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렘브란트의 '시메온의 찬미가(1669)'. 시메온은 그의 팔 안에 미래의 메시아를 안고 있다. 하느님은 진정한 '갑질'은 사랑이라고 여긴다.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이사야 40, 1)

갑질이라는 표현이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 유행하고 있다. '한국은 갑을 사회다' '재벌가 대표 갑질' '황제 갑질' '땅콩 갑질' 등이 그것이다. 국어사전에는 '갑을관계란 순서나 우열을 나타낼 때, 첫째와 둘째를 이르는 말'로 정의한다. 하지만 불평등한 권력 차가 존재하는 종속관계에서 '갑'은 계약의 우위자를 뜻하고 '을'은 하위 계약자를 뜻한다. 그래서 '갑질'하는 쪽은 대개 진상이고 '을'은 피해자의 자리에 서게 된다는 표현도 어느새 익숙하다.

그리스도교 신앙에서도 '계약'이 존재한다. 하느님은 당신 사랑을 드러내시려고 인간에게 다가오셔서 '계약'을 맺어 주셨다. 구약과 신약은 두 가지 계약의 책이다. 구약성경의 아브람과의 계약이 대표적인 하느님의 약속이다(창세기 15, 18). 신약성경의 새 계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졌다. 하지만 하느님의 계약은 세상의 수의계약(隨意契約)과도 다르다. '묶다'라는 뜻이 포함된 계약에서 하느님이 '갑'이요 백성이 '을'인 것은 틀림없는데, 스스로 묶인 것도 하느님이요, 심지어 제물도 하느님이 준비하신다(창세기 22, 8).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 친히 제사장이 되시고 어린 양의 희생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임을 당하셨다.

가톨릭 교회는 성탄을 준비하며 4주간 '대림 시기'를 지낸다. 주님의 처음 오심을 기억하고 세상 종말에 다시 오심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대림 시기에 반복해서 읽게 되는 이사야서 말씀은 주님께서 왜 오셨는지 알려준다.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40, 1). 하느님께서 위로하러 오신다. 구원의 약속을 완성하시고, 죄로 갈라진 당신 백성의 마음을 치유하러 오신다. 인간의 죄악을 벌하려고 매뉴얼을 찾아오라며 갑론을박하러 오지 않으시고, '마음이 부서진 이를 고치시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 주시러'(시편 147편) 오신다.

"고통받는 사람들 앞에 중립은 없다." 프란치스코 교종이 방한 때 하신 말씀이다. 세월호 추모 리본을 유족에게서 건네받고 반나절쯤 지났을 때다.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으니 떼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권유에 대한 답변이다. "인간적인 고통 앞에 서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게 된다"에서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동'이란 자기 내키는 대로 독설하는 '갑질'이 아니라, 마음에서 울려 퍼지는 하느님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하는 고통받는 당신 백성을 위한 위로다.

하느님은 위로의 갑이시다. 진정한 갑질은 사랑이라고 여기시는 분인가 보다. 그런데 그 위로는 고통받는 종의 노래처럼 스스로 죄인들 사이에 머무르고, 그 자신을 백성의 죄에 대한 제물로 바치는 몫을 택함으로써 완성된 사랑의 위로다. 이사야서에는 십자가를 지시는 예수님을 위해서 이런 글을 미리 남겨 놓았다. '온갖 굴욕을 받으면서도 입 한번 열지 않고 참았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가만히 서서 털을 깎이는 어미 양처럼 결코 입을 열지 않았다'(이사야 53, 7) 백성을 '나'의 백성이라 부르고, 꾸짖다가도 먼저 후회하시고 먼저 다가오시고 먼저 용서하시는 하느님이시다.

성탄절이 얼마 남지 않았다. 사랑의 주인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갑'으로 모신 그리스도인은 어떤 '갑질'을 해야 할까. 위로의 갑질을 해야 한다. 그런데 불완전하기 한량없는 내가 어떻게 세상에서 '사랑의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지난주 성경 말씀들이 격려가 된다.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마'(마태오 8, 7). 다만 너희는 내가 다가설 수 있도록 '광야에 주님의 길을 닦아라'(이사야 40, 3).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