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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덜란드 화가 핸드릭 아베르캠프(1585~1634) 작 '겨울'. 얼어붙은 운하에서 사람들이 스케이트 등 겨울 스포츠를 즐기는
모습이 잘 담겨있다. |
1660년 겨울 중국 남서부 운남성, 일을 하던 사람들은 한참 동안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들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새였다.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던. 그것은 기러기였다. "기러기가 날아왔다. 운남은 종래에 기러기가 없었는데, 홀연히 줄을 이루어 동북쪽에서 날아왔다. 어리석은 사람들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는데, 식견이 있는 사람이 이것이 기러기라고 했다. 이때 이후로 겨울이 되면 100여 마리가 무리를 이루어 하루에도 여러 줄이 지나갔다."
놀라운 일이다. 운남은 대부분 남아열대인데 일부는 열대이다. 기러기는 대표적인 후조(候鳥), 곧 철새이다. 겨울이면 따뜻한 곳을 찾아 남쪽으로 양자강 이남까지 내려오는데 파양호에서 그친다. 그렇기에 남아열대인 복건 광동 광서 운남에 나타나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17세기에는 이들 지역에도 기러기가 나타난 것이다. 위도를 따지면 무려 5도 정도 남쪽까지 내려왔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동양적 개념에서 기후란 '24기(氣) 72후(候)'의 줄임말이다. 24절기 시간에 따른 자연변화의 징후들이다. 그렇기에 기후가 변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생태환경의 변화를 의미한다. 소빙기 동안 추운 날씨가 이어지면서 동식물의 생장북한계는 남쪽으로 이동했다. 기러기가 이전보다 훨씬 남쪽으로 내려오던 때에 동정감귤은 동해를 입고, 아열대의 강과 호수는 얼어붙어 물고기마저 동사했다. 제주의 감귤 생장은 오늘날에 비해 훨씬 좋지 못했고, 차와 대나무의 생장북한계도 남쪽으로 내려왔다. 바다는 수온이 내려가면서 한류성 어종인 청어 명태 대구가 한반도 해역으로 밀려들어 조선시대 대표적인 어종으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생태환경의 변화 속에서 조선의 역사가 전개되었던 것이다.
21세기 오늘날,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면서 생태환경은 다시 변화하고 있다. 소빙기 때와는 반대로 동식물의 생장북한계는 북쪽으로 올라가고 있다. 감귤은 제주를 넘어 남부지역에도 재배가 가능해졌으며, 차 대나무 등의 생장북한계도 점차로 북쪽으로 이동했다. 조선시대 사람들을 살찌웠던 청어 명태 대구는 사실상 사라진 지 이미 오래되었다. 거대한 생태환경의 변화가 우리시대에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2007년 앨 고어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영화 '불편한 진실'을 기억할 것이다. 앨 고어는 산업화로 이산화탄소가 증가하면서 지구 곳곳의 만년설과 빙하가 급격히 녹아 없어지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지구온난화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그 파멸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불편한 진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과연 현재의 지구온난화는 파멸적인 종말을 의미하는가?
역사를 되돌아보면 지구의 기후는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지난 밀레니엄만 보더라도 지금보다 따뜻했던 중세온난기가 있었고, 14세기에서 19세기 동안은 지금보다 훨씬 한랭했던 소빙기가 있었다. 불과 사오백년 전만 하더라도 인류는 한랭해지는 기후를 종말적인 상황으로 여겼다. 이제는 따뜻해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소빙기의 재난을 기억한다면 오늘날의 기후는 그때보다 훨씬 좋은 조건이다. 물론 생태환경의 변화는 언제나 새로운 적응을 요구한다. 그런 면에서는 위기일 수는 있다. 그렇지만 내게 '불타는 지구'로 표현되는 오늘날과 기러기가 운남에 나타났던 1660년 중에 생존에 더 적합한 것을 고르라면 나는 2011년을 선택할 것이다.
우리네 인생처럼 역사연구도 하나의 여행이다. 과거로 떠나는 상상의 즐거움. 지난 8개월 동안 이것이 나만의 즐거움이지 않았을까 두렵고 저어한다. 부족한 글임에도 관심을 가져 준 독자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겨울하늘을 보면서 생각한다. 350년 전, 내가 운남에서 만났던 그 기러기들은 어디로 갔을까? 다시 여행을 떠날 시간이다.
부경대 인문사회과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