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왕과 양키' 1889년 판의 권두 삽화. 배윤기 제공

- 마크 트웨인 '아서왕과 양키'
- 19세기 미국의 공장장 행크
- 6세기 영국으로 시간여행
- 미개한 백성 계몽 '미션' 수행

- 노동력 착취와 이윤 추구로
- 양키식 문명화 가져왔지만
- 다른 방식의 치부에 분노한
- 교회와 기사들에 섬멸당해

- 근대 지식으로 '보스'가 되어
- 고대 영국 개조에 나선 행크
- '국가개조' 화두 한국사회속
- '복제된 행크' 존재 살피게해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은 "패러디(parody·희화화)의 공간이 바로 문학"이라고 말한다. 문학의 힘은 사회적 다수가 동일시하는 관성적인 생각이나 사고의 잘 짜인 궤도에 다른 혹은 이질의 틈새를 만드는 데서 나온다. 틈새 혹은 사이는 미리 결정된 의미의 단순 전달과 수용이 아닌 미결정의 소통과 창조적 상상 공간을 만든다. 패러디의 미학은 위선 혹은 위장과 '의미의 꿀통'에 빠지도록 만드는 유혹의 언어 '안'이 아니라 '바깥'으로 우리를 데려가 갈라짐을 만든다. 안팎의 균열에서 생겨나는 차이 혹은 구멍은 명백하고 당연한 통념에 거리를 둔다.

■서구와 그 나머지…더 큰 문제는

1940년 발행된 마크 트웨인 기념 우표.

식민주의(colonialism)는 후진 세계에 선진의 씨앗을 뿌려 싹을 틔우는 정치·경제적 이론 및 정책이다. 이를테면 근대 민족국가가 미개한 대중을 무지몽매로부터 구해 나라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계몽'이라는 시대적 사명을 글로벌 차원으로 팽창시킨 논리다. 여기서 지도와 대중이라는 위치 혹은 신분 차별화의 논리가 발전한다. 이 논리는 계몽 지식인과 무지한 대중을 나누듯이 서구(the West)와 나머지(the Rest)를 나누어 세계를 이해하도록 만든다.

식민주의의 더 세련된 이야기 체계인 근대화 이론은 마치 달리기 트랙같이 직선으로 뻗어 있는 역사적 시간관에 바탕을 둔다. 그러니까 운명적으로 뒤쫓아 가야 할 대상으로 '서구'를 전제하고, 서구가 '나머지'를 앞선 시·공간(서구의 현재)을 향해 이끌고 간다는 주장이다. 일단 이 시간 궤도에 흡수되면, 나머지의 나아갈 길을 그들 자신보다 서구가 더 잘 안다는 데 동의하게 된다. 인도 사상가 아쉬스 난디(Ashis Nandy)는 이런 맥락에서 문명인들에 의해 "미개인들의 현재와 미래는 모두 장악된다"고 지적한다.

서구는 엄청난 인적·물적 이득을 챙기는 이 논리를 '백인의 짐(white man's burden)' 혹은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이라는 수식어로 자기들만을 위한 사명(mission)을 기독교 신앙과 결합해 정당화함으로써 '하나님의 이름으로' 과감하게 글로벌 역사를 발전(?)시켜왔다. 그들은 세계 곳곳에 기독교 기반 위에 근대적 교육체계를 도입하고 자기네 이론을 세뇌하여 식민지 엘리트를 양성하며 앞잡이나 대리통치 세력을 키운다.

문제는 나머지에서 빠져나와 계몽의 빛을 접한 엘리트들이 제국의 생각을 그대로 복제해 자기 동족인 그 나머지를 '비합리' '게으름' '무식' '미신', 심지어 '야만'의 대명사로 부르면서 총칼로 지배하고 언어적·물리적 매질로 다스려야 할 '불결한 벌레'로 변신시키는 데서 생긴다.

■문명의 경계에서 그린 풍자와 해학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은 풍자와 해학으로 동시대인의 말과 생각과 삶을 뒤집어 읽어낸 독특한 작가다. 트웨인의 '아서 왕궁으로 간 코네티컷 양키'(A Connecticut Yankee in King Arthur's Court·1889, 한국어 번역본 '아서왕과 양키')는 1300년 전 영국의 전설적인 이상사회인 아서 왕 시대(6세기)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

문학 작품에서 미래 혹은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역설적으로 현재에 거리 두기이며, 동시대 안팎 경계에서 '오늘'을 비교하고 패러디하며 성찰하는 한 방식이다.

