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척박한 자연 환경 덕분에
- '공존'의 가치 최고로 여겨
- 탐욕 찌든 현대인에 깊은 울림
- 오래된 지혜 /김선자 지음 /어크로스 /1만5000원

'옛날 옛적에', '아득한 옛날'이라는 말은 몽환적이다. 그 시공간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마법이 통했을지도 모를 아득한 옛날은 지금도 여전히 현대인에게 수많은 꿈을 꾸게 한다.

동아시아 신화 전문가로 알려진 김선자 박사가 10년간의 취재와 답사를 거쳐 발굴한 오래된 지혜에서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동아시아 소수민족의 신화 보따리를 푼다. 저자가 흥미진진한 신화 이야기를 통해 일깨워주려는 메시지는 우리가 잃어버린 '공존의 가치'.

나시족이 사는 중국 원난성의 리장. 지금도 거리 곳곳에 맑은 물이 흐른다. 비결이 뭘까. 저자는 "신화"라고 힘주어 말한다.

'먼 옛날 인간과 자연은 서로의 영역을 지키며 살았다. 그런데 인간의 수가 점점 불어나면서 자연의 영역을 침범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자연의 영역인 물과 산으로 밀고 들어와 물을 오염시키고 산의 나무를 함부로 베었으며 숲 속의 동물을 마구 잡았다. (…) 견디다 못한 자연신, 즉 물과 나무와 산에 깃들어 있는 '수'들은 인간에게 반격을 가했다. 홍수가 마을을 휩쓸었으며, 혹독한 가뭄으로 물줄기가 말라버렸다.'(48~50쪽)

비슷한 이야기는 구이저우성 먀오족 신화에도 나온다. 먀오족 창세 신화에 등장하는 영웅 장양은 자연계의 다른 모든 존재를 쫓아내고 지상의 주인이 된다. 장양은 농지를 개간하기 위해 산을 끊임없이 파헤치다가 홍수가 나는 바람에 지네에 물려 죽는다.

저자는 자연의 영역을 침범한 인간에 대한 자연의 반격을 담은 나시족과 먀오족 신화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원령공주(모노노케 히메)'와 연결한다. '원령공주' 도입부에 거대한 멧돼지가 나오는 것은, 서식처를 잃어버린 자연이 재앙신 타타리카미가 멧돼지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거라고. '원령공주'에서 철을 캐는 부족을 이끄는 에보시라는 인물은 우리 사회 탐욕의 상징이다. 견디다 못한 자연은 원령공주를 앞세워 반격을 가하면서 인간과 대결을 벌인 끝에 공존의 실마리를 찾는다는 내용이다.

원난성의 척박한 산지에서 사는 둥족은 딸을 낳으면 삼나무 백 그루를 심는다. 딸이 자라 혼인할 때 베어 쓰기 위해 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이들이 숲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그리스·로마 신화에는 인간의 근원적 탐욕이 투영되어 있다면, 동아시아 신화는 만물의 의미를 찾고 자연의 소중함을 노래한다. 저자는 그 이유를 소수민족이 사는 척박한 자연환경에서 찾는다. 땅을 함부로 파헤쳤다가는 풀도 죽고 마는 초원, 폭우로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가파른 산…. 그런 환경 속에서 늘 하늘과 땅을 살펴보고 살아야 했던 옛사람은 공존이 가장 현명한 생존방식임을 깨달았다는 얘기다.

이처럼 동아시아 신화와 가르침은 오늘을 사는 현대인에게 욕망과 탐욕을 경계하라는 깊은 울림을 전한다. 저자는 "언제나 뒤를 돌아보면 답이 있다"고 귀띔한다. 내일을 준비할 지혜를 터득할 수 있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