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수주의자 이념으로 규정
- 근·현대 정치적 사건 분석
- 보수주의자들은 왜? /코리 로빈 지음 /천태화 옮김 /민요사 /1만8500원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 수호, 작은 정부 지향, 점진적 개혁 추구….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보수주의에 대한 개념 규정이다. 이것이 과연 보수주의의 실체일까? 최근 미국에서 '디지털시대의 전형적인 대중지식인'으로 각광받고 있는 정치학자 코리 로빈은 "아니오"라고 강하게 고개를 내저으며 상식을 뒤엎는다.

그는 보수주의자들은 왜?(원제 The Reactionary Mind)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출간된 자신의 저서에서 "그런 것들은 단지 보수주의의 역사적 부산물이며, 보수주의는 사람들이 상급자의 속박에서 해방되는 것, 특히 사적 영역에서 자유를 얻는 것에 대한 반대"라고 정의한다. 아울러 "자유방임론자이건, 파시스트이건, 종교적이건, 전통주의자이건 관계없이 모든 보수주의 정치인들은 가슴속에 반동적 충동을 품고 있다. 그것이 바로 그런 세력들을 단합시켜주는 힘"이라고 한다.

2001년 9·11테러 사건. 이 사건은 미국 보수주의자들에게 탈냉전 후 세계지배의 염원을 실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국제신문DB

그의 이런 시각은 1789년 프랑스혁명부터 2001년 9·11테러까지 각종 근·현대 정치적 사건들에 대한 분석과 보수주의 이념을 창안한 에드먼드 버크, 윌리엄 버클리, 어빙 크리스톨 등 미국 보수주의 거물들에 대한 방대한 연구 결과물이다. 보수주의자들이 추구하는 바는, 저자가 2000년 버클리, 크리스톨과 한 인터뷰에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은 "탈냉전시대 미국인들은 역사상 가장 강대한 제국이 되었지만, 동시에 역사상 가장 반정치적인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다. 그것은 바로 자유시장"이라고 했다. 자유시장은 자발적인 교환이 이뤄지는 국제적 시민사회를 약속하는 것이며, 국가는 이따끔씩 법과 계약을 강제하는 것 말고는 개입할 여지가 없는 질서라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그들은 "이는 세계제국은 고사하고 한 국가의 질서조차 제대로 세울 수 없는 빈약한 토대일 뿐"이라며 세계문제에 대한 미국의 지배적인 역할을 강조했다. 자유시장을 통해 미국을 더 부유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진정한 제국이 되는 게 보수주의자들의 염원이라는 것이다.

미국 보수주의자들이 이런 꿈을 실현할 수 있게 된 계기가 9·11테러였다. 저자는 "9·11은 보수주의자들이 수십 년간 은밀하게 간직해왔던 제국으로서의 미국의 힘에 대한 야심을 주저없이 강력하게 표출할 계기를 마련해주었다"고 말한다. 보수주의자들의 제국주의적 비전은 필연적으로 폭력을 수반한다. 저자는 "보수주의자들은 폭력 때문에 슬퍼하고 부담스러워하거나 괴로움을 겪기는커녕 그것에 의해 활력을 얻어왔다"고 주장한다. '지배가 장엄할 수 있다. 그렇지만 폭력은 더욱 장엄하다. 모든 것들 중 가장 장엄한 것은 두 개가 혼합될 때, 즉 통제와 지배의 체제를 창조하고, 수호하고, 회복하기 위해 폭력이 행사될 때이다'라며 폭력을 미화한 버크의 저서(장엄함과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 이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 내용을 인용하면서.

하지만 보수주의자들의 제국주의적 비전은 성공을 거두고 있을 때만 정치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미국이 사건을 통제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 제국주의적 비전이기 때문에, 그것은 실패를 감당할 수 없다. 그렇지만 실패를 회피하는 순간, 제국주의자들은 그들이 사건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라크 등지에서 이미 노정했거나 현재 안고 있는 한계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