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황인학 조각가의 '사람'

- 육체 단순화로 내면세계 표출

1941년 경남 마산(지금의 창원시)에서 태어난 '부조 조각가' 황인학. 유년시절부터 그림을 좋아하고 건강체질이었던 그는 1959년 마산고를 졸업, 가난한 사람을 위해 봉사하면서 평생 그림을 그리기로 마음먹었다. 10여 년간 만화를 그리면서 창작의 꿈을 키워가던 그가 본격적으로 부조작업을 한 것은 1971년. 이후 1978년부터 1985년까지 마산과 부산에서 치른 총 6회의 개인전을 통해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동판부조와 입체조각, 드로잉 등을 발표했다. 45세의 젊은 나이에 극도의 영양부족과 결핵 중증으로 생을 마감한 그를 "자유로운 창작정신을 바탕으로 끝없이 고뇌하고 회의하면서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나간 투혼의 조각가"(서양화가 김철수)로 기억하고 있다.

미광화랑(부산 수영구 민락동)이 그의 유작전을 마련했다. 대형 동판부조 한 점을 포함해 총 8점의 부조와 드로잉 6점, 드로잉이 소개된 스케치북 수첩 1권 등이다. 군데군데 녹이 슨 대작 동판에 새겨진 도상은 주로 남자와 여자, 그리고 아이들이 덩어리로 얽혀 있는 '신(新)' 인체화다. 얼핏 보면 이중섭을 연상하게 하는데, 그와는 또 다르게 인체형상을 회화적인 방법 혹은 부조방식으로 표현했다.

모든 작품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거대한 손과 발, 과장된 유방, 남녀의 음부와 성기 돌출 등은 그로테스크하게 보인다. 이를 두고 당시 평단에서는 "과감한 생략에 의한 선으로써 철저하게 육체를 단순화, 형상화하면서 자신의 깊숙한 내면세계를 표출했다"는 평을 했다.

미술품 컬렉션과 평론을 겸하는 김동화 씨는 "농염한 일련의 성적 코드에도 고독한 인간 실존을 극복하려는 처절한 몸부림과 원시적 열렬함이 성을 매개로 표출되기 때문에 작품의 본질을 에로스(eros)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면서 "이중섭의 군동화(群童畵)가 헤어진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해후를 향한 열망이라면, 그의 동판 부조는 인간 본원의 외로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생명의지에 가깝다"고 말했다.

우연히 손에 들어온 볼펜 드로잉 수첩이 인연이 돼 전시를 기획했다는 김기봉 관장은 "언젠가는 전시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자 거짓말처럼 그의 동판 부조작업 여러 점을 한꺼번에 구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오랜 세월 미술사의 표층 아래 묻혀 있던 작가의 치열한 작가정신과 진정성 어린 작업들을 알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전시 개관일이던 지난 15일까지 유족(아내와 아들, 딸)과 연락이 닿지 않아 별다른 행사 없이 조촐하게 전시가 시작돼 아쉬움이 남는다. 오는 29일까지. (051)758-2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