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록의 부산 록밴드 '과매기'가 선사하는 강렬한 음악은 우리 사회 곳곳에 탐욕과 폭력이 도사리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이지연 씨 제공

- 국익으로 포장된 민족주의 앞에
- 수동적이고 아무런 의식도 없이
- 양순하고 유약하게 사는 현대인

- 전쟁·수탈·착취 등 '세계의 어둠'
- 민족의 이름으로 희석되기 일쑤
- 특정 세력의 이데올로기로 악용

- 부산서 결성된 록밴드 '과매기'
- 짐승같이 강렬한 헤비메탈처럼
- 추함과 탐욕에 눈감지 말아야

지구 반대편에서 불어오던 월드컵 열풍이 그쳤다. 공 하나가 어디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세계 각국 사람이 잠을 설쳐가며 울고 웃었다. 자신의 국가와 민족을 응원하는 이 한바탕 축제의 열기는, 그렇잖아도 뜨거운 여름의 지구를 한층 무덥게 달궜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세계의 한 편, 팔레스타인에서는 똑같이 민족과 국가의 이름으로 이스라엘에 의해 자행된 전쟁으로 눈 까맣고 몸이 작은 한창때의 어린이들이 잔인하게 죽어가는 비극이 벌어지고 있다. 머리 위로 폭탄이 떨어지고 어린이를 품에 안은 부모들이 울부짖는 모습이 세계 각국으로 생중계된다. 어쩌다 세상은 이처럼 극단적으로, 자기 분열적으로 변한 것일까.

■지나치게 뜨거워 부담 '상상 공동체'

오랜 시간 동안 서로 이질적인 지역과 사회구성원을 통합하는 기능은 '종교'가 담당해왔다. 그러나 근대가 시작되며 중세의 종교가 사회 통합의 힘을 잃게 되자 그 자리를 대체하며 새롭게 등장한 것이 '민족'이란 개념이다. 물론, 서로 같은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고 서로의 속살과 사정을 헤아려주며, 끈끈한 정을 공유하는 공동체란 기본적으로 소중한 것이다.

하지만 이 공동체가 민족이란 외피를 입고 무언가 우리 제각각의 사연을 초월한 거대하고 추상적인 개념으로 변질할 때는, 십중팔구 특정 세력에 의해 이데올로기로 악용되기 십상이라 긴장할 필요가 있다.

현대의 국민국가는 국민으로부터 권력이 나온다는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아직은 허술한 그 민주주의의 빈틈을 활용해 국민의 눈을 자주 속이기도 한다. 특히 이때 국민의 시선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혹은 내부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 곧잘 활용되는 개념이 민족이기도 하다. 이때의 민족은 오히려 종교보다 더욱 강력한 힘으로 이질적인 사회구성원을 통합해 좌·우파 같은 정치적 입장이나 종교, 지역 등을 초월해 강력하게 피를 끓게 한다. 민족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한층 복잡해진 많은 사람의 이해관계와 갈등을 통합하며 특수한 경우에는 과잉된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특히 내부로는 불평등과 수탈의 관계를 희석하고 외부로는 전쟁을 일으킬 때가 그렇다.

그런 면에서, '언어와 문화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라는 다소 모호한 정의를 가진 이 민족이란 개념이 현실적으로는 그 실체가 없는 허구, 즉 '상상의 공동체'라고 규정한 베네딕트 앤더슨의 논의는 주목할 만하다. 그에 따르면 민족이란 '실질적으로는 서로 다르고 불평등과 수탈의 관계로 얽혀 이질적임에도 언제나 의심 없이 서로 수평적 동료로 받아들여지게 하는 묘한 개념'이라는 것이다.

■평온 무사한 일상생활의 진귀함

우리는 대기업과 노동자 간의 갈등, 혹은 원전이나 밀양에서 일어나는 일의 해결 과정에서 곧잘 '국익'이란 논리와 마주치곤 한다. 서로 이질적이고 나아가 착취와 수탈의 관계에 얽힌 복잡한 이해관계도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는 논리가 등장하면 단순화하고 희석되기 일쑤이다.

하지만 민족이 가장 문제가 되는 경우는 뭐니 뭐니 해도 역시 전쟁 때문이다. 사실, 민족을 기반으로 출현한 국민국가의 시작도 전쟁이었다. 처음에는 내전에 가까운 힘겨루기를 통해 주변 몇 개의 이질적 공동체가 앵글로색슨이나 게르만과 같은 이름으로 패거리를 이뤘고, 나름의 민족을 기반으로 한 국민국가를 건설한 후에는 제국주의라는 야만적 시대로 이어져 급기야 1,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던 역사가 이를 잘 보여준다.

