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필름이 만든 영화 '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

한국 영화를 '방화'라고 부르던 때인 1988년 '신씨네'가 문을 열었다. 지금의 한국 영화를 이야기하려면 이 신씨네를 건너뛸 수 없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영화를 만드는 가장 큰 이유가 외화 수입 쿼터를 받기 위한 실적 때문이었고, 그 내면화한 관성과 체질은 하루아침에 바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신씨네는 당시 용어조차 낯설었던 '영화 기획' 개념을 현장에 적용해 한국 영화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영화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그대가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베를린리포트' '결혼 이야기' 등이다. 또 신씨네는 컴퓨터 그래픽을 공세적으로 수용하고 사전 콘티 작업을 강조하는 한편 프로듀서와 아트디렉터의 역할 전문화, PPL 시도와 전략 마케팅 도입 등 우리나라 영화 기획의 전형을 제시했다.

기획한 작품에 더해 '101번째 프로포즈' '은행나무 침대' '편지' '엽기적인 그녀' 등 여러 화제작을 제작했고, 일찌감치 컴퓨터 그래픽과 특수효과 상용화의 물꼬를 튼 당사자답게 지금은 수년째 '로보트 태권V'를 다시 만드는 일에 매달리고 있다. 사실 이름을 하나하나 꼽아보면 지금 현업에 있는 중견 영화인 치고 신씨네의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 그만큼 신씨네의 그림자가 깊다.

뜬금없게 신씨네를 꺼낸 것은 '청년필름'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1990년대에 신씨네가 있었다면, 2000년대에는 청년필름이 있었다. 당사자들이야 민망해하겠지만 터무니없는 말은 아니다. 청년필름, 그들에겐 분명히 신씨네와는 또 다른 측면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낸 의미 있는 에너지가 있다.

근래 영화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이름들을 훑어보면 청년필름 출신이 많다. 김조광수 김용균 정지우 박찬옥 민용근 등 감독과 이선미 심현우 신창길 김정영 곽신애 등 프로듀서에 임필성 김수현 이송희일 노동석 김석윤 윤성호 등도 청년필름과 인연이 있는 감독이다. 모두 청년필름 소속도 아니고, 다른 회사로 적을 옮긴 사람도 있고, 개별 프로덕션을 만들어 작품을 준비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이쯤이면 한 무리의 세력(패거리가 아닌 좋은 의미!)이다.

청년필름의 뿌리는 1990년 활동을 시작한 '독립영화집단 영화제작소 청년'이다. 초창기 '운동' 성격이 강했지만, 영화를 중심에서 놓지 않았던 것이 '영화제작소 청년'의 가장 큰 동력이었다. 그들은 영화를 치열하게 만들었고 또 잘 만들었다. 김조광수가 판을 벌이고 김용균 정지우 박찬옥 장희선 등은 수작을 연이어 내놓았고 김진상은 다큐멘터리까지 아울렀다. 1999년 영화제작소 청년은 기획하던 영화 '해피엔드'를 들고 영화사 청년필름으로 확장했다(영화제작소 청년은 지금도 활동 중이다).

청년필름은 '와니와 준하' '질투는 나의 힘' '후회하지 않아' 등 주목할 만한 영화를 꾸준히 만들었고, 지난해에는 '조선명탐정'과 '의뢰인'으로 상업적으로도 성공했다. 이런 성과는 영화는 물론 영화를 만드는 일에 대한 분명한 태도와 입장을 올곧게 관철해 온 저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명료한 '청년 정신'을 바탕으로 영화계 곳곳에 선순환의 에너지로 널리, 오래 확산하길 기대한다.

부산영상위원회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