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껍질을 깨고 나와야 참세계 만나고, 상처 입은 자들만이 깔깔댈 수 있어
- 민중들 몸 움직이며 부른 레게음악, 한국적 신명·흥으로 다시 태어나

알 속에 있을 때, 세계는 반짝이고 매끈하며 순결하다. 밝고 선하고 참되고 질서정연한 것들로만 가득하다. 알의 껍질 안쪽은 때 묻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천국에는 웃음이 없다'던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이 가짜(pseudo) 세계 안에서는 웃음도 딱히 필요가 없다. 모든 것이 과잉이라 해도 좋을 만큼 충족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태어나려는 자는 이 질서정연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깨고 나와 진짜 세계를 만나야 한다. 그때, 몸의 구석구석을 실제로 건드리는 세계는 선과 악이 혼재돼 있으며 모든 것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처투성이의 진짜 세계다. 혼란스럽고 추악하며 거짓과 질투가 난무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알을 뚫고 나와 껍데기의 압력을 벗어던진 자들만이 선과 악, 참과 거짓, 미와 추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 속에서 서로 얽혀있는 참세계의 '총체성(wholeness)'을 흐릿하게나마 목격할 수 있다. 그리고 이처럼 참세계의 모습을 목격하기 위해 기꺼이 상처 입은 자들만이 비로소 깔깔댈 수 있다.

■무관심은 죄(罪)

'멜랑콜리(Melancholy)'는 문화적 모더니티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현대인은 기본적으로 우울하다는 것, 혹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이다. 이 음울한 관념과 독백의 잔치 속에서 생기(生氣)를 찾아보기란 힘들다. 어떤 사람들은 지루하고 권태로운 하루하루를 보내며 삶의 공허함을 즐기는 반면 누군가는 일상생활 곳곳으로 침투해 들어와 실제 폭력보다 더 아프게 상처를 주는 불평등과 사회적 부조리의 칼에 무참히 쓰러지고 있다. 대도시와 현대사회의 익명성 속에 스며있는 이 우울의 기운은 어떤 상처에도 무감하고 어떤 상황에도 무관심한 인간을 낳는다. 일찍이 문화사회학자 게오르그 짐멜이 지적했듯, 이 무감함은 넘쳐나는 자극들 속에서 그나마 스스로를 잃지 않기 위해 현대인이 선택한 대도시에서의 생존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인생을, 세계를 돌파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무관심의 태도는 지나치게 수동적이기 때문이다.

세계가 피폐하니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도 피폐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오히려 피폐한 세계 속에서도 그것을 비틀고 짐짓 모른 체 하고 엄살떨고 넉살좋게 히죽거리는 것이야말로 진짜 세계를 목격하려는 성숙한 인간의 태도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절망은 그저 절망에 지나지 않고 삶은 견딜 수 없는 동어반복이 되어버리고 만다. 세계가 피폐할수록 웃고 뒹굴고 춤추는 신명을 잃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권태, 우울, 불안, 염세, 무기력 따위 근대의 질병이랄 수 있는 '토성적(Saturn) 정조'들은 모두 발로 차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피폐한 세계에서 피폐해지는 것은 얼마나 쉬운 일인가.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일이 아니다.

■인간의 심장박동을 닮은 음악, 레게

이 세계를 긍정하고 깔깔대는 음악으로 말하자면, 단연 레게음악이 떠오른다. 레게음악은 일반적으로 1박과 3박에 강세가 있는 서구음악과 달리, 2박과 4박에 강세가 있어 격식을 탈피하는 느낌을 주고 리듬 역시 인간의 심장박동에 가장 가깝다고 알려져 있어 들으면 편안해지고 자연스레 긍정적 감정을 느끼게 되는 음악이다. 앉아서 고상하게 감상하는 음악이 아니라 대지 위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의 음악이며 당연히 우리네 노동요처럼 민중이 몸을 움직이며 부르던 음악이다.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을 비롯해 1970년대 서구의 유명 음악인들이 자신들의 음악에 앞 다퉈 차용하며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제는 전설이 된 레게음악의 아버지와도 같은 밥 말리(Bob Marley)라는 걸출한 뮤지션이 자메이카의 토속음악과 리듬앤블루스를 접목해 창안한 음악, 레게(Reggae). 지금 레게음악은 전 세계 곳곳에서 계절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있다. 그 특유의 찰랑이는 리듬과 아름다운 선율에 실린 가사들은 언제나 관념이 아닌 실재하는 민중의 고통을 무겁지 않게 노래한다. 어둡고 우울한 기운을 걷어내고 인간의 몸을 닮은 생기 있는 음악으로 듣는 이의 가슴에 거칠 것 없이 파고들어와 감동시킨다. 밥 말리는 말한다. "음악으로 혁명을 일으킬 순 없다. 그러나 사람들을 깨우치고 미래에 대해 듣게 할 수는 있다"라고. 애잔한 민중의 비극적 삶을 레게라는 독특하고도 경쾌한 리듬 위에 실어 노래한 밥 말리의 음악을 듣다보면, 절망과 희망 혹은 희망과 절망이라는 두 날개를 펼쳐 위태롭지만 우아하게 균형을 잡고 날아가는 숭고한 한 마리 새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음악은 우리의 무기, '스카웨이커스'

