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을 펴낼 것인가, 출판 기획자들은 늘 고민한다. 이런 고민은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으로부터 시작된다. 판단이 섰다면 실행. 그 결과물은 서점에 깔리는 신간이다. 승패는 곧 드러난다. 독자의 사랑을 얻은 책은 서점 진열대에서 베스트셀러로서 우대받고, 그렇지 못한 건 퇴출 신세다. 앞엣 책을 낸 기획자는 세류를 정확하게 집어낸 자신의 안목에 마음이 느꺼울 터이고, 뒤엣 책을 출판한 이는 머리카락이라도 쥐어뜯고 싶을 것이다. 사실 어떤 분야이든지 기획은 어렵다. 그 중에서도 세상과 독자를 읽고 미래를 짚어내야 하는 출판 기획자들은 머릿속이 엉클어진 실타래 같을 게다. 정권 교체로 세상이 요동치는 요즘은 오죽하랴. 출판 기획자들이 만드는 격주간지 '기획회의' 최근호(215호)는 이런 고민을 담았다.

올 한국 출판 전망의 공통분모 중 하나는 '영어 열풍의 가속화'이다. 영어 공교육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국정 방침은 이런 전망에 설득력을 실어준다. 영어 표현 능력을 증강해야 할 필요성을 차기 대통령이 앞장서 역설하고 있는 형국이다. 영어 구사력을 높여주는 책들이 어느 때보다 많이 출판될 것이라는 전망.

다음은 중국 특수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는 중국에 대해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될 터이다. 중국과 올림픽에 대한 독자의 정보욕구를 충족시킬 서적이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관련된 시사 경제 문화 역사 한자 안내서, 중국 여행 가이드북 등이다.

교육관련 서적은 정책 변화에 민감한 생리를 가졌다. 지난해는 대입 논술고사가 강화되면서 수험서와 인문학 서적이 활발하게 출판되었으나 올해는 이런 경향이 다소 위축될 것으로 예측됐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논술고사가 사교육비 부담을 증대시킨다며 없애는 쪽으로 방침을 정했다. 이것이 확정될 경우 논술 수험서나 인문학 서적 출간이 지난해에 비해 줄어들 게 분명해 보인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청소년과 50세 이상인 시니어들을 겨냥한 출판물이 늘고, 한국 최초의 우주인 고산 씨의 영향으로 과학기술 서적 출간이 활기를 띨 것으로 내다봤다. 2013년 교토의정서 발효를 앞두고 환경과 에너지 부문을 다룬 책들 역시 대중의 눈길을 끌 것으로 분석했다.

이 격주간지에 문연주 경기대 강사가 쓴 '일본 출판계 흐름이 던져주는 시사점'은 한·일 출판물의 경향과 전망에 대한 최신 정보를 제공해 준다. 이에 따르면, 일본 출판계에서는 2006~2007년 '휴대전화 소설'이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소설가는 휴대전화를 통해 작품을 발표하고 대중은 그걸 읽는다는 얘기다. 휴대전화가 바로 전자책. 일본에서 휴대전화 소설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휴대전화 패킷 요금제(일정액을 사용하고 무한대로 사용) 적용, 통신 고속화와 단말기의 고기능화 등 여러 조건을 갖췄기 때문이다. 무선통신 여건이 급속히 좋아지고 있는 한국도 머잖아 휴대전화 소설 붐이 불지 않을까 전망해 볼 수 있다.

출판이 실물 경제에 속해 있는 한 정책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다. 문제는 그 정도인데 새 정부가 들어선 후 국민의 독서 경향이나 출판 판도가 확연하게 바뀌었다는 결과가 나온다면 창피한 일이다. 올해부터 '실용서'만 팔릴까봐 걱정된다. 편식하면 영양실조에 걸리는데 독서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