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 신고 3개월 만에 모습을 드러낸 양재혁 전 삼부파이낸스 회장이 23일 부산의 한 커피숍에서 그간의 행적과 향후 계획 등에 대해 밝히고 있다. 김성효 기자 kimsh@kookje.co.kr

- 7월초 하씨 측서 전화 연락
- 속초서 만나자해서 집 나서
- 대리인과 함께 옮겨다니며
- 수차례 접촉 시도 끝내 무산
- 돈 떨어져 부산으로 내려와

- 종적감춘 하씨 소재 파악이
- 은닉재산 실체 풀어줄 열쇠

삼부파이낸스 양재혁 전 회장이 3개월 만에 나타나면서 왜 잠적했는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에 의문이 일고 있다. 그는 그동안 수천억 원대로 알려진 삼부파이낸스의 남은 재산을 관리하는 정산법인 대표 하모(63) 씨를 찾아다녔다고 밝혔다.

■만나지 못한 '은닉재산' 관리인

잠적했을 당시 대구의 한 대형마트 CCTV에 찍힌 양재혁 (원내)전 회장. 양 전 회장은 "행적을 알리기 위해 일부러 아들의 체크카드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국제신문 DB

23일 만난 양 전 회장은 "처음부터 자작극은 아니었다. 하 씨가 들으면 웃을 일이다"고 잘라 말했다. 그가 밝힌 지난 3개월의 행적을 재구성해 보면 이렇다.

지난 7월 6일 인천에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상대방은 "양재혁 회장이시냐. 하 씨를 만나려면 13일 오후 6시까지 강원도 속초 방파제로 와라"라고 말한 후 끊었다. 양 전 회장은 고민 끝에 동생 등 지인에게 이 사실을 알린 후 약속한 장소로 갔다.

약속 시간 30분이 지나자 한 명이 나타났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이 사람은 자신이 하 씨의 대리인이라고 밝혔고, 바로 양 전 회장의 휴대전화를 빼앗아 배터리를 분리했다. 대신 수신만 가능한 노키아 휴대전화를 줬다.

속초에서 하룻밤을 보낸 양 전 회장은 다음 날 옷을 갈아입기 위해 이 대리인과 함께 자신이 거처하고 있던 서울 역삼동의 고시텔로 갔다. 이때 배터리가 없는 자신의 전화기는 두고 나왔다. 고시텔을 나온 양 전 회장 일행은 바로 택시를 타고 경북 울진으로 넘어가서 또 3일을 보냈다. 이후 이 대리인은 다시 포항으로 가자고 했고 이곳에서 또 3일을 보낸 후 이번에는 대구로 가자고 했다. 양 전 회장은 "이때 현금이 500만 원가량 있었다. 하지만 행적을 일부러 알리기 위해 아들의 체크카드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양 전 회장에 따르면 이 대리인은 하 씨를 선처해 달라고 요구했고, 양 전 회장도 잡히는 것보다는 자수하는 것이 좋다고 회유했다고 한다.

지난 8월 30일 이 대리인은 양 전 회장에게 "하 씨와 함께 갈테니 원룸 인근에 있는 호텔에서 만나자"고 했다. 하지만 4시간이 지나도 하 씨는 나타나지 않았다. 대리인은 "하 씨가 11월 30일에 자수를 할 것이다. 그렇게 알고 있어라"는 말을 남긴 후 사라졌다.

양 전 회장은 과거 자신이 회장으로 있을 때 경호원이었던 A 씨와 함께 하 씨를 찾아나섰지만, 하 씨의 행방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수중에 돈이 떨어진 양 전 회장은 지난 22일 부산으로 내려왔고, 돈을 융통하기 위해 남구 대연동의 한 커피숍에서 지인을 만나려다 자신을 알아본 커피숍 직원이 경찰에 알리면서 숨바꼭질은 막을 내렸다. 그는 "2006년 잠적한 후 하 씨와 만나서 1000억 원을 받기로 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고 밝혔다.

■은닉재산 실체 풀 하 씨 행방은

이번 실종 소동과 피해자 변제 등 삼부파이낸스 사태의 핵심에 있는 인물은 재산을 관리해온 하 씨다. 하 씨가 어디에 있는지, 그를 찾을 수 있는지가 사건을 풀 핵심인 셈이다. 하 씨는 현재 양 전 회장 등으로부터 회사자금 횡령 혐의로 고소된 상태이며 2010년 자수해 조사를 받다 다시 잠적했다. 그후 지난해 4월 경기도 여주에서 불심검문에 걸려 부산으로 인계된 후 경찰 조사를 받았으나 당시 양 전 회장이 해외에 나가있었던 데다 48시간 내 혐의점을 밝히지 못해 석방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은 "당시 양 전 회장 이외의 고소인과 대질심문도 벌였지만 혐의를 다 확인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와 별도로 지난 3월에는 하 씨가 세운 법인에서 이사와 재무담당 차장으로 일하면서 회삿돈 58억여 원을 빼돌린 혐의로 장모(67) 씨와 김모(47)씨가 각각 징역 6년과 4년을 선고받았다.

■'허위 실종사건' 결국 입건

사건을 담당한 연제경찰서는 23일 양 전 회장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이에 앞서 양 전 회장이 감금·협박으로 실종된 게 아니라 단순 잠적한 것으로 결론이 나면서 양 전 회장이 처벌을 받을 것인지에 관심이 쏠렸다. 경찰은 양 전 회장의 동생이 한 실종 신고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보고 있다. 양 전 회장 역시 단지 연락을 하지 않은 것에 불과해 애매하다는 것이 경찰의 입장이었다. 또 양 전 회장이 행적을 밝히지 않은 이유에 대해 "현재 수배돼 있는 하 씨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밝힌 것도 하 씨 자체가 범죄 혐의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닌 상황이다.

경찰 관계자는 "양 전 회장이 실종이 아니라 잠적이어서 어떤 법을 적용시킬 지 애매한 부분이 많았다"며 "하지만 본인이 실종 신고 사실을 알고 있었던 점 등을 감안해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를 적용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