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김문기의 널뛰는 기후, 춤추는 역사 <23> 감바라의 밤 눈, 소빙기와 우키요에

따뜻한 지역에 폭설 풍경? 상상 아닌 현실이었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09-21 19:48:38
  •  |   본지 22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일본 유키요에 화가 우타가와 히로시게가 그린 '도카이도(東海道) 53역참' 중 '감바라(蒲原)의 밤 눈'(1833년께).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雪國)'의 첫 장면. 짧지만 강렬한 이 문장은 심장을 두들긴다. 기차는 멈추고 우리는 온통 하얀 빛깔로 가득 찬 눈의 세계로 빨려든다.

서정성 넘치는 풍경을 잘 묘사했던 우키요에 화가 우타가와 히로시게. 1832년 가을, 그는 다이묘의 수행원으로 에도에서 교토에 이르는 도카이도(東海道)를 여행할 기회를 얻는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그가 도중에 느꼈던 신선한 감동을 고스란히 담은 것이 '도카이도 53역참' 연작이다. 소개된 그림 '감바라의 밤 눈'은 그 중의 하나이다.

온통 하얀 눈 세상이다. 소복하게 쌓인 눈은 밤의 어둠마저 밀쳐내어 산들은 투명하고 쓸쓸하다. 소설 속 주인공 시마무라가 터널을 지나 보았던 '설국'도 이러했으리라. 그런데 이런 감흥도 잠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감바라에 내리는 눈? '설국'의 실제무대인 니가타 현의 에치고유자와 온천 지역과는 달리, 시즈오카 현의 감바라는 따뜻한 지역이라서 한겨울에도 눈 쌓이는 일이 좀처럼 없다. 그렇기에 어떤 이들은 이런 겨울풍경을 히로시게의 상상으로 보기도 한다. 과연 그러할까?

1830년대 서늘하고 차가운 날씨가 다시 일본을 엄습했다. '도카이도 53역참'이 완성되었던 1833년은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에도 시대 최대 기근의 하나인 텐포대기근(1833~1840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해이다. 일본 동북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대기근의 주된 원인은 냉해였다. 여름과 가을에 한랭한 날씨가 계속되면서 곡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여 흉작이 되었다. 사람들은 한여름에도 겨울옷을 입어야할 정도로 추웠던 해가 많았다.

히로시게가 감바라를 여행했던 그해 겨울, 중국 전역에도 큰 눈이 내렸다. 하북, 하남, 산동 등에는 눈이 1m 이상이나 쌓여 대나무와 가축이 동사하고, 심지어 사람마저 얼어 죽었다. 좀처럼 눈이 내리지 않는 복건과 광동에서도 그 전 해부터 폭설이 내려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아열대인 강남에서는 급작스럽게 밀어닥친 추위로 얼어붙은 논에서 벼를 수확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감바라의 밤 눈'은 1832년 겨울 히로시게가 직접 보고 경험한 장면이다. 같은 연작에 속하는 '눈 그친 가메야마'에도 당시 폭설이 내린 가메야마의 겨울풍경을 확인할 수 있다. 15년이 흐른 뒤 히로시게는 자신의 풍경화들은 그가 직접 본 모습을 바탕으로 했다고 밝힌 바가 있다. 눈 내리는 감바라의 겨울풍경은 히로시게의 상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은 그와 더불어 에도 후기를 대표하는 가츠시카 호쿠사이의 그림에서도 볼 수 있다. 호쿠사이의 1833년 작품 '류큐 8경'에는 놀랍게도 오키나와에 눈 내린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 이듬해의 '제국명교기람'에도 눈 내린 부교를 건너는 여행자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1830년대 전반의 눈 내린 겨울 풍경이 우키요에 화가들에게 얼마나 짙은 인상을 주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감바라의 겨울풍경에 들어가 보자. 그림 속 농부들의 뒷모습은 왠지 낯설지 않다. 그들의 처진 어깨는, 네덜란드 화가 피테르 브뤼헐의 '눈 속의 사냥꾼'(4회 참고)에서, 사냥을 마치고 힘없이 돌아오던 농부들의 뒷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소빙기의 겨울풍경은 예술가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고, 인간의 감성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하늘과 땅, 산과 바람을 닮아 있다.

   
소빙기라는 긴 시간의 터널을 거슬러 올라가면 오늘날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감바라에서 '설국'을 만나게 된다. 그림 속, 감바라에 내리는 밤 눈은 눈송이인가 별빛인가?  "발에 힘을 주어 올려다 본 순간, 쏴아 하고 은하수가 시마무라 안으로 흘러드는 듯했다." 

