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반도 비핵화 촉진역할 악영향
- 트럼프와 ‘원포인트’ 회담 거론
- 한일 정상회담 가능성도 낮아져

칠레 정부가 다음달 예정됐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무산을 선언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다자 외교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APEC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러시아와 양자회동을 추진하고 멕시코 공식방문 일정도 짜 놓았던 청와대는 적잖이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정부는 11월 APEC 정상회의와 12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를 개최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 달째 진행 중인 반정부 시위가 원인으로 보인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31일 기자들에게 보낸 메시지를 통해 “(APEC 정상회의) 취소 소식을 들었다. 앞으로의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애초 문 대통령은 오는 3일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태국에서 열리는 아세안+3 정상회의와 동아시아정상회의에 참석한 데 이어 APEC 정상회의 참석과 멕시코 순방을 할 예정이었다. 11월의 절반 가량을 다자외교에 집중하는 시간표다. 특히 APEC 정상회의 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열 번째 정상회담을 갖고 북미 대화를 중재할 가능성도 높게 점쳐진 상황이다. 아울러 북한의 입장을 지지하는 중국·러시아 정상과의 회담을 갖게 된다면 중국·러시아를 통해 북한의 의중을 상세히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APEC 정상회의 무산으로 인해 한미 정상이 직접 대면할 기회가 사라짐에 따라 한미 정상은 전화통화 등의 방식으로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논의를 가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5월 7일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고 북한의 발사체 발사에 대한 입장을 논의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APEC 정상회의는 무산됐으나 멕시코 공식 방문은 양국에 사전에 논의된 일인 만큼 멕시코 공식 방문을 진행하고 ‘원포인트’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문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다만, 청와대가 멕시코 측과 협의해 공식방문을 취소할 수도 있다. 미국 방문 일정을 준비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점에서 방미 가능성도 낮아보인다.

이와 함께 APEC 정상회의에서 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한일 정상회담 가능성도 제기됐으나 APEC 무산으로 인해 한일 관계의 냉각기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지난 24일 일왕 즉위식에 참석한 이낙연 국무총리를 통해 정상회담이 필요하다는 뜻을 아베 총리에게 전했으나 일본은 다음 달에는 회담을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경 기자 tgki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