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시즌이다. 일상을 탈출할 절호의 기회이다. 어디로 갈까. 어디든 일상이 따라오지 않는 곳으로. 일상에 안주한다는 말은 욕이다. 일상의 콧구멍에 이따금 바람을 쐬어줘야 숨이 막히지 않는다. 날마다 여행하며 살 수는 없다. 여행을 떠나도 여행지의 삶은 다시 일상이 된다. 유감스럽게도 일상이 따라오지 않는 곳은 없다.

일상 그 자체는 꿈도 환상도 아니다. 나날이 영위해야 하는 모든 것이다. 그 안에서 태어나고 사랑하고 살아가며 죽음을 맞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을 거부하거나 저항하거나 벗어나거나 깨부수어야 할 부정적인 대상으로만 설정하는 오류를 범하곤 한다.

일상은 삶 대부분을 구성한다. 만약 일상을 무시해야 한다면, 일상 속의 삶이 얼마나 지리멸렬하고 권태로울 것인가. 일상을 벗어나기만을 꿈꾼다면 현실은 얼마나 무겁고 갑갑할 것인가. 그 시간은 감옥에 갇힌 죄수에 다름없는 나날일 것이다.

일상을 깨부수어야 한다면 일상은 아마도 적이 될 것이고, 마음은 망치를 휘두를 타이밍을 찾으며, 망치의 무게를 견뎌야 할 것이다. 그럴수록 일상의 견고함은 강도를 더해가고 산꼭대기로 밀어 올려야 하는 일상의 바윗덩어리는 나날이 더 커져서 마침내 시시포스는 일상에 깔려 압사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상을 얼마나 알까. 일상은 벗어나고 싶어 안달해야 하는 무의미한 것인가. 가장 익숙한 것이어서 무시해도 좋은 것인가. 별다른 자각이나 의식 없이 그 속에 안주해도 될 만큼 애초부터 낯익은 것인가. 일상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리의 모든 정신적 육체적 행위는 모두 일상의 자장 안에 있다.

여행하고, 산책하고, 술을 마시고, 잠을 자고, 책을 읽고, 사람들과 접촉한다. 때로는 고독하고, 때로는 침묵한다. 비밀을 간직하기도 하고, 그 비밀 때문에 단절되기도 한다. 향수를 사용하기도 하고, 정오의 태양 아래 홀로 서기도 하고, 자정의 시간에 홀로 깨어나 불면의 고통을 겪기도 한다.

일상의 모든 행동이나 양태들은 우리가 의식하고 있는 그 표면을 넘어선 의미가 있다.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 일상의 이면에서 무수히 많은 톱니바퀴가 분주히 맞물려 돌아감을 기억할 때 우리 삶의 긴장된 본질이 드러난다.

일상의 탈출은 궁극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일상 안에서 날마다 가슴 두근거리며 기쁘게 살 수는 없을까. 일상 그 자체를 즐기며 살 수는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일상을 적이 아니라 친구가 되게 하고 벗어나야 할 감옥이 아니라, 찾아가고 싶은 여행이 되게 해야 한다.

일상은 벗어나야 할 것이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야 할 것이다. 일상의 변죽만 울리다가, 일상의 껍질만 핥다가 끝나는 삶이 아니라, 일상의 심장과 같이 뛰고, 일상의 폐와 같이 숨 쉬다가, 스스로 일상의 좌심실이 되고, 스스로 일상의 허파꽈리가 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일상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상의 모든 것이 새로운 의미가 될 것이다. 일상의 해방은 일상의 깊이에서 가능해진다. 날마다 일상의 탈주로를 모색하는 당신. 이번 휴가에는 일상 속으로 깊이 뛰어들어가 보는 것은 어떠실런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