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안 먹는 색시 / 김효숙 글 · 권시우 그림/ 천둥거인 / 9000원원

우리 전래 설화를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재구성했는데 내용이 무척 재미있고 기발하다.

'옛날 한 남자가 입이 함지박만큼 큰 색시를 얻었다. 그 색시는 밥을 참 잘 먹었다. 큰 가마솥 밥을 혼자 다 먹어 치우고도 모자라 콩을 또 한 솥 볶아서 먹어 치우는 게 아닌가. 남편은 화가 나서 손가락으로 색시 배를 폭 찔렀고 그녀는 배가 터져 그만 죽고 말았다(여기서 한번 킥킥 웃게 된다).

욕심 많은 남편은 또 장가를 갔다. 이번 색시는 입이 개미구멍만 했다. 밥알 세 알을 쪽쪽 빨아 먹고는 "아유, 배부르다, 배불러" 하는 색시를 보고 남자는 이제 곳간이 가득 찰 거라 생각하며 좋아한다(이 대목서 다시 '킥킥').

하지만 남편은 곳간에 쌀이 가득 차기는커녕 얼마 남지 않은 걸 보고 깜짝 놀란다. 의아하게 생각한 남편이 색시가 뭘 하는지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데, 색시가 곳간에서 쌀가마니를 번쩍 들고 나와 밥을 짓더니 주먹밥을 뚤뚤 뭉쳤다. 그런 다음 머리카락을 뒤로 훌렁 넘기자 머리 꼭대기에 커다란 입이 나타났다. 색시가 머리 위로 주먹밥을 풍덩풍덩 던져 넣자 커다란 입이 다 먹어 버렸다(다시 '우하하'). 욕심쟁이 남편은 이 모습을 보고 곳간도 색시도 다 버리고 도망을 갔다'.

이 얘기는 성인용 한국 구전설화 자료 중에 나온다. '1923년 5월 전남 정읍군 소성면 두암리에 사는 이 씨라는 여성이 구술했다'는 게 가장 오래된 기록. 어쨌든 정수리에 큰 입을 숨겨두고 밥을 가마니 째 먹는 각시 얘기는 무섭기는커녕 흥미롭고 놀라운 느낌을 준다.

겉으론 남편의 지나친 욕심을 꼬집어면서 속으론 가부장제 속의 남성을 빗대고 풍자했다. 1920년대 당시의 남성·여성관을 짐작할 수 있는 소중한 구전 설화다. 자연스러운 본성을 억압하는 남편의 왜소하고 불안정한 모습은 어쩌면 당시 남성들의 자화상 일는지 모른다. 반면 각시는 엄청난 식욕을 가진 인물로 묘사, 생명을 낳고 번성하게 하는 여성의 능력을 상징했다. 아이들에게 왕성한 식욕을 자연스럽고 생기 있는 받아들이게 한다는 점에서 이 얘기는 건강하다.

얘기뿐만 아니라 그림도 활약이 대단하다. 등장인물 역할에 맞게 남녀 상징을 적절하게 표현했다. 각시는 둥그스름한 얼굴, 커다란 손, 넉넉한 인상으로 생명과 생산을 담당하는 여성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이런 각시를 구박하는 남편을 '쪼잔한 소심남'의 표본처럼 그려냈다.

입이 개미구멍한 색시가 머리카락을 훌러덩 넘기자 정수리에 큰 입이 나오는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