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부산 동구 범일5동 매축지 마을 전경. 이곳은 연령 표준화 사망비가 부산 214개 읍·면·동 중 20번째로 높은 건강 취약지역이다.
'부산 빈곤리포트 I'(본지 2010년 4월 20~22일 보도) 취재 당시에는 기초생활수급자 비율이 부산에서 7번째로 높았다. 국제신문 DB |
- 2008년 평균수명 꼴찌 충격
- 市, 지역격차 해소 천명 불구
- 암 정복에만 예산 85% 배정
- 건강 불평등 해소 흐지부지
- 금연·절주 등 일반적 정책
- 주민 평균수명 연장에 한계
- 지역별로 형평성 고려해
- 읍면동 맞춤형 정책 세워야
2009년 부산에는 다소 충격적인 자료가 발표됐다. 통계청이 2008년 기준으로 전국 시·도별 평균수명을 발표했는데 부산이 78.8세로 꼴찌를 기록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10만 명당 사망자 수는 전국 최고였고 지난 3년간 늘어난 평균수명도 서울의 절반에 그쳤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부산시는 이듬해인 2010년 2월 '건강도시 중장기 발전계획 수립을 위한 학술용역'에 나섰다. 예산은 8000여만 원이 투입됐다. 시는 사망률 추이를 분석하고 특이 사망원인을 파악하는 작업을 통해 지역별 건강 격차를 확인, 이를 해소하기 위한 브랜드 사업을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시 차원에서 특별 관리해야 할 건강 취약지역 및 취약 연령대를 선정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예산의 85%는 암 정복
그리고 같은 해 8월. 시는 '건강도시 부산 프로젝트'를 내놨다. 핵심 내용은 ▷건강도시 정책기반 구축 ▷적극적 건강증진 예방활동 ▷검진 및 치료수준 제고 ▷건강 취약가구 관리대책 ▷건강사업 평가시스템 구축 등 크게 다섯 갈래로 구분됐다. 시는 2014년까지 프로젝트를 완수하는 데 총 510억 원이 들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프로젝트는 애초 목표와는 너무 다르게 진행됐다. 대책의 상당수가 건강택시 도입, 건강도시 홈페이지 구축, 건강도시조례 제정, 건강 걷기 추진, 금연·절주 운동 등 소위 '뜬구름' 잡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부산 내 지역별 건강 불평등을 해소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이와 관련한 대책은 일부에 불과했다.
예산만 봐도 암 정복 3단계 프로그램(433억 원)에 전체의 85%가 배정됐다. 13개 세부 카테고리 중 '지역'을 주제로 한 사업은 '건강한 마을 만들기'와 '건강 플러스 생활터 인증'이 전부다. 두 사업을 합쳐도 예산이 28억여 원으로 전체의 5%도 안 된다. 올해까지 실제로 투입된 예산은 12억4400만 원뿐이다. 이 중에서도 생활터 인증사업은 주거지가 아니라 학교·직장·시장을 근거로 해 읍·면·동별 격차에 따른 건강 형평성과는 맞지 않다.
그나마 지역별 건강 격차 해소를 위한 프로그램이라고 한다면 '건강한 마을' 14곳 정도다. '건강 취약가구 집중관리' 프로그램을 건강 형평성과 연관 지을 순 있겠지만, 가정방문 서비스가 이전부터 진행돼 오던 사업임을 고려한다면 새로운 대책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더군다나 이마저도 일부는 아직 시행되지 못했거나 흐지부지 사라졌다. 금연자를 위한 건강택시는 1500대나 도입했지만 현재는 자취를 감췄다. 건강도시 조례는 이제야 제정을 앞두고 있고, 절주 조례는 현실과 맞지 않아 포기했다. 응급시스템 개선은 1339와 119가 통합되면서 병원 간 전원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일부분에선 오히려 후퇴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부산판 블랙 리포트 만들자
사망비가 높은 동네나 낮은 동네나 천편일률적인 금연, 절주, 암 정복 프로그램을 운영해서는 부산시민의 평균수명을 높이는 데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1980년 영국에서 발간돼 전 세계에 반향을 일으켰던 '블랙 리포트'와 같이 지역별 건강 형평성을 고려한 맞춤형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건강 형평성을 주요 정책 목표로 잡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동진 부연구위원은 "현재 상황에서 암 등 질환관리 사업에 예산을 집중 투자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게 학계의 공통된 인식"이라며 "먼저 정부 차원에서 건강 형평성을 정책 기조로 삼아 의지를 보여야 하고, 시·군·구에선 이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세부적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각각의 사업들이 얼마나 건강 형평성을 달성했는지를 측정할 수 있는 개량 지표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건강보험 등 국가 보건서비스가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데는 어느 정도 역할을 하고 있으나 건강 불평등 자체를 해결하기는 어려운 만큼 이를 공공영역에서 보완해야 할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동서대 사회복지학과 김종건 교수는 "건강보험에 가입돼도 본인 부담금이 없어 수술을 못 받으면 그만"이라며 "보건의료 접근성을 얼마나 높여 주느냐가 건강 불평등을 해소의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부산복지개발원 박선희 부연구위원은 "전체 시민을 대상으로 한 사업과 별도로 건강 취약지역이나 계층에 맞춘 건강 개선사업이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며 "취약계층 관리는 민간영역이 담당하는 데 한계가 있으므로 예산 확충 등 공공보건이 더욱 강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