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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인문학 뿌리와 현장 <6> 향토사학과 지역학

재야 학자가 쓴 지역민중의 삶, 史學에 생기 불어넣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3-02-12 19:34:02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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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해군 부산을 가꾸는 모임 회장
◇ 최해군

- 국어교사 재직중 자료 수집
- 선사~현대 부산 역사 펴내

◇ 주영택

- 문헌기록-현장 연결 작업
- 황산도 옛길 복원 등 성과

◇ 주경업

- 지역의 민속·역사 답사 진행
- 부산 관련 10여권 서적 발간

재야(在野)라는 표현은 원래 벼슬길에 나가지 아니하고 초야에 묻혀 있는 선비를 일컫던 말이다. 오늘날에도 정당과 같은 공식적인 정치제도에 들어가지 않고 정치적 활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재야는 정치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학문에도 재야가 있다. 정식으로 해당 분야의 학문적 훈련을 거치지 않았거나, 해당 학계에서 공식적인 직업이나 역할을 가지지 않고 활동하는 학자를 가리킬 때도 재야학자라는 표현을 쓴다. 정치제도든 학문제도든 사회의 공식화된 제도 밖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바로 재야다.

재야학자들이 가장 많이 활동하는 분야가 바로 역사학이다. 보통 향토사학자라고 불리는 이들은 지역에 오래 살면서 지역이 흘러온 삶과 이야기에 관해 소상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학문제도 속에 있는 학자가 상아탑 속에 갇혀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이론에만 머물기 쉬운데 반해, 이들은 지역민이 살아오고 있는 현실 속에서 같이 살면서 가까이서 잘 알고 있는 것이다. 향토사(鄕土史)라는 말에서 잘 드러나듯 재야인문학의 가장 전통 있고 활성화되어 있는 분야가 바로 지역사다.

■재야 지역사의 대표주자 최해군

부산에서 대표적인 재야 지역사가로는 최해군을 꼽을 수 있다. 올해 우리 나이로 여든여덟인 그의 본 직업은 국어교사. 그러다 196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면서 등단한 이래 교편생활 속에서도 꾸준히 130여 편의 작품을 써온 원로 소설가이기도 하다. 그의 소설 대부분이 부산을 배경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부산포'로 부산의 역사와 향토 이야기를 3부작에 걸쳐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는 지역의 이야기를 소설로만 펼쳐놓은 것이 아니라, 부산의 역사를 다룬 역사서를 직접 저술하기도 했다. 그렇게 써낸 지역 관련 서적이 15권으로 그가 펴낸 12권의 문학책보다 오히려 많을 정도다.

선사 시대부터 조선 후기, 개항과 일제 강점기를 거처 현대에 이르는 부산의 전 역사를 다룬 '부산 7000년, 그 영욕의 발자취'를 비롯해 '부산항', '부산의 맥' 등의 역사서 등을 펴냈다. 최근에는 '부산 이야기 50마당', '부산 이야기 62마당' 등 부산의 역사와 풍속, 이야기 등을 수필 형식의 짧은 글로 엮어 펴냈다.

그가 이렇게 부산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동래고 교사로 재직하던 때이다. 한 학생이 '과정천'에 빠진 일이 있었는데, 그 과정천이 국어 교과서에 수록돼 있던 '정과정곡'과 관련된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그 이후 그는 학교를 옮길 때마다 인근의 역사유적 등을 꼼꼼히 챙겨다니면서 지역에 대한 지식과 자료가 늘어갔고 소설 창작에도 반영되면서 지역에 관한 관심과 애정을 본격적으로 가지게 된 것이다.

■제도권과 재야의 연결 주영택

   
주영택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 원장
주영택은 보통 재야 사학자들이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지역사에 관심을 둔 데 비해 해당 분야에 대한 학문적인 교육을 받은 편에 속한다. 부산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경성대 역사교육 석사 학위를 받은 데다 오랫동안 역사교사로 재직했기 때문이다. 부산시사편찬위원을 거쳐 국사편찬위원회 부산사료조사위원을 맡는 등 그의 작업은 제도권과 재야에 걸쳐 있다.

