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출신의 윤종빈 감독이 부산을 배경으로, 촬영까지 대부분 부산에서 한 '범죄와의 전쟁'은 과연 부산 영화인가.

부산지역 영화인들은 '부산 영화'라는 말을 자주 쓴다. 하지만 어떤 영화를 부산 영화라고 하는지는 제각각이고, 명쾌하지 않다. '부산에 사는 사람이 만든 영화'라는 것일까 아니면 '부산에서 촬영한 영화'라는 말일까.

흔히 '부산 사람이 만든 영화'이거나 '부산에서 만든 영화'로 뭉뚱그려 쓰는 듯하다. 아니면 영화 속 '지역 배경이 부산인 영화'이거나 '이야기의 무대가 부산인 영화'일 수도 있고, '부산의 역사나 사회적 환경을 담은 영화' 또는 '부산 사람들의 정서를 담은 영화'를 부산 영화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억지로 요약해보면 '부산 사람이 부산에서 만든 영화'쯤 되겠다.

흔히 '충무로'라고 일컫는 한국 영화계 현장에서 활동하는 '부산 출신' 영화인이 다른 지역에 비해 상당히 많은 편이다. 그들이 부산에 와서 영화를 만들면 죄다 부산영화인가. 그렇다면 당최 부산 사람의 기준은 뭘까. 출생지로 따져야 하나 아니면 주민등록지 기준인가, 실제 거주지가 중요한 것인가. 그럼 '부산에서 만든 영화'라는 말은 또 뭔가. 단 한 장면이라도 부산에서 촬영하면 부산 영화인지, 판별할 촬영 분량의 기준이 어느 정도인지, 모호할 따름이다.

'친구'가 부산 영화인가. '해운대'는 어떤가. '친구'를 만든 곽경택 감독은 부산에서 대학까지 다니다가 미국 뉴욕에서 유학했고, '해운대'를 만든 윤제균 감독도 고등학교까지 부산서 졸업한 부산 '출향 인사'다. 그런데 왜 부산지역 영화인들은 '친구'와 '해운대'를 '충무로 영화'라고 생각하지 부산 영화로 쳐주지 않는 걸까. '부산 출신'의 윤종빈 감독이 '부산지역을 배경'으로 당시 '부산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심지어 '촬영도 거의 대부분 부산'에서 한 '범죄와의 전쟁'도 당연히 부산 영화가 아닌 '충무로 영화'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원산지'를 결정하는 가장 큰 기준은 제작비, 즉 돈의 출처다. 국제 공동제작의 경우에도 감독 등 주요 스태프들의 구성이나 제작 비중 등을 따지기도 하지만 제작비가 어느 나라 주머니에서 나왔는지가 관건이다. 나라 간에도 이럴진대 부산 영화니 서울 영화니 하며 영화의 지역성을 따지는 것은 어색하다.

이렇듯 '부산 영화'라는 울타리를 치는 것에 걱정이 앞선다. 물론 부산의 역사적 배경이나 지역적 특성을 영화에 잘 녹여 넣어 완성도와 대중성까지 그럴듯하게 성취한 영화가 나왔을 때 '부산 영화'라고 이름 붙여 마케팅 하는 식이라면 전혀 탓할 바가 아니다. 또다른 측면에서 활용할 만한 연결고리가 있는 영화라면 '부산 영화'로 특화해 홍보하는 것도 나름 유용한 전략이 될 수 있다. 일정한 패턴이 생기면 부산 영화라는 브랜드로 키워나가는 것은 오히려 장려할 일이다.

부산지역의 영화인들이 부산의 영화를 고양하고, 정책 관계자들이 영화의 산업적 부흥을 도모하겠다면 가장 먼저 고답적인 개념의 '부산 영화'라는 틀을 깨야 한다. 제작에 참여한 사람이 부산 사람인지 아닌지, 제작사의 행정적 소재지가 부산인지 아닌지를 감별해 '부산 영화' 여부를 판정하는 것은, 촌스럽거나 시대착오적이다. 부산에서 돈을 쓰고가는 영화 촬영이 줄을 이어 궁극적으로 영화의 산업적 토대가 단단해 지는 것이 영화도시 부산으로 가는 정직한 길이다.

부산영상위원회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