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기업의 곡물 독점은 농업 공동체를 파괴한다. 농민이 갈 곳이 없어지는 것이다. 쌀 시장 개방을 목전에 둔 데다 이미 밀이나 옥수수 등 주요 곡물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해선 안 될 이유이다. 사진은 쌀 시장 전면 개방에 반대하는 농민단체 회원들이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모습. 국제신문 DB

- 음식·식량산업, 거대기업 종속
- 농부는 계약된 회사 통제받아
- 자본과 결탁한 국가 조직은
- 농부를 공장 노동자 내몰고
- 글로벌 식민화·노예화 심화
- 생산·소비자 주권 지키려면
- '로컬푸드 운동' 대안될 수도

영국 작가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의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1932)는 서기 2495년 하나로 통일된 세계국가를 그려낸다. 생명과학과 공학이 성취한 전문화되고 통합된 시스템에 의해 인간을 생산하고 죽음까지 관리해준다. 거기서의 삶은 기계적인 노동과 즉각적인 쾌락이며, 인간은 불행을 느낄 여가가 없다. 사회는 완벽해지고 '조건반사적 교육으로 노예화한' 인간은 결국 사회적 요구에 충실히 반응하는 '파블로프의 개'가 된다. 조지 오웰의 '1984년'이 공포의 디스토피아라면, '멋진 신세계'는 역설적으로 행복한 유토피아다.

'멋진 신세계'가 현대문명의 미래상이라면, 로버트 케너(Robert Kenner)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음식기업'(Food, Inc.·2009)은 지금 겪고 있는 식량 체계의 혁명적 변화를 논의한다. 인간이 농사를 시작한 이래 1만 년의 변화보다 더 근본적으로 일어난 최근 50여 년 동안 음식과 식량 산업의 진보가 그 주제다. 쌀 시장 개방이 목전인, 밀과 옥수수 등 대부분 곡물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회사는 향상되고 농부는 하강, 왜?

"1000마일 떨어진 대도시 다국적기업 회의실에서 의사결정을 하지만, 정작 그들은 그 결정이 낳은 결과에 따라 살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국가와 자본의 압력에도 로컬농업을 고수하는 농장주 샐러틴(Joel Salatin)은 농사와 관련해 농부가 스스로 의사 결정할 수 없는 구조의 산업화한 현대농업을 비판한다. 비료와 농약을 통한 곡물 생산, 사료 공정, 집중 축산, 축산물 가공, 유통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화석연료와 자본이 투여되는 현대농업과 달리, 전통농업은 '태양 자본'(solar dollars)에 의존한다고 설명한다.

샐러틴은 지금 우리가 모두 새로운 기술과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전문기술자 문화(culture of technician) 속에 살아간다고 단언한다. 또한, 인간이 기술을 통해 생명을 마음대로 할 능력이 있다는 확신에 따르는 이 문화는 살아 있는 대상을 업신여기고 존중하지 않는 문화이며, 무엇이든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대 육류회사와 계약 축산을 하는 어느 농부는 자신을 '노예'라고 표현한다. 계약농들은 회사 요구에 따라 일정 규모 설비를 갖춰야 하고, 이후 은행 융자로 시설을 계속 개선해야 계약을 유지한다. 회사는 향상(upgrade)되고, 농부는 하강(degrade)한다. 두 개 축사를 가진 농부는 평균 50만 달러의 빚을 지고 한해 1만8000달러를 번다.

곡물 생산 분야에선 몬샌토(Monsanto) 같은 농약·종자회사가 농부들 목을 조른다. 한때 살충제 DDT와 다이옥신이 포함된 고엽제(Agent Orange)로 유명했던 몬샌토는 자사의 고성능 농약(Round Up)에 적합한 유전자 조작 콩을 개발, 2008년 미국 시장 90%를 장악하는 성과를 거뒀다. 최근 몬샌토는 씨앗 정제업자를 기소해 항복을 받아냈다. 이 과정에서 친구가 친구를 감시하고 50년 지기를 밀고하며 파괴되는 농촌 공동체는 분명 식민주의 없는 '식민지'인 셈이다.

■'우리의 찬란한 미래' 그 실상은

영화 '음식기업'은 자본의 지배를 뒷받침하는 국가(정책)의 결탁 구조를 문제 삼는다. 기업 전문 경영인이나 자문변호사들이 회사를 감시해야 할 국가기관의 중책을 맡고, 정치인이나 관료가 기업의 중심 요직으로 옮겨가는 '회전문'(revolving door)은 식약청(FDA), 환경보호청(EPA) 등을 이미 '그들만의 리그'로 만들었다.

