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0일까지 가마골소극장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산 채로 말린 Stuffed'. 가마골소극장 제공

무대는 음침했다. 박제된 늑대 머리, 고양이, 새 등이 선반 한쪽을 차지하고 있고, 조도가 낮은 분홍빛 조명 아래 놓인 오르간 등 전반적으로 으스스하다. 등장인물들도 긴 백발을 늘어뜨린 오르간 연주자, 핏빛 한 점 없는 창백한 얼굴의 치즈 제조공 등 하나같이 마녀를 닮았다. 더구나 제목까지 '산 채로 말린'이다. 도대체, 이 작품에서는 무엇을 살아 있는 채 말려 버리려는 걸까?

가마골소극장에서 공연 중인 '산 채로 말린, Stuffed'(이채경 작·연출)는 두 세상이 충돌하는 이야기를 담은 블랙코미디다. 극단적으로 다른 두 세상은 산너머 마을('만세촌'이라는 고립된 마을)에 사는 리오나와 보험설계사 행크(바깥 세상의 인물)로 표현되면서, 결국 한 마을이 다른 마을을 파괴하는 내용이다.

박제 가게에서 일하는 리오나는 영혼의 존재를 믿으며, 몸을 박제하면 영혼이 다시 돌아온다고 생각한다. 현실 세상에서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행크는 실수로 아버지(배달부)를 차로 치어 죽게 만든다. 자신의 아버지를 박제해 주겠다는 리오나의 말에, 행크는 산너머 마을에 들어오게 된다. 둘은 서로 다른 언어를 배우며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그가 마을에 옴으로써 세상(군인)의 마을에 대한 침입이 시작되고 마을은 오염돼 죽음을 맞게 된다.

세상의 상징으로서의 군인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또다른 얼굴이 아닐까. 평화롭던 마을 사람들은 "고통을 팔면(보험에 들면) 돈을 받는다"는 행크의 말에 넘어가, 자신의 손가락을 팔아 손가락보험금으로 생계를 유지하려 한다. 그들은 점점 자신의 삶을 위해 마을로 들어온 타인(군인)들을 하나씩 죽이는데, 이는 결국 그들 스스로의 죽음까지 초래한다.

바깥세상(현실)의 잔혹함, 배금주의가 싫어 새로운 마을을 꾸린 그들이지만, 영혼과 물질이라는 상충된 개념 안에서 물질에 눈이 멀어버린 것이다.

소재는 독특했고, 주제는 묵직했다. 이채경 연출가는 "시간은 상대적 개념이다. 우리는 일상의 시간을 소비하면서 본질을 잃고 살며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 둔다. 일상 속에서도 이 순간의 본질을 잊지 말 것을 얘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기존 뮤지컬과 달리 고음의 노래와 역동적인 춤은 없었다. 대신 각 등장인물이 대사를 말하듯, 잔잔하면서도 편안하게 노래를 불렀다. 최근 이곳에서 공연한 '천국과 지옥'에서 남녀 주인공으로 호흡을 맞췄던 두 주인공의 노래도 훨씬 감미로워졌다.

호러나 스릴러가 아닌 만큼, 작품에서는 누구를 말린다든가 하는 끔찍한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살아 있지만, 살아 있지 않은, 비본질의 시간을 살고 있는 현상"을 가리킨다는 연출가의 다소 난해한(?) 설명을 통해 제목의 실마리를 얻어 본다. 오는 30일까지 가마골소극장 공연. 1588-9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