'스카로 사람들을 일깨우는 이들'이란 뜻의 '스카웨이커스(Ska Wakers)'는 올해로 7년째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브라스 스카레게밴드(Brass Ska Reggae Band)다. 스카는 레게에서 진화된 음악으로 레게음악이 가진 흥과 신명의 기운이 한층 강하다.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면서도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어낸 이들은 특히 집회 현장이나 사회적 참여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열정적인 공연을 펼치기로 유명한데, 이는 레게음악의 형식은 물론 그 철학과 태도 역시 가장 잘 구현하고 있는 역량 있는 밴드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랄 수 있다. 신명과 흥이라는 한국적 정서를 기반으로 자메이칸 리듬과 에너지 넘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이들의 음악은, 당대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공동체의 행복을 바라기 위해 우리 모두가 반드시 무거운 옷을 입어야 하는 것은 아님을 알려준다. 바야흐로 여름이 다가오는 요즘, 지난해 발매된 스카웨이커스의 EP 'Music is Our Weapon'을 자주 듣게 되는 까닭이다.

"우리는 누구보다 이 땅의 평화를 원한다네, 그래서 누구보다 먼저 이 싸움에 나선다네, 우리는 누구보다 평등한 자유를 원한다네, 그래서 누구보다 가장 앞장서서 싸운다네. 우리는 누구보다 정의로운 삶을 원한다네, 그래서 누구보다 먼저 이 싸움에 나선다네, 우리는 누구보다 자연스런 삶을 원한다네, 그래서 누구보다 가장 앞장서서 싸운다네. 우리의 노래가, 우리의 몸짓이, 우리의 신명이, 우리들의 무기라네."


# 밥 말리, 뮤지션 넘어 정치인·철학자 존경받아

- 부산 밴드 스카웨이커스
- 7년째 전국 무대로 활동

	부산을 기반으로 7년째 활동중인 스카웨이커스. 레게의 진화된 음악을 하며 흥과 신명의 기운이 강하다. 스카웨이커스 제공

밥 말리는 단순한 뮤지션을 넘어 행동하는 정치인이자 철학자로 존경받는 록음악사의 전설이다. 1945년생으로 영국인 장교와 10대 자메이카 여성 사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제국주의 국가들에 대한 반감이 컸다. 레게음악의 전설이 된 밴드 '웨일러스(Wailers)'를 통해 열렬한 지지와 인기를 얻었고 '여인이여 울지 말아요(No woman No cry)'를 통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그의 음악은 단순히 선동적이고 정치적인 차원을 넘어 민중의 자긍심과 생활에서 우러나오는 신명을 표현했다. 그는 1981년, 36세 나이로 사망했으나 지금도 세계 각국에서 그의 음악들이 연주되고 있다.

스카웨이커스는 부산을 기반으로 7년째 활동 중인 스카레게밴드다. 전국의 다양한 무대에서 공연하고 있으며 작년에는 자신들만의 공간이자 레이블인 '루츠(Roots)'를 설립하고 첫 번째 단독콘서트를 열고 EP를 발매하기도 했다. 올해 6월 첫 번째 정규앨범을 발매할 계획이며 멤버들은 문화기획에 참여하고 있기도 하다.

사회학자·호밀밭 출판사 대표

※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격주로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