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BIFF) 이용관(왼쪽) 집행위원장이 26일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 청년영화페스티벌' 개최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부산시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이 집행위원장은 이날 공식 일정을 소화했다. 김성효 기자 kimsh@kookje.co.kr

① 표적조사 의혹 증폭, 소명 기회도 없었다
② 市 "관둬라 한 적 없다" 李 "사퇴 권고라 들어"
③'영화의전당'과 BIFF 조직통합 논의 안갯속

올해로 스무 살 성년이 되는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최대 위기를 맞았다. BIFF의 최대 스폰서인 부산시(전체 예산 120억 원 중 시비 60억5000만 원)가 BIFF 이용관 집행위원장의 사퇴를 포함한 조직의 혁신을 주문했고, BIFF는 시의 주문을 따를지 말지 결정해야 할 상황에 부닥쳤다. 그런데 일련의 과정이 석연치가 않고 오히려 시가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다. 이번 사태의 쟁점을 짚어봤다.

■지도점검 위력 이리 대단했나

부산시가 이 집행위원장에게 사퇴를 권고한 근거는 BIFF에 대한 시의 지도점검 결과다. 시는 지난해 12월 BIFF 운영에 관한 지도점검을 했고, 지난 24일 19개 지적사항을 통보했다.

그렇다면 시의 지도점검이 어떤 것이고, 얼마나 위력을 지니길래 집행위원장의 사퇴까지 권유할 수 있는 걸까. 시는 시비와 국비 지원을 받는 사단법인에 한해 매년 지도점검을 한다. 시민의 세금을 받아 각종 사업을 진행하는 사단법인이 돈을 제대로 썼는지 확인하는 작업이다. 이는 공공자금을 받는 사단법인에 한해 시행할 수 있으며, BIFF 역시 사단법인으로 매년 지도점검을 받아왔다.

지도점검은 말 그대로 공공자금을 허투루 쓰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절차이며, 만약 문제가 드러날 경우 이를 지적하고 해당 단체는 정관에 따라 시정조치하면 끝난다. 지적사항이 발견되면 해당 단체에 소명의 기회를 줘 바로 잡도록 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번 BIFF의 지도점검은 소명 절차도 거치지 않고 시의 일방적인 통보로 끝났으며, 예산 사용에 관한 지적보다 집행위원장의 거취 문제를 운운하며 조직 혁신에 초점을 맞췄다. 지도점검을 통해 이런저런 문제가 발견됐으니 이 집행위원장이 자신을 포함해 사무국 사람들을 바꾸라고 얘기한 것과 같다. 결국, BIFF 지도점검의 목적이 따로 있었던 것이 자명하게 드러난 셈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올해 BIFF가 20주년을 맞는 만큼 단순한 지도점검이 아니라 조직 전체에 대한 운영의 방향을 새로 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의전당도 혼란 속으로

서병수 부산시장

이 집행위원장의 거취가 논란에 휩싸이면서 덩달아 영화의전당도 혼란에 빠졌다. 이 집행위원장이 영화의전당 직무대행 사의를 표명하면서 대표 자리가 공석이 됐기 때문이다.

애초 계획대로라면 이 집행위원장은 영화의전당 대표이사를 겸임하면서 두 조직의 통합을 준비하고 있어야 할 시점이다. 2011년 영화의전당 개관 이후 재단법인 영화의전당과 사단법인 BIFF를 별도로 운영하면서 여러 가지 불협화음을 빚자 두 조직의 통합이 필요하다는 여론에 따른 것이다. 시가 외부에 맡긴 시 산하기관 조직개편 용역에도 이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며, 오는 3월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이 집행위원장의 거취가 불투명해지자 자연히 두 조직의 조직통합과 개편도 미궁에 빠졌다.

영화의전당 관계자는 "당분간 사무처장이 대표이사 직무대리를 맡아 업무를 보겠지만, 갑작스러운 대표이사의 사퇴에 직원들이 당혹감과 착잡함을 느끼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시 김광회 문화관광국장은 "이 집행위원장이 영화의전당 대표이사 자리를 내놓았다는 보고를 받았지만, 사유는 듣지 못했다. 영화의전당 대표를 다시 공모할지는 좀 더 고민해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사퇴하라고 했다' VS '안 했다'

시와 BIFF가 첨예하게 이견을 보이는 대목은 시가 이 집행위원장의 사퇴를 권고했느냐는 부분이다. BIFF가 전체 예산의 절반을 시로부터 지원받고, 서병수 부산시장이 BIFF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다고 해도 정기총회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시가 집행위원장의 사퇴를 권고하는 것은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초유의 사태다. 시가 영화제에 간섭했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된다.

이 집행위원장은 "지난 23일 시 정경진 행정부시장과 김광회 문화관광국장이 나에게 '지도점검 결과가 안 좋다. 새 인물을 영입해서 조직 쇄신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 '나에 대한 사퇴 권고냐'고 되묻자 '그렇다'고 대답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시는 지난 24일 '이용관 집행위원장의 거취 문제를 비롯한 인적 쇄신 등을 요구했다'는 자료를 배포하고 사실상 이를 인정했다. 하지만 주말 동안 논란이 거세지자 26일 "이 집행위원장에게 그만두라고 한 적은 없다. 인적 쇄신이 필요하니 집행위원장을 포함해 방안을 고민해달라고 말했을 뿐이며, 결정은 BIFF의 몫이다"고 한 발 뒤로 물러섰다.

한편 BIFF는 이날 시의 지도점검 지적사항에 대한 해명자료를 내고 "BIFF는 시로부터 조직혁신 방안과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라는 공식적인 요구를 받은 바 없다. 시가 조직의 변화를 요구하면 언제든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며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