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8일 야권이 요구해온 '국회 추천 총리'를 수용하는 것으로 '최순실 정국' 수습에 나섰다. 지난 2일 참여정부 정책실장 출신인 김병준 국민대 교수를 책임총리 카드로 꺼낸 지 6일 만에 사실상 철회한 것이다. 하지만 야권이 박 대통령의 '2선 후퇴'와 '총리의 조각권 보장'을 요구하고 있어 정국 수습의 분수령이 될지 아직 예단하긴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이 8일 오전 '최순실 국정 농단' 파문으로 말미암은 정국 혼란 수습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국회의장실을 방문해 정세균 국회의장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을 만나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총리를 추천해 준다면 그 분을 총리로 임명해 실질적으로 내각을 통할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영수회담의 조건으로 김 후보자에 대한 지명 철회를 주장하는 야권의 요구를 사실상 수용했고, '실질적인 내각 통할'도 약속했다.

이에 따라 김 총리 내정자와 협의해 발표한 임종룡 경제부총리·박승주 국민안전처 장관 내정자의 거취 문제도 원점으로 돌아갔다. 다만, 경제위기 상황인 만큼 임 경제부총리 내정자에 대해서는 원포인트 인사청문회를 개최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은 이와 관련해 "경제 문제는 급하다"면서도 "이런 사안도 국회와 협의할 것"이라고 자세를 낮췄다.

그럼에도 야권은 박 대통령의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제안을 논의하기 위해 정 의장이 여야 3당 원내대표와 회동했지만, 총리의 실질적 조각권 보장과 2선 후퇴에 대한 박 대통령의 입장을 추가로 확인한 뒤 9일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야권은 박 대통령이 국회 추천 총리가 "내각을 통할할 것"이라고 원론적으로 언급한 것을 일종의 시간벌기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박 대통령이 '공'을 야권에 넘겨 국정 공백의 책임도 분산시키려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우리가 요구한 것은 국회가 총리를 추천하되 그 총리가 실질적으로 일하려면 박 대통령이 손을 떼란 것이다. 총리를 임명한 뒤 권한을 준다고 하지만 밑으로 다 조정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청와대가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에게 총리직을 제안했던 것도 야권 분열을 노린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박 원내대표는 "그런 게 바로 마타도어다. 이런 것에 놀아나면 안 된다"고 말했다.

한편 박 대통령은 오는 18, 19일 페루 리마에서 열릴 예정인 제24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북한 핵실험 등 한반도 안보 상황이 엄중함을 고려해 대통령께서 참석하지 않기로 지난 9월 결정한 바 있다"고 말했다. APEC 정상회의에 우리나라 정상이 불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태경 기자 tgki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