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로 희생된 경기도 안산 단원고 학생의 가족이 영정과 위패를 감싼 채 분향소로 가고 있다. 이용우 기자 ywlee@kookje.co.kr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마르코 2,24)


합동분향소를 다녀오는 길에 결국 울음을 참지 못했다는 소식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세월호 침몰로 참담한 현실에 통곡하며 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숨죽여 현실을 가슴에 묻고 우는 사람도 있다. 실종자 가족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송구스럽게도 먼저 떠오른 것은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마르 8,36)는 성경 구절이었다. 실종자 가족들에게 간절히 필요한 한 가지는 백 마디 위로보다 실종된 사람이 살아 돌아오는 것 자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닮아 거룩하게 창조되었지만, 지상에 발을 붙이고 살아야 하는 인간에게 가족은 제 목숨과 같은 존재다. 억만금을 준다 한들 자녀의 목숨과 바꿀 부모는 없다. 소중한 사람의 실종과 마음 아픈 눈물이 앞을 가리고서야 평소에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고 살았는지를 묻는 인간이다. 역설처럼 들리겠지만, 오히려 그런 인간의 특성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하느님의 자비에 의탁한다.

세월호 사고 책임을 추궁하는 과정에서 재난구조 매뉴얼의 부재를 지적하는 이가 많다. 매뉴얼이 있어도 실제 상황에서 작동하지 않는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여객선이 지닌 의식구조의 문제점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크다. 윤리학의 측면에서만 보자면, 이번 사고는 최소주의와 행위중심의 규제를 지향하는 매뉴얼리즘(manualism)이 지닌 한계를 절실하게 보여준 사례다. 지켜야 할 의무와 행위의 금지조항만 강조하는 사회는 범법자와 눈치 보는 자를 끊임없이 생산할 뿐이다. 타인의 행위를 질타하는 논쟁만으로는 사회 깊숙이 물든 구조적인 악을 제거하거나 희망을 제시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예수의 시대에도 비슷한 논쟁이 있었다. "안식일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마르 3,4). 안식일에 해야 할 일의 합당성을 논의하느라 눈앞에 있는 목숨을 놓쳤다. '해서는 안 될 일'을 강조하던 율법주의자들은 하느님의 자비를 '살려야 할 사람'에게 실천했던 예수를 도리어 고발했다. 어느 사회든지 행위와 규제를 논하느라 생명 자체는 늘 뒷전이었던 셈이다. 법은 원래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보호장치다. 하지만 여기에 논쟁할 '일'만 남을 때, 율법주의가 되어 하느님의 '자비'는 사라지고 돌봐야 할 '목숨'은 놓치고 만다. 누구를 위한 일인지도 모른 채 그 일이 합당했는지만 논한다.

"우리의 성화(聖化)는 우리가 하는 '일'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평소에 자신을 위해 하던 일을 '하느님을 위해' 하는 것이다."(대화 44).

맨발의 가르멜회 수도원 평수사로 살면서 하느님 현존을 증거한 로렌스 수사(1614~1691)의 글은 그리스도인이 지향해야 할 바를 안내해 준다. '해서는 안 될 일'을 발생시켰다며 논쟁에 혈안이 된 지금,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내 눈물과 통탄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를 묻게 된다.

뼈아픈 사건을 통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생명의 소중함을 되돌아볼 것 같지 않은 불쌍한 존재인 나의 회개를 바라시는 하느님의 자비하심도 조심스럽게 묻게 된다.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마르 2,28)이라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이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사건 앞에서도 기도하며 기다리는 마음으로 하느님의 선하신 뜻을 묻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