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만에 2집 앨범을 내고 돌아온 부산 출신의 펑크밴드 21스캇. 약함과 악함 사이, 우리에게 필요한 '건강함'이라 해도 좋을 어떤 기운이 앨범에 담겨 있다. 21스캇 제공

- 상식적이고 건강한 보수는
- 국민을 이끌고 보호하지만
- 현실 속에서 대개의 보수는
- 자신의 이익만을 중요시해

- 긴장하지 않는 약한 국민은
- 지도층의 악함과 한쌍 되어
- 가라앉아버린 세월호처럼
- 사회를 위험한 곳으로 견인

- 부산 출신 펑크밴드 '21스캇'
- 8년만에 발매 2집 앨범에서
- 아노미 빠진 우리에게 필요한
- '건강함'의 기운 느끼게 해줘

여기저기 깔깔대듯 솟아난 푸른 잎들을 본다. 작은 바람에도 바르르 떠는 이 싱싱한 푸름…. 그러나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버거운 일이 돼버렸다. 여린 것들, 파릇파릇한 것들, 티 없이 밝은 것들을 바라보는 것이 이토록 고통스럽고 아픈 일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이 정신적 외상(trauma)은 아마도 오래오래 지속할 것이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작은 것들, 무럭무럭 성장하는 것들, 사심 없이 깔깔대는 것들을 바라보는 일이 그저 난망하고 아릿하여 무시로 울컥울컥 해질 것만 같다.

이 집단적 슬픔은 어떻게든 해소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부조리하기 그지없는 집단적 슬픔은 기형적으로 축적돼 우리 사회의 암이 될 것이다. 분노하되 감정보다는 이성을 앞세우고 관념보다는 구체적인 행동을 앞세워 적나라하게 드러난 우리 사회의 민낯을 직시하고 지금 여기서부터 할 수 있는 그 무엇이라도 당장 할 일이다. 한시가 급한 일이고, 또 지치면 안 되는 아주 오래오래 계속할 일이다.

■아노미(Anomie), 그 이상의 아노미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에 의해 유명해진 '아노미(Anomie)'란 개념은 무규범 상태를 뜻한다. 규범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노미(nomie)' 앞에 '없다'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 접두어 '아(a)'가 붙어 만들어진 말이다. 뒤르켐은 이를, 사회가 급변하면서 기존의 규범이 더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됐지만, 아직 그 자리를 대체할 다른 규범이나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을 때 일어나는 현상으로 이해했다. 한편 아노미는 개인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나 기대고 있는 준거가 사회 일반의 그것과 일치하지 않을 때 느끼게 되는 공허하고도 무력한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유명한 저서 '자살론'에서 '아노미적 자살'이란 말을 만들어 썼다.

미국 사회학자 머튼은 뒤르켐의 아노미 개념을 더 발전시킨 학자다. 그는 아노미가 단지 규범이 부재한 상태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나아가 규범들끼리 갈등하거나 잘못된 규범이 사회 전반의 준거가 되어버리는 상태까지를 포함해 논의를 확장한다. 이때 사람들은 정상적인 수단으로는 자신의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고 느끼게 되는데 이것이 사회 보편의 상식처럼 기능할 정도가 되면 지금의 한국사회처럼 기형적인 꼼수나 추잡한 짓들이 오히려 능력 있는 것처럼 취급받는 황당한 일들이 벌어지게 된다.

규범의 기준과 모범이 되어야 할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오히려 책임과 규범을 부정하고 무시하며 나아가 모욕하고 조롱하는 수준까지 돼버리면 사회 보편의 가치관은 붕괴하고 대부분의 사회구성원들이 소외감이나 고립감을 느끼게 되며 절망, 무력감, 공허함 등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파시즘과 같은 독재나 전체주의, 사회 해체 등의 무서운 상황으로 이어지게 되는 전조이기도 하다. 이 상태는, 그저 혼란스러운 정도를 넘어 아노미 그 이상의 아노미 상태라 해도 좋을 것이다.

