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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의 재발견 <17> 부산자유발도르프학교

대안교육 관심 많은 부모들 뭉쳐…직접 교사 뽑고 학교도 운영

  • 하송이 기자 songya@kookje.co.kr
  •  |   입력 : 2013-04-24 20:18:20
  •  |   본지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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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남구 용당동 부산자유발도르프학교에서 신영주 대표교사가 학생을 대상으로 '젖은 그림' 수업을 하고 있다. 김동하 기자 kimdh@kookje.co.kr
# '발도르프 교육' 커리큘럼

- 3~5평 교실 가정집같은 분위기
- 공교육 않고 교과서·시험 없어
- 예술 중심 하루 3~4시간 수업

# 부모 손으로 학교 이끌다

- 학부모 각 부에 소속돼 안건 논의
- 학습 기자재 만들고 먹거리 챙겨
- 각종 동아리 통해 친분도 끈끈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계기는 다양하다. 평생 살아온 마을이 시대의 흐름 속에서 잊히는 것이 안타까워 뭉치기도 하고 지자체가 먼저 멍석을 깔아줘 주민 공동체로의 자립에 성공하는 사례도 있다. 자녀 교육도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주요 요소 중 하나다. 아이들의 교육 방식 등을 함께 고민하던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를 만들기 때문이다. 이 경우 주민이 힘을 모아 아이들의 교육에 나선다. 그렇다고 공교육의 틀까지 깨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부산자유발도르프학교는 태생부터 아주 특별하다.

■발도르프 교육으로 뭉쳤다

   
부산자유발도르프학교 건물. 김동하 기자
지난 17일 오후 부산 남구 용당동 부산자유발도르프학교. 수업이 끝난 지 한참이 지났을 시간이지만 여전히 10여 명의 아이가 재잘거리는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교실에선 여느 학교에서 볼 수 있는 '일렬종대 책상' 풍경은 찾아볼 수 없었다. 3~5평 규모의 교실은 마치 가정집처럼 아늑한 분위기로 조성돼 있고, 아이들은 자유롭게 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이곳은 굳이 분류하자면 대안학교에 속한다. 정규 공교육은 하지 않고 '인지(人智)학'의 창시자로 꼽히는 독일의 루돌프 슈타이너 박사가 주창한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발도르프 교육 커리큘럼대로 수업한다. 따라서 그 흔한 교과서도 학생들을 괴롭히는 시험도 이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시간표를 들여다보니 영어 체육과 같은 익숙한 수업도 있긴 하지만 '젖은 그림'과 같이 일반 학교에서는 볼 수 없는 예술 수업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루 수업시간도 평균 서너 개에 불과하다.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바늘 하나 꽂을 틈 없이 빡빡한 시간표도, 사교육도 여기서는 다른 세상 이야기다.

대안학교와 공동체. 이어질 듯 하면서도 뭔가 명쾌하게 딱 떨어지지는 않는 이들 사이에서 연결고리를 찾으려면 학교가 처음 문을 연 지난해 4월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평소 발도르프 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부모 15명은 지난해 초 자신들의 뜻에 맞게 발도르프 교육을 본격적으로 해보고자 마음먹었다. 부산자유발도르프학교는 특정 개인이 아닌 부모의 손에 의해 탄생했다.

■부모가 만든 학교

'학교니 당연히 교장 선생님을 중심으로 운영될 것'이라는 상식이 이곳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발도르프학교를 공동체로 꼽을 수 있는 큰 이유 중 하나는 학교 운영 자체를 부모들이 하고 있다는 점이다. 재학생 36명의 부모는 학년에 따라 시설부 입학홍보부 교육부 재정부 장기발전부에 소속된다. 부마다 정기적으로 관련 안건을 회의하고 한 달에 한 번 각 부의 대표들과 교사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면서 학교 운영 방안을 찾아 나간다. 두 아이를 이곳에 보내고 있는 임미란(여·51) 씨는 "학교를 이끌어가는 세 가지가 아이, 부모, 교사"라며 "교사는 수업을 책임지고 운영은 부모가 맡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운영'의 범위는 단순히 돈을 관리하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는다. 부모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학교를 찾는다. 옷걸이가 없으면 옷걸이를 만들고, 아이들이 가지고 놀 만한 장난감, 수업시간에 사용할 공책도 손수 제작한다. 학교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 교실마다 노랑 파랑 페인트를 칠한 것도 부모들이고, 심지어 수업시간에 사용하는 칠판도 엄마 아빠 손으로 만들어 달았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먹는 먹을거리도 부모들이 돌아가면서 만든 반찬으로 채워진다. 교사도 부모들이 직접 뽑았다. 이름은 학교이지만 엄마 아빠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부모들은 공책 만들러, 페인트칠하러 자연스럽게 모이는 횟수가 많아졌고, 친분이 쌓이면서 악기나 인형 만들기 등 각종 동아리를 꾸리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부모 교육이 있는 날이면 아이들을 한 집에 모아 함께 돌보기도 한다. 재능기부도 일상적이다. 수영을 잘하는 부모가 있으면 주말이 되면 자신의 아이와 함께 수영하고 싶어하는 다른 아이들도 함께 수영장을 가는 식이다. 올해부터 11살 아이를 학교에 보내기 시작한 윤찬숙(여·42) 씨는 "보통 초등학교에서는 저학년 말고는 학부모들끼리 만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여긴 부모들끼리 엄청나게 친해서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며 "같이 어울리다 보니 너와 나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우리라는 의식이 생기더라"며 웃었다. 임 씨는 "소소한 것이긴 하지만 김장도 함께 모여서 한다"고 귀띔했다.


