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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장현정의 무기력 대폭발 <13> 나는 '시민'이 아니다

힘 없는 자 불평하고, 힘 있는 자 귀 기울여라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4-08-25 19:50:14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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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결성한 부산의 인디밴드 '앤'(Ann)은 1집에서 '무기력대폭발'이란 노래를 선보였다. 당시 네 명이었던 '앤'은 2010년 다시 모일 때 멤버 한 명을 보강했다. 한국에서 인디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1990년대 후반 활동하던 뮤지션 가운데 많은 이가 대한민국 인디음악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왼쪽부터 '앤'의 멤버 강희찬 최성훈 장현정 최민수 이대우. 장현정 제공
- 동시대 살아가는 구성원을
- 수평적인 동료로 인식·공감
- 서로의 생각을 털어놓으며
- 진지하게 대화할 수 있어야
- 성숙한 시민사회 발전 가능

내가 이상한 건지 이 세상이 이상한 건지 종종 헷갈릴 때가 있다. 대체로 내가 이상할 테지만, 요즘은 더욱 가슴 속이 헛헛하고 텁텁하기만 하다. 내 알기로, 적어도 불평은 원래 힘없는 자만의 특권이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하는 것이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권력을 가진 자가 뜻과 의지를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다며 갖은 언로를 활용해 불평하고, 힘없는 사람은 통로가 없으니 기껏 SNS 같은 곳에 몇 자 남길 뿐 묵묵히 굶거나 걸을 뿐이다.

위로나 격려도 사정이 비슷한 사람끼리 하는 것이지, 급이 다르다면 무언가 행동을 해야지 말 한마디로 퉁 칠 수는 없는 법이다. 가족이나 친구 사이라도 상황이 다를 때면 설익은 위로가 오히려 얄밉게 느껴질 수 있는 법이니 말이다. 덕담이나 나누자고 약자가 몸을 던지고 자식들을 두고 서럽게 죽어가는 것은 아닐 텐데, 도대체 뭐가 뭔지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겠는 게 요즘의 심정이다.

■시민은 누구이고 어디에 있는가

지금 우리 사회에, 엄밀히 말해 근대적 의미의 '시민'은 있는 걸까. 조급하고 성마른 지식인은 근대를 넘어 탈근대 혹은 후기근대를 벌써 입에 올리고 있지만, 형식적으로 신분제가 철폐됐을 뿐 실제 우리 사회는 여전히 봉건제나 다름없는 전(前)근대적 사회라는 게 내 생각이다. 저마다 스스로 양반이나 중인, 천민이나 노비임을 받아들이고 나아가 공언하며 살아가는 풍경이 스산할 정도다.

시급이나 월급에 따라 행동하는 게 마치 제 분수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라 착각하고 함부로 넘볼 수 없는 부나 권력에는 기꺼이 몸과 마음을 내맡기며 자발적으로 복종하는가 하면 그 반대의 경우엔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예절을 내팽개치고 사람을 무시할수록 제 권위가 올라간다고 착각한다. 시민이 없는 대신 깡패나 벼락부자, 선동가나 광신도 혹은 그렇게 되기를 소원하는 예비 깡패와 예비 벼락부자가 득실득실하다.

따지고 보면, 시민이란 게 그리 만만하게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 우리에게 '시민'이란, 민주주의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발적이며 주체적으로 사회 전반의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처럼 쓰이지만 사실상 그 말이 탄생한 고대 그리스에서는 노예와 여성, 어린이는 제외된 본토 출신의 성인 남자에 한정된 특권 계층을 지칭하는 말이었으니까. 근대 시민혁명 이후에도 국가로부터 사적 이익을 추구할 권리를 보호받으며 부를 축적한 부르주아 계급을 지칭하는 말이었을 뿐이니 우리는 지금 시민이란 말 자체를 다시 재검토해봐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요즘 세상에 도대체 어느 누가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시민이 되기보다 '끼리끼리 인맥, 학맥, 지연에 의지하며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는 편리한 삶의 방식'을 거부하겠는가 말이다. 나아가 그렇지 못한 사람을 순진하고 철없는 사람으로 매도하며 스스로 때 묻은 것을 자랑하는 사회가 되었으니 속된 말로 견적이 안 나오는 수준에 다다랐지 싶다.

