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민간인 집단학살 의혹의 불똥이 독일로 튀고 있다. 독일이 러시아산 에너지를 수입하면서 블리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전쟁 자금을 대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AFP·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크리스티안 린드너 독일 재무장관은 지난 4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이 러시아 가스 수입을 중단하는 것은 아직 가능하지 않다고 밝혔다.

4일(현지시간) 독일 시민활동가들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산 에너지를 수입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담은 “살인자들을 위한 돈은 없다. 석유와 가스 거래를 중단하라”(NO MONEY FOR MURDERERS, STOP THE OIL AND GAS TRADE)는 구호를 프랑크푸르트의 러시아 영사관 건물 벽면에 붉은색 조명으로 비추고 있다. 연합뉴스

EU 회원국들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수위를 높이면서도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 수입은 계속하고 있다.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독일이 특히 반대하고 있다. 유럽의 러시아산 가스 수요 충당율(40%)보다 독일의 의존율은 55%로 유럽 국가 중에 의존도가 가장 높다. 유럽이 사용하는 석유는 25%가 러시아산이다.

독일도 고민이 깊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우크라이나 부차에서의 민간인 학살 의혹으로 러시아에 대한 긴급 대응 조치 요구가 증대되면서 독일 정부가 러시아 에너지에 대한 금수 조치를 단행해야 한다는 압박도 가중되고 있다”고 전했다. 독일 내부에서도 공장 가동 시간 단축을 통한 에너지 사용 감축 논의가 확산하고 있다.

독일 여론조사에서도 찬성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난방 문제에도 불구하고 국민 55~77%는 러시아산 가스 수입 금지를 지지했다.

유럽 주변국의 독일에 대한 압력도 높아졌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최근 독일을 대 러시아 제재 강화의 장애물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EU 회의 기록을 읽어보면 누구나 독일이 결정적 제재를 확대하는데 최대 장애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의 소방관들이 러시아군 미사일 공격을 받아 불길에 휩싸인 정유시설에서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연정으로 구성된 독일 정부 내에서도 이견이 있는 상태다. 크리스티아네 람브레히트 국방 장관은 TV 인터뷰에서 “반드시 상응한 조치를 해야 한다”면서 EU가 러시아산 가스에 대한 완전 금수 방안을 논의할 때라고 밝혔다. 녹색당 출신의 로베르트 하백 독일 경제 담당 장관도 러시아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하룻밤 사이에 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러시아산 가스·석유에 대한 금수조치는 “강간, 고문, 학살 희생자와 그들의 친척, 우크라이나 국민 전체”의 요구라고 강조했다. 또 그는 러시아 가스 및 석유 부분에 대한 추가 제재에는 찬성하나 EU의 가스 수입 금지는 요구하지 않겠다고 밝힌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거명하면서 “푸틴과 협상에서 무엇을 달성했느냐. 히틀러, 스탈린, 폴 포트와도 협상할 것이냐”라고 비판했다.

한편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장간은 6일 서방 제재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전쟁 자금’으로 불리는 러시아 보유외환 6040억 달러(약 733조 원) 중 60% 이상이 동결됐다고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장관이 밝혔다.

미국 정부도 이날 러시아에 대한 대(對)러시아 추가 제재를 발표한다. 새 제재에는 러시아에 대한 모든 신규 투자 금지, 러시아 금융기관 및 국영 기업에 대한 제재 강화, 러시아 정부 당국자 및 그 가족에 대한 제재가 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