는 수다와 듣고 싶지 않아도 들려오는 소문들이 무성한 시장통 사람들의 일상은 날마다 파란만장하다. 생각해보니 상품이 가지런히 진열된 마트에 익숙해져 시끌벅적한 재래시장을 잊고 산 지 오래다. 오늘 저녁에는 이명랑이 보여주는 혼종의 공간, 재래시장에 가봐야겠다. 엄마와 함께.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