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을 만나는 장소는 정해진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직장이나 가정에서도 언제나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1코린토 3,11. 16)


추억의 시계는 신학교 4학년을 마친 후 군 복무 시절을 떠올린다. 아름다운 성전이 있던 신학교와 달리 강원도 전방에 매일같이 머물 성전이 있을 리 없다. 고달픈 이등병 시절, 조용히 혼자 기도하고 싶은데 장소가 마땅치 않다. 훈련소에서 받은 조그마한 쪽지로 아침마다 재래식 화장실에서 5분간 기도했다. 나는 그곳을 '화장실 3사로(射路)의 성전!'이라고 이름 지었다. 당시 병사들은 재래식 화장실을 사격장 사로에 빗대어 부르곤 했고, 내가 기도하는 장소가 늘 3사로, 즉 세 번째 화장실이었다. 기도 장소는 더러웠고 기도 시간은 짧았지만, 그때 체험은 지금도 거룩한 장소와 거룩한 시간을 묵상하게 한다.

그리스도인에게 거룩한 장소는 어디인가? 예수님과 만나는 자리가 거룩한 장소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셔서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고 공언하시고, 당신 몸을 두고 성전이라고 하신 적이 있다. (요한 2,13-22) 그리스도인은 내가 욕심으로 세운 세상의 집을 무너트리고, 예수님의 몸을 세상 안에서 다시 세워가는 사람이다. 그 거룩함의 장소는 매일 출근하는 직장일 수 있고, 보금자리 가정일 수도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거룩한 시간은 언제인가? 예수님을 만나는 때가 거룩한 시간이다. 그러나 그 만남의 시간은 한정된 순간에만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은 매 순간 우리를 찾아오시기 때문이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루카 19,5) 예수님이 우리 집에 함께 머무는 시간이 거룩한 시간이다. 거룩한 시간은 출근길과 일과 중에도 생겨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성전이란? 구원의 기쁨을 노래하는 '잔칫집'이다. 주님께서 공급해주시는 생명수가 성전 오른편에서 흘러나와서 우리에게 활력을 준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리스도인은 성전에서 잔칫집의 풍성함을 체험한다. '온갖 과일나무가 자라는데, 잎도 시들지 않으며 과일도 끊이지 않고 다달이 새 과일을 내놓는' 까닭이 주님께서 베푸신 은총의 열매임을 알기 때문이다. (에제키엘 47,12) 세상에서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간다는 것은 예수님을 만나서 생기를 되찾고, 구원받은 기쁨으로 잔칫상 앞에서 감사와 찬미의 노래를 부르는 삶이다. (시편 23편)

화장실 3사로의 성전에서 만난 하느님은 오늘도 나에게 거룩한 장소와 시간에 관해 다시 묵상해보라고 재촉하신다. 나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한 거룩한 시간을 잘 관리하고 있는가? 내가 가진 편협한 '하느님 상'은 자비하신 하느님을 콘크리트 성전에만 가두어 두지 않았는가? 예수님과 함께 구원의 기쁨을 누릴 최종 목적지인 천상 예루살렘의 '잔칫집'을 준비한다는 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세상에서 버림받고 아파하는 이웃을 만나는 자리가 하느님의 성전이 될 수 있다. 예수님도 그렇게 가난한 자와 세상 안에서 만나셨기 때문이다. 성전에 관해 묵상일기를 쓰다 보니, 일상의 장소에 살아계시고 일상 속에서 우리를 만나주시는 하느님을 찾아 나서라고 재촉하는 기분이다. 오늘 내가 믿는 하느님은 당신과의 만남을 준비하시며 세상의 이웃에게 나를 파견하신다. 그리고 그분이 사랑하시는 이들에게 가서 평화를 함께 나누라고 마련하신 이 시간과 장소를 축복의 자리, 곧 성전으로 삼게 하신다.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