법·제도적 장벽과 보호는 막대한 정부 보조금으로 생산된 값싼 옥수수를 사료로 사용하거나 공학적으로 변형(고과당으로 인한 비만과 당뇨병 유행)하여 발생하는 공중보건과 생태적 파괴 문제를 효율적으로 입막음한다. 바야흐로 국가 민영화 혹은 영리법인화를 예감한다면 부질없는 일일까?

WTO, NAFTA, FTA 등을 발판삼아 몇몇 초국적 자본이 글로벌 영향력을 장악해가는 모양은 사태의 심각성을 폭넓게 확산하고 있다. 이미 멕시코 농업은 정복됐다. 수많은 농부가 오로지 먹고살기 위해 농토를 등지고 국경을 넘어, 자신들을 쫓아낸 미국 기업에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미국과 결탁한 멕시코 정부와 자본은 '비능률적 생계농 제거와 수출지향의 대규모 생산을 촉진하기 위해' 반강제로 농민들을 퇴거시켜 국경도시 티후아나와 후아레스 자유무역지대 내 조립공장인 마낄라도라(maquiladoras)로 내몰고 있다.

그레고리 나바(Gregory Nava) 감독의 영화 '보더타운'(Bordertown·2006)은 멕시코 티후아나의 마낄라도라 여성 노동자 연쇄 성폭행 및 살해 사건을 통하여 글로벌 차원의 식민화와 노예화 구조를 드러낸다. 죽음 직전까지 갔던 원주민 출신 노동자 에바와 이 사건을 취재하는 미국 여기자 로렌이 함께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갱, 경찰, 정·재계의 폭력적 장벽들과 부닥친다. 결국, 사건 전모를 밝혀낸 두 여인은 재계 거물과 일당을 고발하고, 재판을 앞둔 로렌은 기사를 송고한다. 그런데 미국 정계인사는 신문사와 협의하여 '없던 일'로 만든다.

멕시코와 미국 정부에다 자유무역협정까지 비판하는 기사를 싣기 곤란하다는 편집국장에게 로렌은 "그건 자유무역이 아니라, 노예무역"이라고 반박한다. 그러나 한때 열혈 선배 기자로 그녀와 함께 뛰었던 그는 압력에 굴복, 스스로를 배신한다. "폭로기사나 내보내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어. 이젠 미국 대기업들이 세상을 돌아가게 한다고.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뉴스는 자유무역, 글로벌화, 연예 기사뿐이니, 그게 우리의 찬란한 미래야!"

■삶의 조건을 바꾸는 로컬푸드 운동

광고로 포장되고 생산-공정-유통을 은폐하는 사이 '씨앗부터 슈퍼마켓까지' 얼굴 없는 상표로 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몬샌토 같은 거대 기업이 우리 삶의 기본적인 수준부터 바꾸고 있다. 우리 삶의 장소에서부터 다른 선택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얼굴을 가진 생산자와 소비자가 연대의 주권을 쥐기 위한 '로컬푸드 운동'은 하나의 대안이자 그 시작 지점이 될 수 있다. 우리 삶을 둘러싼 각 분야에서 '거부의 몸짓'과 '시민운동'을 활성화해보자.


# 美·멕시코 정·관·재계 압력 극복하고 제작, 많은 평론가 호평받아

■ 영화 '음식기업' '보더타운'

'음식기업'은 음식과 식량(산업)에 관한 대중의 관성적인 사고방식 속에 잠든 의식을 일깨운다는 차원에서 많은 평론가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그 내용이 불러일으킨 사회적 논란과 호평에 힘입어, 2010년 아카데미 최우수 다큐멘터리상 최종 후보까지 올랐던 작품이다.

독립영화 '보더타운'은 2007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아 상영됐고, 주연 배우 제니퍼 로페즈(Jennifer Lopez)는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가 '인권탄압을 막고 생명을 구하기 위해 노력한 예술가(집단)에게' 주는 '사면을 위한 예술가상'을 받았다.

두 영화 모두 미국과 멕시코의 정·관·재계의 압력과 방해와 차단을 극복하고 제작된 작품이다.


배윤기·부산참여연대 부설 리더십교육센터 소장

※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격주로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