■약함과 악함의 변증법

뒤르켐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태도를 가진 학자였다. 상식적이고 건강한 보수는, 사회구성원 개개인을 약한 존재로 보고 이들을 잘 보호하고 이끄는 것이 엘리트들의 책임이라고 봤다. 이들은 개개인의 역량을 최대한 인정하고 그들이 자율적이고 주체적으로 사회에 참여하고 이끌어가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봤던 진보의 태도를 순진하거나 무책임한 것이라 생각했다. 다시 말해 뒤르켐에게는, 약한 인간들이 신뢰하고 기댈 수 있는 사회 보편의 준거를 마련함으로써 모두가 더 건강하고 안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사회제도와 시스템의 책임이라고 봤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의 현실 속에서 대개의 보수는 책임감 대신 자신의 이익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이럴 때, 건강함을 잃어버린 보수는 자신들의 사회적 힘을 이용하여 약한 이들을 착취하고 불통과 오만함으로 무장한 채 자신들만의 성벽을 쌓아올린다. 악(惡)이 되는 것이다. 긴장하지 않는 약함은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이렇듯 자주 악함과 한 쌍의 날개가 되어 사회를 위험한 곳으로 이끌곤 한다. 아이들을 싣고 가라앉아버린 저 무서운 배처럼.

■"아직 우리는 여기에 있다!", 8년 만에 돌아온 '21스캇'

부산 출신의 펑크밴드 21스캇(scott)이 8년 만에 2집 앨범을 내놓으며 돌아왔다. 1990년대 말 스타벅스, 유테로 등 밴드에서 드러머로 활동하던 김성훈을 주축으로 2001년 결성된 21스캇은 데뷔와 동시에 큰 주목을 받은 밴드였다. 하지만 이후 우여곡절을 겪으며 밴드 활동을 거의 중단하다시피 했다. 지난 연말 배수의 진을 친 것처럼 절박한 심정으로 멤버들이 모두 거주지를 서울로 옮기며 지난달 8년 만에 2집 앨범을 발매했다. 이들의 앨범 첫 곡, 'yes, we are'의 가사는 이게 전부다.

"우리 얘길 들어봐, 우린 아직 살아있어, 우린 아직 강해, 우린 아직 싸우고 있어, 그래 우리가 여기 있어."

거친 펑크사운드를 기반으로 하되, 대중적인 멜로디와 긍정적인 가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이전과는 다른 음악을 들려주는 이들의 앨범을 듣다 보면 약함과 악함 사이, 우리에게 필요한 '건강함'이라 해도 좋을 어떤 기운을 느끼게 된다.

우리에겐 지금 기댈 곳이 없다. 지난 열흘 남짓, 수많은 사람이 이 선명한 사실을 소름 돋게 깨달았다. 그리고 그 참담한 시간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어른들의 말만 믿다 새까만 물속에 갇혀 마지막 순간까지도 누군가 구해주러 오길 기다렸을 생때같은 아이들을 단 한 명도 구해내지 못했다. 속수무책이라는 것, 무력하다는 것, 약하다는 것이 이처럼 구역질이 날 만큼 역겨운 일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나아가 여전히 우리 앞에는 잠정적인 세월호라 해도 좋을 수많은 원전과 KTX 등 그야말로 공안을 위협하는 불안요소들이 도처에 깔려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기를 떠날 수 없다. 여전히 우리는 여기에 있고 여기서부터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길 소원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해야만 하는 걸까. 아마도 그것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공감하고 손을 내밀며 내민 손을 잡아주는 것, 우리가 서로를 꼭 품에 안고 함께 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추상과도 같이 서늘하게 책임을 묻고 단죄하는 것, 그것만이 아노미를 넘어선 아노미, 지금 우리의 현실을 조금씩, 조금씩 옮겨놓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일 테다.


# 21스캇은

21스캇(scott)은 2001년 부산에서 결성돼 13년째 활동 중인 펑크밴드다. 스타벅스와 유테로의 드러머로 활동하던 김성훈을 중심으로 결성됐으며 그들 스스로 푸 파이터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밝힐 만큼 닮은 점이 많다. 보컬과 기타를 맡은 김성훈이 드러머 출신이라는 점, 또 공격적인 펑크사운드를 기반으로 하지만 밝고 긍정적인, 나아가 팝적인 멜로디까지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2006년 데뷔앨범 발매 후 일본, 호주, 미국 등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다 보컬의 성대수술, 드러머의 탈퇴 등으로 활동을 잠정 중단했다가 8년 만인 지난 3월, 2집 'Rock star'를 발매하고 전국 투어 중이다. 이미 부산, 대구, 광주 공연을 마쳤고 다음 달 3일, 서울 '쌀롱 바다비' 공연을 앞두고 있다.

사회학자·호밀밭 출판사 대표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격주로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