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에서 개인 기도와 사회정의는 둘 다 양보할 수 없는 요소다.

"일어나 가자. 나를 넘겨줄 자가 가까이 와 있다." (마르코 14,42)


'혹성탈출'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앞에서는 평화를 부르짖지만, 뒤에서는 전쟁을 유발하는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적 인간상을 고발하는 영화다. "유인원은 유인원을 죽이지 않는다"는 대사는 "그러나 인간은 인간을 죽인다"는 말로 들렸다. 카인의 첫 살인에서부터 시작된 범죄의 역사는 오늘도 멈추지 않고 있지만, 거대권력이 경제적 이익 앞에서 침묵하고 있는 모습은 따뜻한 가족을 이룬 영화 속의 유인원 사회에 못 미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수녀님들께 "평화롭게 기도하기 좋아하는 장소가 어디입니까?"라고 여쭤본 적이 있다. '조용하고 한적한 곳'을 말씀하는 분이 많았으나 '일상의 소임 하는 장소, 하느님의 마음이 머무는 곳은 어디든 그분 현존의 장소'라고 대답하신 분도 있었다.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기를 좋아해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오르셨던"(루카 9,28) 분도 예수님이지만, 변모의 영광에 머물지 않고 다시 더러운 영이 들린 아이를 고쳐주러 산에서 내려오시고 삶의 현장으로 다가오신 분도 예수님이시다.

영성가 로널드 롤하이저는 그리스도교 영성의 네 가지 본질적인 요소를 말하면서 개인 기도와 사회정의를 비교한 적이 있다. 둘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에서 양보할 수 없는 요소들이다. 문제는 개인 기도를 열심히 하면서도 사회정의에 무관한 경우와 사회정의를 열렬히 부르짖지만 개인 기도에 소홀히 하는 경우다. 그 불균형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기도의 사람이었던 야고보도 믿음의 삶에서 구체적인 실천을 배제하지 않았다.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이 녹이고 배불리 먹으시오'하고 말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야고보서 2,16).

리차드 굴라가 "영성이 없는 윤리는 뿌리가 없고, 윤리 없는 영성은 구체적이지 않다"고 했듯이, 영성과 도덕의 관계는 사회정의와 개인 기도의 균형된 모습이 필요하다. 예수를 따르는 제자가 된다는 뜻은 아파하는 이와 함께 아파하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기도하는 삶이다. (1데살 5,17 참조) 스승이신 예수가 보여주신 십자가 사건은 하느님 사랑의 영적인 사건이면서 동시에 인간 사회의 죄가 회복되는 윤리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십자가 용서의 사건을 앞두고 스승님은 게쎄마니에서 기도하셨지만(영성), 기도를 마치신 다음 이번에도 구원의 십자가 현장으로 나아가기를 주저하지 않으셨다(윤리). "일어나 가자. 나를 넘겨줄 자가 가까이 와 있다." (마르코 14, 42)

'혹성탈출'의 배경이 된 타말파이스 산은 지금도 평화로운 곳이다. 인간 탐욕의 상징인 샌프란시스코 도시감옥을 탈출한 유인원들은 금문교를 넘어 한적한 산속에서 이상적인 생활 터전을 마련했으나 그들은 그곳에만 머물지 않았다. 탐욕스러운 인간이 다시 도움을 청했을 때 필요한 도움을 베풀었을 뿐 아니라 산에서 내려오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늘 우리가 탈출하고 싶은 욕망의 도시는 어디인가? 한적하게 기도하고 싶은 평화로운 장소는 있는가?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스승이신 예수는 한적하게 머물고 싶은 타말파이스 산에만 머물지 말고, 함께 아파하는 지상에 내려오라고 초대하신다.

대신 십자가 지기를 서슴지 않으셨던 스승이신 그분이 배신한 제자들에게도 따뜻하게 모닥불을 펴놓고 "와서 아침을 먹으라"고 초대하셨듯이(요한 21,12), "너희도 가서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신다(루카 10,37).

영화 속 유인원은 무릎을 꿇고 손을 내밀면 용서해주었지만, 용서를 모르고 사악한 우리를 꾸짖는 대신, 먼저 손을 흔들어 내미시는 분이 우리 주님이시다.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