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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의 미학 <2> 경상도 말과 전라도 말

지역 특성 녹아있는 `보리 문디`와 `깽깽이`

충청도 핫바지·강원도 감자바우·서울 뺀질이…

산간과 평야 언어 '높낮이'와 '길이'로 구분

특정지역 언어 편견은 지역 특성 몰이해 탓

  • 이근열 교수
  •  |   입력 : 2004-09-08 21:27:01
  •  |   본지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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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와 백제의 명운을 가른 황산벌 대첩을 다룬 영화 '황산벌'은 경상도와 전라도의 '사투리 버전'으로 영화의 재미를 더해 주었다. 뒷말이 길어지는 전라도 사투리와 짧게 끊는 경상도 사투리는 평야와 산악지대라는 지리적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
특정 지역의 사람들을 낮춰 부를 때, 경상도 보리 문디, 전라도 깽깽이, 충청도 핫바지, 강원도 감자바우, 서울 뺀질이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런 말은 팔도 사나이가 모이는 군대에서 가장 많이 듣고, 더러는 지역 감정을 자극하는 사람들이 많이 언급한다.

경상도 '보리 문디'는 '보리 먹고 사는 문디'로 줄여서 '문디'라고 한다. 보리 문디는 지역적 특성에다가 인상적인 언어적 특성을 고려해 붙인 이름이다. 경상도 지역의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 붙인 이름이 아닌 것이니까 '보리 문디'엔 특별한 비하적 의미가 나타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보리'는 '보리를 먹고 사는 사람'으로 가난한 시골 사람이란 뜻이 포함되어 있고, '문디'는 경상도 사람들이 흔히 쓰는 '문디야', '문디 자석', '문디 같은 놈'에서 나타나는 '문디'의 뜻이다.

이 '문디'는 '나병으로 얼굴이 문드러진 사람'이라는 뜻에서 생긴 비하적 말이 관습적으로 굳어져 사용되고 있다.

전라도 '깽깽이'는 전라도말의 언어적 특성에서 비롯된 말이다. 전라도 말은 말끝이 '-당께''-게라우'와 같은 특이한 씨끝이 많은데 이러한 씨끝 중에서 인상적인 '-께'가 자주 반복된다는 뜻에서 '깽깽이'로 불리고 있다.

충청도 '핫바지'는 원래 겨울에 입는 '솜을 둔 바지'에서 유래한 것이다. 바지에 솜을 두면 모양이 나지 않을 뿐더러 입었을 때 어딘 가 둔해 보이고 답답해 보인다.

이처럼 핫바지는 핫바지 같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촌스러운 사람'이나 '시골 사람', '무식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핫바지는 충청도 사람들이 시골 사람으로 행동이 세련되지 못함을 빗대어 표현한 말이다.

강원도 '감자 바우'는 원래 '감자 바위'의 경상도식 발음에서 유래한 것인데, 강원도는 산이 많아 감자를 주로 재배하고 감자를 주식으로 하는 특성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감자바우'에서 '바우'는 흔히 특정 지역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감자바우'는 '감자 먹고 자란 사람'에서 나온 말로 시골 사람이라는 뜻이다.

서울사람을 '뺀질이'나 '깍쟁이'로 부르는 이유는 그 사람들의 성격적 특성에서 유래한 것이다. 어렸을 때 서울에서 전학 온 친구를 '서울내기 다마 내기, 맛 좋은 고래 고기'라고 놀려대던 시절에는 다마내기(양파)가 뺀질이를 뜻한다.

'양파처럼 빤질거리다'는 뜻에서 뺀질이가 나온 것인지 뺀질이가 양파의 모습으로 비유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뺀질이'는 자기 일만 챙기고 다른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이기적인 사람이란 뜻에서 생긴 말이다.

경상도 지역에서만 지역적 별칭을 자신들의 동질성을 확인하는 의미로 많이 쓰일 뿐, 다른 지역에서는 자신의 별칭으로 자신들을 규정하지 않는다.

