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끊임없이 말(言)을 한다. 삶의 존재를 규명하는 말로 자기 생각과 감정을 표현한다. 요즈음 말은 말을 위한 말로 또 다른 말을 낳으면서 홍수처럼 넘쳐나고 있다. 여러 매체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자면, 재난을 당해 곤경에 빠진 것처럼 가슴이 답답해진다. 각자 자신만의 견고한 세계에서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때론 다른 말도 자신이 듣고 싶어 하는 말로 바꿔 듣고 있기 때문이다. 대화해도 상대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으니, 서로 통하지 않는 말은 독백과 다름없지 않은가.

누군가에게 전해지지 않는 말을 두고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우리 머리 위에는 거대한 귀 같은 게 있을 거야. 그래서 아무리 하찮고 사소한 말이라도 우리가 하는 말들을 그 귀는 다 들어줄 거야. (…) 그런 귀가 있어 깊은 밤 우리가 저마다 혼자서 중얼거리는 말들은 외롭지도 슬프지도 않은 거야"라고 위로하며 타인의 말을 전달해주는 소설이 있다.

김연수의 다섯 번째 소설집 '사월의 미, 칠월의 솔'에 실린 11편의 소설은 작품 속 화자가 엄마, 누나, 이모 등 일상을 공유한 타인들이 한 말을 "오늘은 그 이야기를 여러분에게 들려줄 작정"이라며 다시금 들려준다. 그들의 말 즉 소설을 읽다 보면, 작품 속 인물과 독자 사이에서 말을 전하는 화자로부터 인간을 향한 예의와 배려가 느껴진다. 절박하고 고통스러운 일상 속에서 어느 순간 중얼거리는 말들이 따뜻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말은 사람들 사이에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폐허' 같은 삶을 함께 걸어왔기에 헛된 시간일 수 없다는 노인의 말, 달이 보이지 않자 구름 뒤에 달이 있다는 엄마의 말, 들을 수 없지만 들리는 기린의 소리, 자정이 넘은 터널에서 들린다는 죽은 엄마의 노랫소리, 이별의 고통으로 생니를 뽑은 전후 작가의 말, 그리고 "빗소리가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우리가 살림을 차린 사월에는 미 정도였는데, 점점 높아지더니 칠월이 되니까 솔 정도까지 올라가더라"라는 영화감독과 동거했던 이모의 말이 그렇다.

소설 속 인물들은 제 말들을 주고받으며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서로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하고 있는가. 지금 겪고 있는 갈등과 고통이 그와 소통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간 서로의 말을 듣는 척만 한 것은 아닌지 자문하고 반성할 일이다. 더는 우리의 말이 독백이 아닌 진정한 대화가 되도록 '거대한 귀'를 열어야 한다. 소통이야말로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일 테니까.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