한편 과거 전통사회에서는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어디까지나 군인끼리의 싸움으로 승패가 갈렸지만, 현대사회의 전쟁은 민간인이 사는 집과 시장 위에도 폭탄이 떨어지기 일쑤다. 아니 오히려 군인이야말로 가장 안전하며 어린이와 여자, 노인처럼 가장 힘없고 나약한 사람들이 맨 먼저 피해를 보는 구도로 역전됐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다.

전후방의 구분이 없어지고 가장 안전해야 할 곳이 가장 먼저 피격을 당하는 셈인데 꼭 이처럼 사회구조의 부조리도 가장 먼저 약한 사람, 서민, 보통 사람의 일상생활 속으로 스며들어 폭발한다. 남아있는 대다수 사람은 자신이 당하지 않았음을, 자신에게 불똥이 튀지 않았음을 다행으로 여기며 평온 무사함에 감사하는 소극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이와 관련, 대다수 현대인은 "수동적으로, 아무 의식 없이, 육체적으로도 그렇게 정지된 채 가구처럼 숨만 쉬고 있으며 매스컴은 센세이셔널 한 거짓과 비장감을 돋우고, 재난의 모든 기호(죽음, 살인, 강간, 혁명)로 평온 무사한 일상생활의 진기함을 강조한다"고 지적했다. 그의 말처럼 어느새 우리는 그 피해자가 자신이 아님을 다행으로 여기며 이 진부하기 짝이 없는 일상생활조차 보기 드문 것이라 고맙게 여기는 양순하고도 유약한 삶을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외면한다고 사라지나 '과매기' 투혼

이 세계의 어둠, 우리 안의 추함은 외면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부산에서 결성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관록의 록밴드 '과매기'의 음악을 듣다 보면, 여전히 이 세계는 전쟁 중이며 어둡고 축축한 탐욕과 폭력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유행이나 트렌드에 관계없이 오랫동안 이른바 '센'음악을 연주해온 과매기는, 폭탄처럼 무대 위 여기저기서 터지는 강렬한 드럼 비트 위에 굵고 묵직한 기타 리프, 그리고 두 명의 보컬이 각각 다른 톤으로 번갈아 쏟아내는 샤우팅(높은 톤으로 지르는 록음악 특유의 창법)과 그로울링(짐승처럼 낮고 굵은 톤으로 으르렁거리는 듯한 록음악 특유의 창법)으로 록음악 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느낌을 선사하는 하드코어 성향의 헤비메탈음악을 연주해 듣는 이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준다.

지난달 발매된 이들의 2집 앨범 'Conviction'은 그 제목처럼 강렬한 확신으로 하루하루를 뚜벅뚜벅 살아가고 있는지 새삼 나 자신의 양순한 삶을 의심해보게 된다. 우리는 지금 모두, 무사한 것일까.


# '과메기' 먹다 탄생한 이름, 지역 인디씬 활성화 주역

■ 록밴드 '과매기'

부산 록밴드 '과매기' 과매기 제공

'과매기(戈昧期)'는 2006년 부산에서 결성돼 지난 10년 가까운 기간 동안 꾸준하고도 활발하게 활동을 펼쳐온 관록의 밴드다. 배진수와 권태균의 트윈보컬에 기타 김승환, 베이스 박민호, 드럼 이성욱 등 5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2011년 정규 1집 'This is NOT Hardcore'를 발매했고 지난달에는 무려 25곡이 수록된 정규 2집 'Conviction'을 내놓았다. 지난해 부산 록밴드들이 함께 발매한 컴필레이션 앨범 '동백락원'에서는 그 첫 번째 포문을 열기도 했다.

'과매기'는 특별히 지역의 인디씬 활성화에도 관심이 많아 이를 실천하고 있다. 경성대 앞에서 클럽이자 음반기획사인 리얼라이즈를 직접 운영하며 다양한 공연과 파티 등을 기획하는 한편 자신들이 호스트인 공연 'Bullshit fest' 를 2007년부터 이어오고 있다. 부산에 적을 두고 있으나 전국을 무대로 활동하며 외국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지난 3월에는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기기페스트'(Gegey Fest)의 헤드라이너로 참가했다. 이처럼 부산의 인디씬을 단지 과거가 아닌 현재진행형으로 이끌고 있는 밴드라는 평을 받고 있다.

밴드 이름인 '과매기'는 '어둠 속에서 전쟁을 준비한다'는 무시무시한(?) 뜻을 가졌지만, 실제로는 멤버들이 과메기를 먹다 불쑥 지었다는 코믹한 사연도 스며있다.

사회학자·호밀밭 출판사 대표

※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격주로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