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회고전 개막식이 열린 지난 23일 영화의전당 접견실에서 임권택(오른쪽) 감독과 김홍준 감독이 나란히 앉아 회고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홍영현 기자 hongyh@kookje.co.kr

# 임권택

- "애착 큰 '잡초' 필름 분실 아쉬움
- 12월께 새로운 작품 촬영 들어가
- 배역 만들테니 출연해 줬으면…"

# 김홍준

- "BIFF서 임권택 회고전 시의적절
- 감독님이 원하시면 언제든 OK
- 단역이라도 맡겨만 준다면 영광"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한국 영화 거장 임권택(78) 감독의 '한국영화회고전'으로 올해 영화 축제를 시작했다. 지난 23일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개막식에는 임 감독의 회고전을 축하하기 위해 달려온 후배 영화인들로 북적였다. 한마디로 영화인들의 축제 분위기였다. 이날 김홍준(58) 감독도 바쁜 일정을 쪼개 서울에서 부산으로 한걸음에 달려왔다. 그는 임 감독 연출부 출신 영화감독이다. 개막식에 앞서 임 감독과 김 감독을 잠시 만나 회고전에 대한 소감을 들어봤다.

-두 분 사이가 돈독하다고 들었습니다. 얼마 만의 만남인지요.

▶(임권택·이하 임)알고 지낸 지는 20년이 넘었지만 3~4개월 만에 보는 것 같은데…. 각자 바쁘니까 어쩔 수 없죠. 이런 기회에 얼굴 보는 거지. 오늘 반가운 얼굴 많이 보겠네.

-BIFF 한국영화회고전 사상 가장 블록버스터급 회고전이 아닌가 싶습니다. 소감이 어떠신가요.

▶(임)내 영화가 오래 살아남아 많은 사람이 다시 본다니까 감개가 무량하죠. 물론 초기 작품들은 보여주기 좀 부끄럽지만요.

▶(김홍준·이하 김)BIFF가 매년 한국 영화 선배들을 기리는 회고전을 열어 줘 고마워요. 특히 올해는 임 감독님 회고전을 마련했다는 게 시의적절하지 않나 싶어요. 올해 한국영화가 흥행과 작품성 모두 거머쥔 뜻깊은 해 아니겠어요. 거기에 맞춰 한국영화의 산 역사인 감독님 회고전을 하면 딱 안성맞춤이죠. 게다가 감독님 작품 101편 중 71편을 대중에게 공개한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농담으로 기네스북에 신청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했어요.

-두 분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김)임 감독님 연출부에서 영화를 배웠어요. '서편제', '개벽', '장군의 아들 2·3' 등 4편 조감독을 했죠.

▶(임)이 친구 참 특이해요. 박사 과정까지 끝낸 사람이 갑자기 현장에서 일하고 싶다고 37세에 연출부 막내로 들어온 거야. 독특하다고 여기다가 '서편제' 조감독을 시켰죠. 그때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김)임 감독님 연출부로 일한 시간은 2년밖에 안 돼요. 하지만 감독님 밑에서 도제식으로 배운 것이 제가 영화계에서 계속 일할 수 있었던 힘이 된 것 같아요.

▶(임)아니야. 내가 만난 조감독 중에 제일 뛰어났어.

▶(김)과찬이세요. 그런데 그런 건 있었죠. '서편제' 조감독 시절 감독님만큼 작품에 대해 고민했어요. 조감독으로서 해야 할 일 중에서 기술적인 부분은 미흡했지만, 감독님이 읽으시는 책을 따라 읽고, 판소리도 연구하고 그렇게 작품을 연구하고 준비하는데 열심히 했더니 그게 마음에 드셨나 봐요.

-임 감독님의 작품에 배우로도 출연하셨죠.

▶(김)단역이라 출연이라고 하기 민망해요. 임 감독님이 연출부 친구들을 종종 영화에 출연시키세요. 카메라 앞에 서봐야 어떻게 찍을지 안다고.

-회고전을 앞두고 가장 마음이 가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임)내가 한국인만이 만들 수 있는 작품을 해보자고 결심하고 제작한 영화가 '잡초'예요. 흥행은 안 됐지만, 애착이 큰 작품인데 필름을 잃어버렸어요. 그때만 해도 극장에 개봉하면 그 뒤로 영화를 안 봤으니까. 오늘 같은 날이 올 줄 알았더라면 끝까지 보관했어야 하는데…. 그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회고전 상영작 71편 중 추천하는 작품이 있다면요.

▶(임)소설가 이청준의 작품을 영화로 만든 '축제'가 있어요. 치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르는 과정을 담았는데 작가의 어머니에 대한 마음이 절절해. 저도 어머니께 효도하고 싶었는데 마음대로 안 돼 그게 가슴에 맺히더라고요. 이 작품은 이청준이란 자식이 어머니께, 임권택이란 자식이 어머니께 보내는 사모곡처럼 느껴져요.

▶(김)71편 모두 추천작이에요. 그중 3편만 꼽자면 남북 분단의 아픔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본 '짝코', 올해 개봉 20주년을 맞는 '서편제', 다소 진지한 영화 '개벽'을 추천해요. 특히 '개벽'은 러닝타임 2시간10분과 2시간 25분 두 편이 있는데 유일하게 남은 2시간25분 프린트를 디지털로 복원한 것이라 아주 귀한 자료예요.

-임 감독님은 102번째 영화를 준비 중이신데 캐스팅은 하셨나요?

▶(임)시나리오 작업 중인데 12월 정도면 촬영에 들어갈 것이고 부산에서 많이 찍을 것 같아요. 김 교수처럼 외모와 지성 모두 갖춘 사람에게 그에 걸맞은 역할을 줘야하는데…. 부탁하면 들어주겠지?

▶(김)당연하죠. 영화에 출연한다는 거창한 의미보다 감독님의 촬영 현장에 놀러 간다는 마음으로 기쁘게 할게요.

▶임권택 영화감독

한국 영화계의 산 증인. 1962년 '두만강아 잘있거라'로 데뷔한 이래 101편의 영화를 만들었고, 현재 102번째 작품을 준비 중이다. '만다라'가 한국영화 최초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으며 칸영화제 감독상, 베를린영화제 명예황금곰상 등을 수상하며 세계 영화계에서 이름을 떨쳤다. 지난 2007년 동서대 임권택영화예술대학 석좌교수로 위촉됐다.

▶김홍준 영화감독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교수이자 영화감독. 임권택 감독 연출부로 시작해 '장미빛 인생', '정글스토리' 등을 연출하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수려한 외모 덕분에 임 감독의 영화에서 여러 역할로 출연했으며, '달빛 길어올리기' 메이킹 다큐를 연출할 만큼 애정이 남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