부경대 인문사회과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5배까지 뛴 불꽃축제 숙박료…지긋지긋한 ‘바가지’
  2. 2기장의 1/10…부산 북구 참전수당 월 2만 원 ‘서러운 대접’
  3. 3찜질방·호텔 빈대 출몰에 화들짝…관광도시 부산 이미지 훼손 우려
  4. 4은행점포 영업시간 30분 단축…내년 4월부터 9시30분 개점(종합)
  5. 5‘부캉이’ 보낸다…29일 선박·워터펌프로 외해 유도(종합)
  6. 6에코델타시티 마을버스…강서 17년 만에 새 노선
  7. 7헤어질 시간…부산 북항 상어 ‘부캉이’ 구조작전 시작
  8. 8“보조금 심의 결정권자는 나” 부산 중구 부구청장 논란
  9. 9부산서 하루 더…오버나잇 크루즈 성황
  10. 10경로당 어르신·어린이집 아동들 “홀몸 어르신 고소한 전 드세요”
  1. 1“BPA, 1년간 1조원대 채권 발행…항만공사 통폐합 강행 땐 빚 전가”
  2. 2靑 “北포로 비공개 합의 부인 강력 유감” 우크라에 사과 요구(종합)
  3. 3“피지컬AI 항만 실증사업, 광양항 아닌 부산항서 해야”
  4. 4李 지지율 2주째 상승 37.9%…양당 지지도 오차범위 접전
  5. 5여야 만난 강신철 국방부 장관 “北 지뢰 확인 땐 상응 조치…은폐 없다”(종합)
  6. 66·3 지방선거 신규당선자 평균재산 13.5억…광역단체장 중 김상욱 50억 최다
  7. 7靑 “DMZ 지뢰사고 현장조사 순전히 군사적 판단…李대통령 유엔 연설 무관”
  8. 8[뭐라노]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
  9. 9부산시 ‘도시계획’ 조직개편 여파…시의회 상임위 간 신경전
  10. 10靑 재제청 요구 거부 조희대 “국감서 밝히겠다”(종합)
  1. 1은행점포 영업시간 30분 단축…내년 4월부터 9시30분 개점(종합)
  2. 2부산서 하루 더…오버나잇 크루즈 성황
  3. 3안주고 덜준 보험금, 5년간 1000건 육박
  4. 4HJ중공업 조선업계 첫 올해 임단협 타결
  5. 5기장 일대 동해남부선 폐선 부지 본격 활용 가능해져
  6. 6경영난 삼정기업·삼정이앤시 회생계획 인가
  7. 7구멍 뚫린 실업급여…3차례 이상 반복수급 11만명에 6000억 지급
  8. 8올해 2분기 부산 경제 2.3% 증가…'12% 급증' 충북의 5분의 1
  9. 9빚 갚으려고 또 빚…카드론 대환 23%↑
  10. 10부산 유주택 신혼 반토막…‘6억 초과’ 보유는 2.5배 급증(종합)
  1. 15배까지 뛴 불꽃축제 숙박료…지긋지긋한 ‘바가지’
  2. 2기장의 1/10…부산 북구 참전수당 월 2만 원 ‘서러운 대접’
  3. 3찜질방·호텔 빈대 출몰에 화들짝…관광도시 부산 이미지 훼손 우려
  4. 4‘부캉이’ 보낸다…29일 선박·워터펌프로 외해 유도(종합)
  5. 5에코델타시티 마을버스…강서 17년 만에 새 노선
  6. 6헤어질 시간…부산 북항 상어 ‘부캉이’ 구조작전 시작
  7. 7“보조금 심의 결정권자는 나” 부산 중구 부구청장 논란
  8. 8약사 면허 빌려 28억 부당이득…환수 거부에 法 “토해내라” 쐐기
  9. 9공소시효 이틀 앞두고 세금 포탈 업자 송치…검·경 합동수사 빛 발해
  10. 10'국민의힘 397억 반환' 걸린 尹 선거법 2심 오늘 마무리
  1. 1큰 日날 뻔한 韓야구…日 아마추어 상대로 3-1 설욕전
  2. 2중국에 두 번 진 이민성호, 이번엔 벼른다
  3. 3큰 日낸 女핸드볼…결승서 일본 꺾고 8년 만에 우승
  4. 4수영·탁구·사격 부진…양궁이 ‘금빛 갈증’ 풀어줄까
  5. 5이소희·백하나 배드민턴 女 복식 24년 만에 금빛 스매시
  6. 6오상욱 끝냈다…펜싱 男 단체 우승…승마 남동헌, 12년 만에 정상 탈환(종합)
  7. 7안세영, 천위페이도 가볍게 압승…결승 진출
  8. 8K-농구 황금시대…남녀 동반 우승, 3대3도 첫 金(종합)
  9. 9이강인·황인범 활용법 찾아라
  10. 10안세영, 세계 5위 가볍게 압도하며 4강행…사상 첫 2연패 도전
우리은행
미리보는 제31회 BIFF
‘아카데미 직행표’ 두고 세계 13편 경쟁…12편 프리미어 상영
한국문학관 기행
부끄러움 없는 삶, 오늘 우리에게 성찰을 던지는 공간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환상이 불러일으킨 파국
정답 없는 가족의 기록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붉은 빛 조명, 배우·합창단의 호연…눈앞에 다가온 부산오페라하우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익숙한 물건에 깃든 삶의 온기 外
인간 빈자리 차지한 반려 로봇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세계유산 ‘한국의 갯벌’ 얼마나 알고 있나요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장승택-ayered Painting P60-11
이소윤-sky above,river below,and birds between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빨래 /심여혜
잡는 법 /김만옥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추석 연휴 ‘암살자(들)’ 정상…2위 ‘타짜: 벨제붑의 노래’
‘인턴’, ‘오디세이’ 제치고 정상…허진호 감독 ‘암살자(들)’ 예매율 1위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9월 29일 (음 8월 19일)
오늘의 운세- 2026년 9월 28일 (음 8월 18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아침 산안개를 읊은 조선 전기의 문신 월헌 정수강
추석 때 사람들 만나 술 마시며 시 읊은 조선 중기 권벌
  • 2026 국제환경에너지산업전
  • 국제골프아카데미
  • 부산국제마라톤
  • 어린이청소년경제아카데미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