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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문화 실크로드 시간여행 <14> 조선통신사와 연행사

中엔 연행사·日엔 통신사 파견… 조선, 양국 문물교류 가교 역할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3-04-29 19:32:08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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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행도'. 베이징에 도착한 사행의 모습을 그렸다. 거대한 성벽 앞에서 사행은 대국의 규모를 실감했을 것이다.
# 사대정책에 따른 연행사

- '삼전도의 치욕' 삭히며 사신 보내
- 베이징 입성 때 큰 환영도 못 받아

# 교린정책에 따른 통신사

- 조선 평화유지-日 막부권위 과시
- 양국 이해관계 맞아 성대한 행렬

# 두 사행, 문명의 길을 잇다

- 조선 사절단, 중국·일본 오가며
- 경제적 교역, 문물·정보 중개 담당
- 천혜길목 활용 정세 주도했더라면
- 동북아 근대역사 바뀌었을 수도

   
'조선통신사내조도'. 여러 논란이 있지만, 조선통신사의 성대한 행렬 모습은 잘 표현되어 있다.
조선통신사의 길, 중국 베이징으로 연결되고 세계로 이어지다. 한일 문화 실크로드 시간여행은 이제 종착역을 향하고 있다. 그러나 여행의 끝은 또 다른 여행의 시작이며, 길이 끝나는 곳에서 새로운 길이 시작된다. 이 때문에 우리는 짐을 풀면서도 다시 새로운 여행을 준비해야 한다. 특히 조선통신사 길의 끝자락에서 유심히 보아야 할 곳은 바로 연행길이다.

흔히 조선통신사와 연행사는 별개로 여긴다. 그러나 둘은 조선 후기 동아시아의 평화를 유지하는 두 축이었다. 통신사행과 연행은 하나의 세계관에서 수립된 두 정책이 수행되는 방식이다. 조선은 성리학을 정치이념으로 삼아 나라를 세우고 그에 기초하여 대외 정책을 수립하였는데 그 토대가 화이관이다. 이에 의하면 섬겨야 할 큰 나라 중국을 제외한 나라를 오랑캐라 간주하였으며, 여기서 구체화한 정책이 바로 사대교린 정책이다. 곧 연행은 사대정책에 따라 수행되고, 통신사행은 교린정책 아래 이루어진 사행이다. 이는 당시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질서에 부합코자 한 것이다.

그런데 임병양란, 명청의 교체 등으로 정세가 소용돌이치고, 동아시아 조공질서가 위기에 빠졌다. 조선으로선 대륙을 장악한 오랑캐와 철전지원수가 된 일본에 대해 기존정책을 더 이상 수행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큰 틀에서 대외정책을 바꾸지 않았다. 적어도 19세기까지 동아시아 질서가 안정을 되찾고 평화가 지속한 것은 이에 힘입은 바 컸다.

물론 두 사행의 양상이 같지는 않았다. 잠시 두 사행의 모습을 담은 위의 두 그림을 보자. '조선통신사내조도(그림 오른쪽)'와 '연행도'이다. 우선 두 그림에 나타난 사행의 규모와 모습을 보면, 에도에 간 사행이 받은 성대한 환대에 비해 베이징의 황성 앞에 이른 조선의 사행은 초라하기 이를 데가 없다. 이런 차이는 두 사행의 서로 다른 성격에 기인한다. 곧 연행은 절행(정기사행), 별행(특별사행) 등 한 해에도 수차례 베이징을 다녀왔다. 게다가 사대를 위해 가는 사신을 중국이 특별히 갖추어 맞이할 필요도 없었다. '연행도'는 사행의 규모를 지나치게 소략하게 그린 점이 있지만, 그 실상은 적절하게 표현하였다. 반면 통신사행은 그 이면에 양국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얽혀 있다. 곧 조선은 사행을 보냄으로써 일본과의 관계를 평화롭게 유지할 수 있었으며, 일본은 조선통신사의 왕래 모습을 백성에게 널리 보여주면서 막부의 권위를 높이고자 하였다. 거리를 가득 메운 군중 사이로 지나는 사행의 모습은 그 같은 관계를 매우 잘 그린 것이다.

이런 차이를 넘어 두 그림에서 주목할 것은 임진왜란 이후 적개심을 삭이며 선린우호의 사신을 보내고, 삼전도의 치욕을 무릅쓰고 베이징에 사신을 보냈던 조선의 눈물겨운 노력이 서려 있다는 점이다.

