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부산의 대표적인 인디뮤지션 10팀이 참여해 '특별시 부산' 앨범을 냈다. 사진은 밴드 '옐로 로코'가 '특별시 부산' 앨범 발매 기념 공연을 하고 있는 모습. 임소영 제공

- 현대 사회의 파워 엘리트들
- 뛰어난 능력 갖춘 개인 아닌
- 권력을 독점하려는 카르텔
- 사명감보다 이익따라 행동

- 새로운 미래를 꿈꾸기 앞서
- 안전과 윤리 땅에 내팽개친
- 한국의 부패한 엘리트들에
- 내일 투표로 분노 표시해야

- 부산의 대표적인 인디 10팀
- 앨범 '특별시 부산' 공동제작
- 서울만 바라보는 사회 맞서
- 탈중심화된 새 일상을 노래

'이제 일상으로 복귀해야 할 때'라는 말을 심심찮게 듣는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말보다는 새로운 일상을 구성하자는 말이 더 적절하겠다는 생각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건이란, 맥락 없이 갑자기 터지는 게 아니다. 하루하루의 일상 속에서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이던 조그만 일들이 축적돼 돌이킬 수 없는 단계까지 나아갔을 때, 비로소 사건은 터진다. 다시 말해 여러 사건이 중첩돼 터진 커다란 하나의 사건은 그 자체로 우리의 일상에 균열이 갔음을, 하나의 선을 넘어버렸음을, 그리하여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일상이 없어져버렸음을 의미한다.

돌아갈 일상이 없는 우리는 좋든 싫든 이제 새로운 일상을 구성해야만 한다. 단지 안전하기만 한 일상을 넘어, 나아가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좋은 삶을 설계하고 구현할 수 있는 일상. 지금 이 순간 우리 앞에 던져진 절박한 숙제임과 동시에 회피할 수도, 해서도 안 될 일이다.

■일상과 사건의 변증법

'좀비 컬트 아포칼립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소극적인 자세야말로 오히려 정상적인 일상을 가로막는 장애물에 다름 아니다. 어떤 방향으로든 나름의 비전을 가지고 액셀을 밟아야만 하는 까닭이다. 직접 행동에 나서고 작은 모임들을 조직하고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 절실하다.

그런데 액셀을 밟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우선 장애물을 치워야 한다. 사회에 대한, 우리 하루하루의 일상에 대한 기본적인 안전과 윤리에 대한 신뢰를 땅에 패대기친, 다름 아닌 우리 사회의 엘리트들에 대한 정당한 분노가 선행되어야만 한다. 민주주의는 사회구성원 일반에게 형식적으로나마 선거라는 형태로 그 기회를 주고 있는데 때마침 우리는 내일 그 권리를 행사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일상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지속해서 반복되는 사건들에 의해 구성된다. 그리고 의미 있는 사건들이 반복되면 일상은 다른 단계로 전이된다. 반복되는 유의미한 사건은 더 이상 사건이 아닌 또 다른 차원의 일상이 된다는 것, 이른바 '일상과 사건의 변증법'이다. 새로운 일상을 위해서는 끊임없고 정기적인, 의미 있는 사건들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하나의 의미 있는 사건, 혹은 혁명이 그 초심을 잃고 시간이 지나면 퇴행하거나 부패하는 이유는 끊임없이 반복되어야 할 자기성찰의 끈을 놓아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때마침 내일로 다가온 선거는 형식적으로나마 민주주의 사회가 제공하는 이 자기성찰의 기회랄 수 있다.

■엘리트, 우리 사회의 장애물들

'사회학적 상상력'이란 개념으로 유명한 미국 사회학자 찰스 라이트 밀스는 1956년, '파워 엘리트'라는 유명한 저작을 내놓았다. 그에 따르면 현대사회의 파워 엘리트들이란, 뛰어난 능력을 갖춘 개인을 뜻하는 게 아니라 일종의 카르텔에 속해 권력을 독점하는 소수의 권력자를 의미한다. 이들은 명백한 행동과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줘야 할 지위에 있음에도 대개는 사명감보다는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

따라서 대중은 보다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발언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단순히 '지금 이대로'라고 생각하다 보면 파워 엘리트들이 만들어놓은 사회적 조건에 그저 '적응하는 것' 정도가 최선인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파워엘리트들은 서로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부와 권력, 명성을 자기들끼리 대물림하고 권력집중을 가속화하는데 이런 사회는 결국 사회구성원 대다수가 성공에 대한 맹신으로 도덕성을 상실해버리는 병든 사회가 되고 만다는 것이 요지랄 수 있겠다.

