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이어 옛 소련에서 독립한 몰도바까지 침공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몰도바는 친서방 정권이 친러시아 분리주의 세력과 내전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크라이나와 판박이다. 한편에선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점령을 위해 전력을 집중하고 있는 러시아가 몰도바까지 침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26일(현지시간) 몰도바의 친러시아 분리주의 세력 지역인 트란스니스트리아(러시아명 프리드녜스트로비예)에 있는 라디오 방송 송신탑 두 개가 정체불명의 공격을 받아 파괴된 채 쓰러져 있다. 트란스니스트리아 내무부 제공

●연쇄 폭발…몰도바 침공계획인가

지난 26일 친러시아 반군 세력권인 몰도바의 트란스니스트리아에서 연쇄 폭발이 일어났다. 트란스니스트리아 경찰은 자칭 ‘수도’ 티라스폴의 국가안부 건물과 그리고리오폴스키 지역의 라디오 방송탑 두 개가 폭격으로 파괴됐다고 밝혔다. 이어 27일에는 트란스니스트리아에 있는 러시아군 무기고 주변에서 우크라이나군 소속으로 보이는 무인기(드론)가 목격됐다는 현지 경찰의 주장이 나왔다.

니쿠 포페스쿠 몰도바 부총리는 “우리는 매우 위험한 순간에 처해 있다”면서 “불안정한 상황을 조성함으로써 트란스니스트리아 지역을 약화하고 몰도바를 위험에 빠뜨리는 데 관심을 가진 서로 다른 세력들이 갈등을 벌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 측은 러시아가 몰도바 침공을 위한 구실을 만들기 위해 “계획된 도발”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가 트란스니스트리아에서 군사행동 구실을 만들기 위해 ‘가짜 깃발’ 작전을 했다는 것이다. 가짜깃발 작전은 상대가 먼저 공격했다고 허위사실을 꾸며 상대를 공격할 빌미를 빚어내는 군사적 술책을 뜻한다.

앞서 22일 러시아군 중부군관구 루스탐 민네카예프 준장이 러시아군의 목표가 우크라이나 남부 지역을 완전히 통제하는 것이라며 “우크라이나 남부를 장악함으로써 러시아어 사용자들이 억압받는 트란스니스트리아로 나아갈 수 있는 출구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지나 몰도바까지 세력을 확장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그러자 몰도바 정부는 즉시 러시아 대사를 소환해 “지역의 긴장을 높이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수용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근거도 없는 발언”이라고 항의했다.

인구 47만 명의 트란스니스트리아는 1992년 분리독립을 주장하면서 몰도바와 전쟁을 거쳐 현재는 분리주의 세력이 통제하고 있다. 주민의 30%는 러시아어를 사용한다. 친러시아 반군이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와 닮은꼴이다. 지리적으로는 몰도바 드니스테르강 동쪽 지역인 트란스니스트리아는 우크라이나 서부와 남북 방향으로 길게 국경을 맞대고 있다. 29일에는 우크라이나 언론들이 “트란스니스트리아가 55세 이하 성인 남성 전원을 대상으로 병력 모집을 개시했다”고 보도했다.

28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승전기념일 퍼레이드 리허설 모습. AP 연합뉴스

●“러시아 군사력으로는 불가능” 진단도

미국도 몰도바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지난 26일 독일에서 열린 40여 개국 국방장관 회의에서 미국이 몰도바에서 발생한 폭발 사건의 원인을 조사 중이라면서 “(현재로선) 그게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 우리는 전쟁 확산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러시아군이 몰도바를 침공할 만큼 전력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라고 지적한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패퇴한 러시아군은 친러시아 반군이 있는 동부 돈바스로 후퇴해 전력을 재정비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반대 방향인 우크라이나 서쪽 몰도바를 목표로 두 개의 전쟁을 하는 건 아무리 러시아라고 해도 무리라는 것이다.

미국 비영리 연구분석기관 CNA의 러시아 전문가인 마이클 코프먼은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군은 (몰도바를 상대로 한) 공세를 할 여력이 없다. 돈바스 공세에서 모든 힘을 소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진단했다.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무차관도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상황이 우크라이나처럼 될 수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곳에 대한 우리의 입장은 그대로”라며 “분쟁이 고조될 위험은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편 러시아가 돈바스에서 공세 속도를 높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군의 거센 저항에 부닥쳐 큰 전과를 올리지는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28일(현지시간) 공개한 전황 분석 자료에서 “러시아군이 최근 24시간 동안 어떠한 진전도 이뤄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