또한 두 사행의 노정은 문명을 이어준 하나의 길이었다. 사행에서 정치 외교적 임무 못지않게 동아시아의 문물과 정보가 오가는 역할의 비중이 점점 확대되었다. 이미 앞선 글에서 본 바와 같이 조선은 인삼과 중국에서 가져온 비단 등을 일본에 가져갔으며, 돌아오는 길에는 은을 가져와 이를 다시 중국으로 가져갔다. 중국과 일본이 직접 교역을 하지 않을 때 두 나라의 문물교류는 조선이 중개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쯤 되면 앞의 두 그림에서 그려지지 않은 부분, 즉 연행의 짐수레에는 일본에서 가져온 은이 실려 있고, 조선통신사의 배에는 중국에서 가져온 비단이 실려 있었다는 사실 또한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조선은 중국과 일본을 오가며 뜻밖에도 서양이라는 존재를 새롭게 알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통신사의 길과 베이징으로 가는 길은 한반도에서 하나로 이어졌으며, 그 길은 또 세계로 연결되었다.

그러나 정세가 급변하여 개항이 이루어지고, 통신사행과 연행이 차례로 종결되었다. 서세동점의 본질을 꿰뚫고 이에 주도면밀하게 대처하지 못한 결과이다. 대신 강압적 과정을 통해 수신사행이 다녀온 곳은 에도막부가 아니라 메이지 일본이었다. 이야말로 중세 조선이 근대 일본으로 시간여행을 간 것이다. 돌이켜보면 조선은 중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이 천혜의 길목을 장악하고 정세를 주도하여 나라의 명운을 바꿀 수도 있었다. 실학 혹은 북학은 그 가능성을 보여준 경우였으나, 무엇보다 서세가 세계로 확장되는 상황에서 더 이상 실상에 부합하지 않는 화이관이 조선의 발목을 잡았다. 이로써 동아시아 질서와 조선의 유지기반은 일거에 무너지고, 한반도는 격동에 휘말려 들었다.

길의 주인은 누구인가? 바로 그 길을 걷는 자가 주인이다. 사행길을 숱하게 오간 조선은 과연 주인의 길을 걷고자 하였던가? 이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서만이 세계로 이어졌던 조선통신사의 실크로드를 다시 열어갈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홍대용이 베이징에 가져간 미농지는 어디서 났을까?

   
일본 기후 현의 미농 지방에서 생산되는 미농지. 조선에서도 꽤 유명한 종이었다.
1765년 홍대용은 사행을 따라 베이징에 가서 항주에서 올라온 세 선비를 만나 필담을 나누고 선물을 주고받았는데, 홍대용이 준 선물 중에 일본산 미농지가 있었다. 추측건대 그는 조선통신사를 통해 이를 얻었을 것이다. 그가 중국에 가기 2년 전 계미통신사행이 일본에 다녀왔는데, 홍대용과 친분 있는 인사들이 많았다. 아마 이들이 돌아와 건넨 선물에 미농지가 들어있었으리라.

한편 홍대용은 베이징의 남천주당에서 자명종을 구경하며 그곳 서양신부와 이야기를 나눈다. 조선에도 자명종이 있는가, 일본의 자명종은 어떤가 하는 서양신부의 물음에 홍대용은 조선에도 스스로 만든 것은 물론 여러 나라 자명종이 다 있고, 일본 것의 정교함은 중국보다 절대 뒤지지 않는다고 답했다. 천문학과 수학에 해박하고, 기술문명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각국의 과학기술 수준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목할 것은 이 미농지나 자명종에 관한 담론이 당시 문명교류 역사를 생생히 담고 있다는 점이다.

홍대용은 일본에 간 적은 없지만, 여러 정보를 통해 매우 전향적인 태도로 일본을 대했다. 특히 그의 에도시대 학문에 대한 평가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의 소견에 일본의 학문이 우리나라나 중국에 뒤떨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이토 진사이와 오규 소라이가 일본 문풍을 이끌어 일본의 칼날을 무디게 한 공로가 크고 이는 우리에게도 복이니 마땅히 이 두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존경받아야 한다"고까지 했다. 다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일본의 학문을 이단으로 취급하는 당시 조선의 고루한 인식 풍토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는 점은 높이 살 만하다.

   
홍대용은 단순히 일본에 대하여 긍정하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그의 목적은 '의산문답'에서 말한 것처럼 천하에 화와 이는 따로 없으며 모두가 자기가 서 있는 곳이 중심이라는 생각을 확립하는 데 있었다. 그래야 세계를 올바로 파악하고 조선이 나아갈 바를 새롭게 모색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정훈식 부산대 국문과 전임대우 강사

공동기획: 부산문화재단, 조선통신사학회, 국제신문

협찬: YK Steel(주)

후원: 누네빛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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