그런데 이게 단순히 1956년 미국 사회의 풍경이기만 한 걸까. 우리는 기업인 출신이 버젓이 자신이 이해관계와 직접 관련 있는 국가의 요직을 담당하거나 거꾸로 고위관료들이 퇴직 후 관련 업체에 임원으로 근무하는 식의 일을 수도 없이 목격하고 있다. 고위관료들이 임명될 때마다 되풀이되는 온갖 추잡한 부패와 듣기에도 민망한 변명들, 게다가 이를 견제할 언론, 대학, 종교마저도 국민의 조롱거리로 전락했을 정도니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그의 저서가 여전히 현실성과 설득력을 갖는 까닭이다.

■'특별시 부산' 노래한 성난 젊은이들

밀스의 책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사실은, 1920년대만 해도 미국이 지역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나라였다는 점이다. 그러던 것이 1950년대 들어 매스미디어의 발전과 두 차례의 세계전쟁 및 냉전 흐름과 맞물리며 중앙집권화하고 사회통합의 중요한 기능을 담당했던 종교, 교육, 가족은 붕괴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우리는 어떤가. 한국 사회에서 지역은, 새로운 일상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최우선적으로 고민해야 할 중요한 숙제가 된 지 오래다.

속된 말로 '인 서울'이 그대로 성공의 지표가 되고 수도권이 아닌 다른 모든 지방은 각종 통계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날이 갈수록 침체하고 있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 부산 역시 이미 한국 제2의 도시라는 말이 공허하게 들린 지 오래다.

그런 면에서 지난해 가을 발매된 '특별시 부산'이라는 앨범은 여러모로 흥미롭다. 부산의 대표적인 인디뮤지션 10팀이 참여한 이 앨범은 부산을 떠나 서울로 향했던 선배들과는 달리 자신이 나고 자란 바로 이곳 부산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그 새로운 일상의 가능성을 향해 힘을 모은 의미심장한 사례이다.

물론 이런 사건 하나만으로 지금의 열악한 부산의 인디 씬이 갑자기 활성화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이 앨범은 매우 값진 성과랄 수 있다. 나는 이들이 발매한 앨범 하나가, 그 적극적인 행동 하나가 다른 그것들과 연결되며 반복되는 사건이 되길, 그리하여 마침내 그 자체로 일상이 되는 의미 있는 첫걸음이 되길 진심으로 희망해본다.

마찬가지로 내일 지방선거에서도 토호들이나 서울만 바라보는 사대주의적 이들이 아닌, 진심으로 결이 다른 책임 있는 분들이 많이 뽑히는 사건들의 연쇄를 기대하고 있다. 공부 잘해야만 행복하고, 돈이 많아야만 행복한 사회라면 굳이 선거란 걸 할 필요가 있을까. 공부 못해도, 돈이 없어도 행복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어야만 좋은 사회랄 수 있고 내일은 그런 사회에 대한 우리 저마다의 의지가 표로 행사되는 날이다.

나는 특히 집보다는 학교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내 아이의 하루하루를 위해 진실성과 실천력을 담보한 교육감이 꼭 뽑히기를, 그리고 우리 동네 우리 마을의 구체적인 행복을 위해 기성 정치권에 물들지 않은 건강하고 젊은 기초의원이 많이 뽑히기를 개인적으로 희망하고 있다.

백조는 물 위에 떠 있기 위해 끊임없이 물밑으로 발을 놀린다. 그냥저냥 포기해버리고 가라앉으면 편하기야 하겠지만, 그것은 우리의 삶은 물론 우리의 가족과 이웃, 아이들까지도 함께 수장시키는 꼴에 다름 아닐 것이다.


# 앨범 '특별시 부산'은

'특별시 부산(사진)'은 부산에서 활동 중인 대표적인 밴드 10팀이 뜻을 모아 지난해 가을 발매한 컴필레이션 앨범이다.

역시 부산의 몇 안 되는 레이블 중 하나인 '고양이레이블'의 이철규 대표가 기획했고 이미 지면을 통해 소개한 바 있는 김일두, 김태춘, 스카웨이커스를 비롯해 김일두의 펑크밴드 '지니어스', 부산 사나이들의 소년 같은 감성을 느끼게 하는 감성 듀오 '부산아들', 런캐럿과 게토밤즈를 거치며 이미 그 저력을 여실히 보여준 바 있는 현민호를 중심으로 결성된 '스톤드', 부산 펑크 씬에 젊은 피를 수혈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또 하나의 펑크 강자 '옐로 로코', 탄탄한 연주 실력과 귀여운 비주얼로 스케이트 펑크의 강자로 불리는 '사이드 카', 자체 레이블을 통해 활동하는 스카펑크의 신성 '런 엑스', 메탈시대의 영광을 잇고 있는 '좀비 컬트 아포칼립스' 등 모두 10팀의 쟁쟁한 밴드가 참여했다.

'똥싸구 앉어있네' '장전동 그 사람' '락앤롤이 뭐 별거가' 등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 다양한 장르의 음악 속에서도 공통적으로 과연 부산 밴드들이랄 만한 묘한 부산성이 공존한다.

사회학자·호밀밭 출판사 대표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격주로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