지역사에 관한 관심은 역사교사로서의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학생에게 역사를 가르치면서 비슷한 시기 실제 우리가 사는 고장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고 어떤 문화재와 전설이 존재하고 있는지 아는 것이 없다는 자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주말이면 관련 문헌을 보고 현장을 찾아 촌로들의 입을 통해 하나씩 자료를 모으는 등 탐사를 해왔다. 그의 작업은 이렇게 발품을 팔아 문헌기록과 현장을 연결함으로써 역사를 복원하는 것으로 제도권과 재야에 걸친 그의 이력이 충분히 발휘되고 있다.

이를 통해 해운대 지역이 조선 왕실 소유의 땅이었다는 것을 밝혀냈고, 기록으로만 내려오던 조선 시대 주요 교통로였던 영남대로의 한 구역인 황산도 옛길을 복원해 냈다. 또한, 다른 사학자들과 함께 부산의 지명을 10년간의 현지답사와 노인들의 구전을 통해 옛 땅이름을 바로잡고 내력까지 밝힌 6권의 '부산지명총람'을 펴내기도 했다. 최근에는 그가 채집한 부산의 전설 350편에서 63편을 가려 국제신문에 '주영택이 발로 찾은 부산의 전설 보따리'를 연재했다.

■향토사학에서 민속학까지 주경업

   
주경업 부산민학회 회장
주경업은 본래 화가다. 그러나 예술적 재능이 풍부하여 미술뿐 아니라 문학, 음악 등에도 관심이 많았다. 국악에 관한 관심은 춤판, 굿판, 놀이마당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지게 되고, 이를 찾아다니며 기록하면서 지역의 민속과 역사로도 관심을 넓혔다. 그러면서 그가 만든 것이 부산민학회다. 그가 말하는 민학(民學)은 '백성의, 백성을 위한, 백성에 의한 그 무엇에 대한 학문'이다. 즉 민중의 삶에 관한 관심이 바로 그것이었으며 그들이 사는 삶의 현장이 바로 지역이다.

1994년 창립된 부산민학회를 중심으로 부산의 민속과 역사를 124회에 걸쳐 답사했고 이를 자료집으로 엮었다. 그 이후로도 '부산 근대문화지도', '역사와 문화현장체험:부산을 배웁시다', '인물기행:부산의 꾼·쟁이를 찾아서', '낙동강 물길따라 역사따라', '부산학, 길 위에서 만나다' 등 10여 권의 서적을 펴냈다. 


# 영화·미술사로 향토사학 확장

◇ 홍영철

- '부산근대영화사' 발간

◇ 이용길

- 지역미술사 초석 놓아

   
홍영철(왼쪽), 이용길
기존 향토사학이 지역사 일반에 대한 것이라면 최근에는 특정 분야와 관련해 지역의 자료와 기록을 수집해 정리한 재야학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부산은 영화의 도시로 주목받고 있다. 이를 역사적으로도 채워나가는 작업을 하는 이가 홍영철이다. 그는 본업이 무역업이지만, 한국영화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데 40년 이상을 바쳐온 사람이다. 그가 모은 영화 관련 자료는 90여 년 전 일제 강점기 때부터 영화 포스터, 전단, 신문광고, 신문기사 등 10평짜리 사무실 두 개 분량에 달한다. 그는 이 자료들을 바탕으로 '한국영화자료편람'과 '부산근대영화사' 같은 책을 발간했다. 지난해 부산국제단편영화제 기간 그가 소장한 영화자료 전시회가 부대행사로 열렸다.

   
이일래
미술 분야에서도 지역 미술의 흘러온 자취와 기록을 모아온 이가 있다. 판화가 이용길은 부산에서 열린 미술전시의 팸플릿과 포스터, 기사 등을 50년 동안 꼼꼼하게 수집해왔다. 그의 자료 덕분에 미술사를 주제로 논문을 쓴 석·박사들도 20여 명에 이르며 서울과 외국의 미술관계자들도 이를 이용하기도 한다. 2007년에는 많은 사람이 이용할 수 있도록 10t 트럭 한 대 분량의 자료와 미술 관련 서적을 부산시립미술관에 기증했다. 그 역시 이를 바탕으로 '부산미술사료', '부산 미술사 연구를 위한 사료 정리', '가마골 꼴아솔 누리' 등 3권의 책을 집필했다. 그의 저작과 자료 덕분에 부산 미술사가 학문적으로도 정립될 수 있는 초석을 놓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일래 부산대 사회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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