양키 기술자 행크 모건(Hank Morgan)은 무기제조 공장에서 각종 총기류와 기계류 제조법을 열심히 배우고,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창의적 능력을 발휘해, 수천 명 직원을 거느리는 공장장 직위에 오른다. 그런데 거친 싸움이 일상인 공장 생활 중, 한 직원과 싸우다 정신을 잃고 다시 깨어나자, 중세 왕국으로 와 있다.

행크는 19세기의 눈으로 6세기를 보고 문명화의 사명을 자각한다. 사회적 자원의 효율적 이용과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근대 지식을 활용한다. '해가 지지 않는 제국'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이상향이자 엄격한 사회적 규범의 표준을 제공했던 귀족사회, 다시 말해 아더 왕 시대상은 또한 19세기 말 미국의 양키 졸부들의 '품위 있는 전통(genteel tradition)'의 고향이었다. 행크는 기원의 현장에서 현재의 전통과 규범이 얼마나 비효율·비민주적인가를 보여주며, 그의 일련의 행위는 악착같은 노동과 이윤추구에 기초한 양키식 문명화(근대화)가 낳는 잔인함을 폭로한다.

그는 돈벌이에 '머리 쓸 줄 모르는'고 미신에 홀리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이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먼저 인간 공장(Man Factory·학교)을 세우고 신문을 발행한다. 또한 사업 발전을 위해 특허국을 만들고, 문명을 일으킬 철과 금속 공장을 건설하여, 젊고 유능한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그는 4년 동안 완전히 달라진 세상을 만들었다. "이 무지한 나라에서 아무에게도 의심받지 않고 나는 바로 눈앞에 19세기 문명을 건설해 놓았다!"

그러나 다른 방식의 부와 권력 집중에 분노한 교회와 기사들의 저항과 연이은 '우매한' 대중의 반란에 행크 일당은 결국 섬멸되는 운명에 처한다. 보스의 앞잡이 클라렌스는 "우리는 우리 자신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 있었다. 우리는 정복했지만 결국 정복당한 꼴이 됐다"는 말을 남긴다.

■우리 역사관 논쟁 속 '행크'는 누구?

근대 역사관의 직선적 시간 궤도에서 선진·후진이라는 운명적 순서로 배치돼 폭력적으로 강제되어온 대비 구도는, 작품 속에서 역설적으로 현대 문명을 낳은 과정인 구대륙(영국)-신대륙(미국), 남부 귀족-북부 양키, 식민지-제국, 구교의 미신-신교의 계몽 따위의 대립과 갈등 과정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독자들은 근대 지식과 '과학의 마법'의 힘으로 왕과 거의 동등한 지위의 '보스'가 되어 '국가 개조'를 실행하는 행크를 통해 현대문명의 도래가 필연적으로 전쟁을 부름으로써 축복과 재앙을 함께 불러온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최근 국가 개조가 화두로 등장한 우리 사회의 역사관 논쟁 속 인물은 마치 복제된 행크를 보는 듯하다. 춘원 이광수가 펼친 '민족개조론'의 애국적(?) 열정 또한 같은 맥락에 있다.

안타깝지만, 식민지를 경험한 무대들은 공통적으로 '매국적 생각의 애국적 열정'이 빚어내는 현대의 희비극을 여전히 상연하고 있다.


# 마크 트웨인은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1835~1910·사진)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 같은 미시시피강 유역 서부 개척민의 삶과 모험을 그린 작품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본명이 사무엘 클레멘스(Samuel Clemence)인 그의 필명 'Mark Twain'은 강의 안전 항로 수심 경계(3.6m가량)를 알리는 수로 안내원의 외침이다.

트웨인은 초기 작품에서 개척민의 위선과 기독교인의 편협한 사고 따위를 비꼬기도 했지만, 문명화를 실현해나가는 미국의 이상과 정신에 낙관적인 비전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후기 작품으로 갈수록 글로벌 문명화 선두 주자로서 미국의 꿈과 정치·경제적 야심을 해부하면서 문명의 명암 사이에서 비극적 비전을 펼친다. '아서 왕궁으로 간 코네티컷 양키'는 초기와 후기의 경계에 놓인 작품이다.

미국의 제국주의 팽창과 전쟁을 비판하는 지성인의 모임인 전미반제국주의동맹 부의장으로 활동했던 트웨인은 남북전쟁 이후부터 글로벌 범위에서 점점 노골화하는 양키의 침략과 정복에 열정적으로 반대했다.


배윤기·부산참여연대 부설 리더십교육센터 소장

※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격주로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