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일본 영화사에서 빛났던 여배우는 80세가 되어서도 우아했다. 부드러운 모습 속에 강단 있는 여배우의 위엄을 보여주며 부산 영화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950년대 일본 영화를 대표하는 여배우 와카오 아야코(80·사진)가 지난 14일 영화의전당에서 부산 팬들과 만났다. 영화의전당이 주최한 '스튜디오 다이에 특별전'에 마스무라 야스조 감독 대신 그의 '영화 동지' 와카오 아야코가 참석한 것이다. 김태용 영화감독이 함께한 관객과 대화는 1시간 넘게 진행됐다. 관객과 만남에 앞서 그녀에게 부산을 방문한 소감을 들어봤다.

"부산은 첫 방문이에요. 요즘 일본 젊은이들은 옛 영화를 잘 보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부산의 팬들이 제 영화를 봐준다니 고마워서 한걸음에 달려왔죠." 와카오 아야코는 1951년 일본 최대 영화스튜디오 다이에스튜디오 5기 신인배우로 발탁돼 영화계에 입문했다. 그녀는 미조구치 겐지, 마스무라 야스조 등 일본 거장들의 영화 150편에 출연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중에서도 그녀가 가장 빛났던 것은 마스무라 감독의 작품에서였다. 마스무라 감독의 대표작 '세이사쿠의 아내', '아내는 고백한다', '남편은 보았다'을 포함해 20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다이에 스튜디오에 신인배우로 들어가서 당시 조감독이었던 마스무라 감독에게 연기 지도를 받았어요. 그가 이탈리아에서 유학한 뒤 돌아왔을 때 첫 영화에서 주역을 맡았고요. 마스무라 감독은 순종적이고 다소곳한 일본 여성의 틀을 깬 자아가 뚜렷한 여성상을 그렸는데 거기에 제가 적합했나 봐요. 연기할 때 죽을 만큼 괴롭기도 했지만 결국 그때의 노력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죠."

그녀가 기억하는 마스무라 감독은 어떤 사람일까. "마스무라 감독은 형식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했어요. 틀에 박힌 것을 깨뜨리고, 새로운 리얼리즘을 추구했지요. 현장에서도 엄격했고 많은 것을 요구해 배우로서는 고통스러웠어요. 하지만 그런 과감한 시도와 용기가 지금까지 그의 작품이 존경받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한국의 영화학도들도 마스무라 감독의 도전정신을 배웠으면 해요."

그녀는 한국 배우에 대한 인상도 덧붙였다. "일본에서 TV를 틀면 모든 채널에서 한국 프로그램을 방송해요. 한국의 배우들은 외모와 체형이 뛰어나 일본 아줌마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어요. 인연이 되면 저도 한국 감독과 작업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시간이 많지 않으니 연락해주세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