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파서 쪽파를 훔친 게 아니고, 시장에 내다 팔려고 한 거다." "가족이 매월 수십만 원을 보내줘 그렇게 어려운 사람이 아니다."

굶주리다 이웃의 쪽파에 손을 대 경찰에 붙잡힌 이순희(가명·72) 할머니의 사연(본지 지난달 28일 자 8면 보도)을 추가 취재하는 과정에서 온갖 말을 접했다. 할머니 집을 찾았지만 만나지는 못했다. 진실이 어떻든 그는 남편이 죽고 실의에 빠져 3년간 거의 씻지 않아 악취를 풍기며 허름한 컨테이너에 사는 70대 노인이다. 

쪽파를 훔치지 않아도, 시장에서 뭘 팔지 않아도 할머니가 주린 배를 채우는 방법이 있다. 국가가 기준선에 미달하는 빈곤층에 생계와 주거 등 기초적 생활을 지원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기초수급제)를 활용하는 거다. 그러나 적어도 할머니에게는 이 제도가 힘이 되지 못했다.

기장군 관계자는 "기초노령연금(월 20만 원)은 65세 때 신청했을 거고, 남편이 죽고 힘들었던 지난 3년간은 수급 신청의 기회를 놓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청했다고 하더라도 선정됐을지는 미지수다. 부양의무자(자녀 등 직계혈족과 그 배우자)의 소득과 재산이 일정 기준치를 초과하면 지원 자격이 되지 않는다. 2일 군에 확인한 결과 할머니에게는 6명의 자녀가 있었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두 명뿐이라던 애초 경찰의 발표와는 달랐다.

부양의무자가 모든 책임을 떠맡아야 하는 현 시스템에 문제가 많다. 기초수급제를 신청해도 자격이 되지 않아 가족의 손길이 끊기면 노인 생계는 막막해진다. 동의대 홍재봉(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자녀가 있지만 관계 단절로 지원이 끊겨버리는 빈곤 노인세대는 손 내밀 곳이 없다. 부양의무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산사회복지연대 박민성 사무처장은 "신청자만 심사해 지원하는 전근대적 기초수급제 자체를 개편해야 한다. 신청하지 않아도 어려운 이를 사전에 파악하고 위기 때 개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부산시에 등록된 기초수급자는 지난해 12월 기준 15만2389명이다. 지난 한 해 동안 11만8000명이 새로 신청했고, 이 중 4만2000명만 자격 심사 후 수급자로 선정됐다. 과연 나머지 7만6000명의 처지는 어떨까.

다행히 할머니를 돕고자 하는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군은 할머니가 기초수급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파악 중이다. 기장노인복지관은 정신질환이 의심되는 할머니를 치료하고 주거 정비와 식사지원 등을 준비 중이다. 일반인의 성금 문의도 빗발치고 있다.

곧 설 연휴다. 부산 곳곳에 숨어 있을 '제2의 순희 할머니'에 관한 관심과 지원이 절실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