■거위의 꿈같은, 성숙한 시민사회 꿈

시민사회가 성숙해간다는 건, 특권에 가까웠던 소수만의 권리가 이질적이고 다양한 계층으로 조금씩 더 퍼져 보다 많은 사람이 함께 선택하고 함께 책임질 수 있게 되어 감을 의미한다. 사실상 실제적인 인류의 진보도, 이런저런 이론이나 사상의 틀을 뛰어넘어 바로 이런 노력이 현실에서 이뤄낸 작은 성취 앞에 붙여졌던 빛나는 훈장이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노동자, 농민, 빈민, 장애인, 외국인 등 수많은 이방인이 존재한다. 그런데 과연 이들이 단지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해서 스스로를 시민이라 생각하고 있을까. 사실상 시민이 되려면 주인의식을 가지고 저마다 튀어나온 못이 되어야 할 텐데 튀어나온 못은 먼저 맞기 일쑤이니 그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자칫 튀는 행동을 했다간 오히려 잘난 체한다느니 과거사가 어떻고, 가족사가 어떻다느니 등 온갖 억설과 추문 아래 마녀사냥의 희생자가 될 확률이 농후하다. 어쩌다 우리는 이런 사회에서 살게 된 걸까. 나이 마흔이 된 마당에, 이제는 어른 탓하기도 멋쩍을 뿐이다.

■이젠 '무기력'도, '대폭발'도 싫다

문득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시민의 불복종'에서 한 말이 떠오른다.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가 떠맡을 권리가 있는 나의 유일한 책무는, 어떤 때이고 간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행하는 일이다."

나는 여전히 힘없는 자는 불평해야 하고 힘 있는 자는 그 말에 귀 기울여 자기가 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아주 작은 것부터 하나씩이라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자선이나 기부는 아름다운 일이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회구성원을 수평적인 동료로 받아들이고 공감하는 일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귀족은 기부하고 자선을 행했지만, 시민은 기부하고 자선하기보다 사회를 바꾸는 실제적 제도와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보호할 힘이 없는 자일수록 왕따와 폭력과 온갖 부조리와 정서적 모욕에 노출되고 나아가 가족사를 털리고 온갖 가십에 휘말리며 마녀사냥을 당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장현정
지난 6개월, 부산의 로컬밴드 혹은 부산 출신 뮤지션들의 음악을 듣고 원고를 쓰며 느낀 바가 많았다. 튀어나온 못을 먼저 때리고 모든 것이 중앙집중화한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지역, 게다가 비주류의 길을 꾸역꾸역 걸어가며 사는 일은 상상 이상으로 아주 외롭고 힘겨운 일이다. 부산의 멋진 인디밴드들, 나아가 여러 장르의 진지한 문화예술인들을 마음을 다해 응원해주길 부탁하는 마음이었다.

나는 이제 무기력도 싫고, 대폭발하는 방식도 싫다. 더 온건하게, 서로가 서로에게 다르지만 진지한 생각들을 털어놓으며 즐겁게 대화할 수 있는 날을 희망한다.


# 부산 출신 인디 뮤지션들

- '갈매기공화국' 고리, 루시드폴·우승민 등 독특한 색깔로 성장

루시드폴
'무기력대폭발'은 필자가 보컬로 활동했던 밴드 '앤'(Ann)의 1998년 1집 수록곡이다. 한국에서 '인디'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1990년대 중반, 당시 인디의 주체들은 대부분 1970년대 생이었다. 이전 세대에 비하면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했고, 속된 말로 '싸가지'가 없다고 비난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우리끼리는 오히려 직전 세대인 1980년대 선배의 과잉된 진지함과 경직된 태도야말로 시대착오적이라며 부담스러했다.

'갈매기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처음엔 앤, 레이니선, 에브리싱글데이, 얼마이티 네이터스(지금은 피아의 주축 멤버들) 등으로 구성됐지만, 넓게는 부산 출신 혹은 부산에서 활동하는 밴드까지 망라해 폭넓게 교류했다.

우승민
당시 교류했던 부산 출신 뮤지션들은 지금도 자기만의 색깔이 확실한 멋진 뮤지션들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 일렉트로닉 음악의 선도적 모델을 제시하며 최고의 뮤지션으로 인정받고 있는 '캐스커'의 이준오가 그렇고, 음악보다 예능에서 더 이름이 알려진 '올라이즈밴드'의 우승민도 그렇다. 모던록 씬의 새로운 감수성을 보여줬던 밴드 '미선이'의 멤버 중 조윤석은 '루시드폴'이란 이름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의 대표적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고 있으며, 드러머였던 김정현은 경성대 메카트로닉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동료들, 후배들의 음악을 들으며 마음 가는 대로 느끼는 얘기들을 쓸 수 있도록 지면을 허락해준 국제신문에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한다.


-끝- 사회학자·호밀밭 출판사 대표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격주로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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