이런 점으로 볼 때 경상도 사람들은 지역말이 심리적인 동질성을 확인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상도 사람들이 흔히 쓰는 '우리가 남이가', '우리는 보리 문디 아이가' 하는 표현도 언어적 동류의식에 기반한 심리적 유대감에서 비롯한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여기서 특이한 점은 각 지역의 사람들의 명칭 가운데 언어적 특성에 기인하는 것은 경상도와 전라도뿐이라는 것이다. 두 지역의 말이 관심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전혀 다른 언어적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상도 지역은 높낮이를 주로 사용하는 언어이고 전라도는 높낮이 대신에 길이를 사용하는 언어라는 특이성이 두 지역을 구분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높낮이는 투박하게 들리지만 경제적이고 길이는 부드럽게 들리지만 가볍게 여겨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보통 "전라도 사람은 서울에 살면 쉽게 서울말로 바꾸는 간사한 점이 있고 경상도 사람은 융통성 없이 자기 말을 지킨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언어의 본질적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의 편견이다.

우리말은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동편은 높낮이, 서편은 길이가 주로 언어를 구별하는데 쓰인다. 동편은 산간 지방이라 말소리가 크고 끊고 맺음이 확실해야 그 말이 멀리까지 잘 전달되며, 서편은 넓은 평야가 많아 힘들여 끊어 발음할 필요가 없어 말이 길어지게 된다.

외국의 경우 프랑스말과 독일어를 비교해 보면, 평야 지방인 프랑스는 말끝의 발음이 부드럽게 들리고 위쪽 지방인 독일 지역에서는 발음이 끊기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이와 유사한 현상이다.

판소리에서 동편제, 서편제, 중고제라고 하는 노래의 특성도 동서의 지역적 특성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으로는 조선시대 세종의 육진 정책에 따라 경상도 사람들을 육진으로 강제 이주시켰는데, 동해안으로 길게 늘어진 높낮이가 이러한 사실을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경상도나 강원도, 함경도 사람들은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높낮이로 언어를 구별하는 일종의 동류인식을 가지고 있다.

또 전라도 평야 지역을 중심으로 충청도, 경기도 지역은 길이가 주로 쓰이기 때문에 서로간의 언어를 배우기 쉽다. 경상도 사람이 서울말을 배우는 것은 높낮이를 길이로 바꾸는 힘든 일이지만 전라도 사람이 서울말을 배우는 것은 길이를 조금 변화하는 일이므로 그리 힘들지 않다.

이처럼 우리들이 가지는 특정 지역의 편견은 지역적 특성에 따른 언어의 구조를 바로 이해하지 못한데서 비롯된다.

경상도 지역만 하더라도 대구를 중심으로 하는 경상북도 쪽은 '했십니더'와 같이 말끝이 길어지고, 부산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경상남도 쪽은 '했심더'와 같이 말끝이 짧아지는 것이 보통이다.

이것도 바다를 끼고 있는 남도는 대체로 좀더 빠르고 짧게 끝나야 말이 좀더 확실하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평야 지역에 사는 전라도 사람은 '했는게라우'처럼 끝이 길게 나오기 때문에 가벼운 느낌이 들지만, 길이 때문에 정겨움이 묻어나는 말이 될 수 있다. 같은 길이를 사용하는 충청도 사람도 '했시유' '했는감유' 처럼 말끝이 약간 길어지는 것이 특징인데, 편견없이 들으면 부드러운 정감을 느낄 수 있다.

   
이근열
경상도 말도 '잘가자'는 말보다 '잘가래이' 하면 더 깊은 정감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이와 유사한 현상이다. 더러는 충청도말은 뒷말이 느려서 촌스럽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충청도 말은 생각처럼 그렇게 느린 말이 아니다. 끝맺는 부분을 느리게 처리해서 느린 느낌이 들 뿐인 셈이다.

같은 '부추'가 지역에 따라 '정구지'가 되고 '소풀'도 되고 '솔'로 표현되는 것은 지역적 다름이지 차이는 아니다. 언어로 지역적 특성을 폄하하는 것은 무지의 소산이다.

/ 이근열 부산대 국어교육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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