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직 대기자의 고달픈 삶
- 회사 수주난 11월 출근 난망
- '강성 꼬리표' 탓 재취업 고배
- 투쟁위 모임도 거의 와해
- "쌍용차 해고자 심정 이해돼
- 희망버스 격려자들에 미안"
"복직이요? 간절히 원하지만, 실제로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지난해 여름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앞에서 오른 주먹을 치켜들고 '정리해고 철회'를 외치던 우렁찬 목소리는 사라지고 없었다.
조선소에서 30년 넘게 일하다 해고된 김모(50) 씨의 음성에는 쓸쓸함만이 가득차 있었다. 그는 지난해 노사 합의에 따라 오는 11월 복직하기로 돼 있다. 그러나 한 척의 수주도 받지 못하고 있는 현재 회사 여건상 다시 회사로 돌아가는 건 허황한 꿈만 같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은 "노사 간 약속을 계속 어겨온 사측이지만, 모든 국민이 지켜보는 데서 합의한 만큼 전부 복직시켜 줄 것"이라며 "이마저 어기면 노동계의 중대한 도전을 받을 것이다"고 했다. 또 김 지도위원은 "다시 크레인에 올라가는 일이 있더라도 회사가 노사 합의사항을 지키도록 할 것"이라며 힘주어 말했다.
김 씨의 수중에는 한 푼의 돈도 없다. 사측으로부터 지난해 11월 1000만 원의 생계지원금과 지난 4월 300만 원의 추가지원금을 받았지만, 빌린 돈을 갚는 데 모두 써버렸다.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선박 관련 중소기업 5곳에 원서를 냈지만, 번번이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많은 나이보다도 강성노조 출신이라는 꼬리표 탓인 듯했다. 그는 "일부 동료가 다른 곳에 취업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이 나와 같은 처지"라며 "지난해 해고자 지원을 위해 사측과 부산시, 고용노동부 등이 4자 협의체를 꾸려 재취업에 도움을 주기로 했지만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조합원 94명이 활동한 정리해고투쟁위원회는 지난해 말까지 매주 정기모임을 갖고 사태 해결 방안에 대해서 논의를 이어갔다. 그러나 현재 이 모임은 거의 와해된 상태다. 김 씨는 "예전처럼 강경 투쟁한다고 해도 더는 얻을 것이 없다"며 "비정기적으로 한 번씩 모이고 있지만, 친목 도모 수준에 그친다"고 했다.
김 씨는 온종일 집에서만 지낸다. 답답하지만 그냥 참는다. 집 밖으로 나와봐야 돈만 쓸 뿐 얻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저절로 우울증이 생겼다. 김 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의 심정이 이해가 됐다"며 "나도, 다른 동료도 더 힘들어져 순간 극단적인 생각을 할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부산본부가 지원하는 심리치료를 받기 위해 한 달에 두 번가량 김해 집에서 부산으로 갈 때가 유일한 외출이다.
희망버스를 타고 자신들을 찾아준 이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 그는 "전국에 만연한 노사분규 사업장을 찾아 힘을 보태주기로 했었는데 약속을 지키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의 꿈은 오로지 '복직'뿐이다. 김 씨는 "정년까지 얼마 남지 않았지만 꼭 다시 회사로 돌아가고 싶다. 젊은 시절처럼 부산을 대표하는 기업을 만드는 데 한몫하고 명예롭게 퇴직하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는 현재 김 씨와 같은 처지의 복직대기자가 94명이나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