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현실적 조항, 의료계 외면
- 사실상 2주 이상 입원 못 해
- 전담 행정팀 등 보완 필요성

지난 8일 조현병, 우울증으로 부산의 한 대학병원에 입원한 A(80) 씨는 15일 오전 쫓겨나다시피 퇴원했다. A 씨 가족은 "의사가 '법이 바뀌어서 어쩔 수 없다'며 나가라고 하더라. 다른 종합병원도 2주 이상 입원이 어렵다고 한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호소했다.

지난달 30일 개정 정신건강복지법(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의료 현장에서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당장 부산의 4개 대학병원이 정신과 환자의 '2주 이상 입원'을 거부하고 있다. 세심한 준비 없이 개정법이 졸속 시행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개정법의 핵심은 '까다로운 입원과 쉬운 퇴원'이다. 과거에는 보호자 2명의 동의와 전문의 1명의 진단이 있으면 환자가 6개월 이상 입원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인권단체를 중심으로 "환자 동의 없는 '강제입원'이 많다"는 지적이 나오자 보건복지부는 정신건강복지법을 개정했다. 먼저 서로 다른 병원의 전문의 2명 이상이 공통된 진단을 해야 3개월간 입원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정신의료기관은 3~6개월 단위로 입원적격성심사위원회를 열어 입원 연장을 평가하도록 했다. 다른 병원 전문의의 추가 진단이 없으면 환자가 입원할 수 있는 기간은 최대 2주다. 규정을 어기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현재 부산에 등록된 정신의료기관은 종합병원 21곳을 포함해 116곳이다. 의원급이 72곳으로 가장 많다. 이 중 복지부 승인을 받아 환자 입원 진단을 위해 다른 병원에 전문의를 파견할 수 있는 곳은 중소 규모 22곳뿐이다. 부산의료원을 제외한 20곳의 종합병원은 승인을 받지 않았다.

부산시 정신건강증진센터 이미경 부센터장은 "진료에 바쁜 의사에게 다른 병원 환자의 입원까지 결정하도록 법이 바뀌자 현장의 반발이 많다"고 전했다. 대학병원은 "의사가 진료와 강의까지 병행해야 해 외진을 나가기 어렵다"며 복지부 승인을 꺼리고 있다.

복지부는 이러한 논란이 전국에서 불거지자 오는 29일까지 한시적으로 '다른 병원 전문의가 부족하면 같은 병원 의사가 추가 진단할 수 있다'는 예외 지침을 마련했다.

법 개정으로 정신과 환자나 가족이 불편을 떠안고 있다. 종합병원급에 장기 입원할 수 없어 퇴원을 원하지 않아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동아대 김철권(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미국은 정신과 환자 입원 판단을 판사나 변호사에게 맡긴다. 입·퇴원을 판단하는 전담 공무원이나 별도 의료진을 운영하는 게 개정법의 취지를 살리는 길"이라고 지적했다.

김화영 박장군 기자 hongdam@kookje.co.kr

◇ 정신건강법 개정 전·후 차이 비고  입원 요건 입원기간 전 보호자 2명 동의 전문의 1명 진단 6개월간 입원 가능. 이후 6개월 단위로 의사 1명이 재진단 후 보호자 2명 동의와 서로 다른 병원 소속 전문의 2명의 진단 입원 3개월. 입원연장심사위원회 통해 3개월 더 연장. 이후 6개월 단위 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