# 교사-학부모 수시로 만나 학생 상담

- 월 1회 학교생활 등 이야기 나눠
- 가정방문 통해 자녀교육도 조언

   
이달 초 열린 학부모의 밤에서 학부모들이 아이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부산자유발도르프학교 제공
교사는 단지 수업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부산자유발도르프학교에서 교사와 부모는 학생과 교사 못지않게 자주 보는 사이다. 한 달에 한 번 학부모의 밤이 열리면 부모들은 교사로부터 학교에서 벌어진 에피소드를 전해 듣기도 하고 아이의 심리 상태, 학교 생활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눈다. 학부모들이 먼저 발도르프 교육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부모 교육도 정기적으로 열린다. 별도의 셔틀버스가 없다 보니 아침마다 아이들을 데려다 주면서 교사와 자연스럽게 대면하기도 한다.

공교육에서 오래전에 사라진 가정방문도 이곳에서는 현재 진행형이다. 1, 2달에 한 번씩 교사가 집으로 직접 찾아가 아이의 교육에 대해 조언을 한다. 책이 너무 많이 꽂혀있으면 조절해야 할 것 같다거나 고학년임에도 엄마 아빠와 함께 자고 있다면 자신만의 공간을 마련해줄 것을 건의하는 식이다.

손민정 행정교사는 "공식 행사 이외에 수시로 개인면담도 한다"며 "가정방문을 하는 과정에서 학생과 학부모, 교사 사이에 애정과 신뢰가 쌓인다"고 말했다. 신영주 대표교사는 "아이에 대해 수시로 언제든지 소통하기 때문에 부모와 교사가 협력해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 외부 사람 유입 반겨 교육 체험의 날 열고 전문가 특강 꾸준히


■ 다른 공동체와 차이점

- 지역사회 확산 프로그램 마련


부산자유발도르프학교가 다른 공동체와 다른 차이 중 하나는 '우리끼리'가 아닌 외부 사람들의 유입을 반긴다는 개방성이다. 학교의 특성상 운영이 궤도에 오르기 위해 어느 정도의 학생 수 확보가 필수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좀 더 많은 사람에게 발도르프 교육을 알리고자 하는 이유도 크다.

지난해 11월 처음 열었던 교육 체험의 날과 바자는 방문객 수백 명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실제 학교 시설을 둘러보고 수업 장면과 교육철학을 들은 학부모들은 예술, 자유로움을 중시하는 발도르프 교육에 이끌려 새 학기가 되자 스스로 학교 문을 두드렸다. 

일반 학교에서 아이를 전학시킨 윤찬숙(여·42)씨는 "아이가 기존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해 힘들어하던 터에 우연히 교육체험의 날을 알게 돼 학교를 방문했다"며 "아이를 충분히 관찰하는 학교의 교육 방침이 마음에 들어 옮기게 됐는데 아이가 많이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학교는 지난해 성공을 발판 삼아 올해도 오는 6월 교육 체험의 날을 여는 등 발도르프 교육에 관심 있는 학부모를 상대로 각종 행사를 마련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발도르프학교의 전문가 특강도 주요 행사 중 하나. 지난달 27일 학교 지하 강당에서 열린 특강에서는 갑작스러운 강사 변경에도 100여 명이 몰렸다. 학부모가 모두 왔다고 해도 50명 남짓한 것을 감안하면 공동체 밖 사람들도 상당수 참여했다는 의미다. 

학교는 특히 이 같은 특강을 꾸준히 늘려갈 계획이다. 우선 8월 독일 바텐샤이트 비다슐레 교사로 발도르프 교육 전문가인 독일의 W. 캐머링 박사 초청 강연회를 열기로 했다. 

학교 교사이자 두 아이의 학부모인 임미란(여·51) 씨는 "발도르프 교육이 우리 안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로 확산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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