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GDP의 허상을 넘어 ‘삶의 질·행복’ 지표로 나아가야

지난번 칼럼이 나간 뒤 재난 복구시 GDP(국내총생산) 수치에만 집착하면 국민 개개인의 피와 땀과 눈물이 간과된다는 말에 공감한다는 지인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우리가 경제발전지표로 삼는 GDP의 실체를 제대로 볼 필요가 있다. 오로지 시장체제를 통해 돈으로 드러나는 것만 반영하기에 재난 피해자와 가족의 고통, 자원봉사자의 수고 등은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GDP 무용론이 나오는 이유이다. 이제는 GDP를 넘어 ‘삶의 질’ ‘국민행복’ 지표를 찾아야 할 때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코로나19 확산 정도에 따라 우리나라 실질GDP가 0.51~1.02%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파이낸셜뉴스, 2020년 3월 14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2016년에 “GDP성장률 0.1∼0.2%포인트 차이가 과연 어느 정도의 의미를 갖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한계론을 제기한 바 있다.(이타임즈·2016년 5월 29일)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세계 경기 침체 우려로 증시가 폭락하고 있다. 사진은 23일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딜링룸 모습. 연합뉴스

GDP는 ‘일정 기간 동안 한 나라의 영토 안에서 생산된 최종 재화와 서비스의 시장 가치 총액’을 말한다. GDP는 1929년 대공황 때 경제동향 파악의 필요성에서 제기되어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전쟁과 관련된 국가부흥 정도를 측정하는 지표로 주로 이용됐다. 한 나라의 경제규모를 파악하는 게 핵심으로 1953년 GDP통계의 국제기준이 처음 마련됐다.

그러나 GDP는 한 국가의 1년 동안 경제활동의 가치를 대략적으로 보여주는 수치에 불과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GDP를 경제생활의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삼아왔다. 이참에 코로나19사태와 관련해 GDP의 허상을 알아보자.

GDP는 자원봉사활동과 같은 ‘비공식 경제(informal economy)’의 가치를 반영하지 못한다. 코로나19로 고생하는 전업주부의 가사활동은 제외되는 반면 전업주부가 가사도우미로 나서면 GDP증가로 잡힌다. 생산이 따르지 않는 개인 간 또는 정부와 개인 간의 상호이전 경제행위도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재난기본소득이나 긴급생활비 지급은 실업수당과 마찬가지로 GDP증가로 잡히지 않는다. 반면 재난 복구용 토건사업이 늘어날수록 GDP는 올라간다. 사회범죄가 늘어 경찰 경비 수요지출이 증가하거나 미세먼지로 관련 상품이 늘어나고 병원 환자가 늘어날수록 오히려 GDP가 증가한다. 손수 퇴비를 만들고 잡초를 뽑는 유기농보다 농약·화학비료를 많이 쓸수록 GDP가 늘어난다. 또 GDP는 자선이나 사회적 기부를 포함하지 않는다. 앞으로 코로나19 대응 백신이 나오겠지만 개발자가 백신을 국민에게 무상 제공하면 GDP는 올라가지 않는다. 무엇보다 GDP는 경제적 불평등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WEEKLY BIZ’(2018년 12월 14일)에 ‘물질적 가치에만 집착하는 GDP를 넘어’라는 칼럼에서 GDP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스티글리츠는 자신이 참여한 위원회(CMESP)가 10여 년 전에 펴낸 ‘잘못 측정된 우리의 삶: 왜 GDP는 단순 합산할 수 없는가’, ‘GDP는 행복, 즉 삶의 수준을 제대로 측정하지 못한다’는 보고서를 통해 “GDP는 생산된 재화의 총합일 뿐 건강, 교육, 환경 등 가치를 제대로 측정하지 못한다. 그 때문에 GDP라는 계량도구를 일률적으로 들이대면 모든 요소를 물질적인 가치로만 환산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사회적 요소의 가치가 왜곡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 보고서가 나온 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2011년 주택, 소득, 직업, 커뮤니티, 교육, 환경, 지배력, 건강, 생활만족도, 안전, 근로 등 웰빙과 관련된 다양한 지표를 종합평가하는 ‘더 나은 삶의 지수(Better Life Index; BLI)’를 추가로 도입했다. 객관적 지표와 주관적 만족도를 합쳐 계산하는 BLI에서 우리나라는 2017년 40개국 중 30위였다. 우리 국민의 삶의 질이 GDP(2017년 세계 12위)로 나타난 경제지표에 비해 훨씬 뒤떨어지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 BLI지수에도 빈곤, 경제적 불평등, 공해 등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로렌초 피오라몬티 이탈리아 프레토리아대 교수는 ‘Gross Domestic Problem-The Politics Behind the World’s Most Powerful Number(국내총문제-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수치지표 뒤에 숨은 정치)’(2013년)에서 “우리는 측정하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측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우리경제가 2~3% 성장할 때 우리의 삶의 질은 정말 좋아질까? 피오라몬티는 GDP의 ‘내용’ 즉 무엇을 측정하고, 왜 다른 무엇을 측정하지 않는지 이유를 분석해 GDP가 형평성, 사회정의, 재분배와 같은 도덕적 원칙과 얼마나 먼 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이러한 GDP의 맹점을 보완하기 위해 1970년대부터 국제적으로 다양한 지표 개발이 시도돼왔다. NNW(국민순복지)나 그린 GDP 등 새로운 지표의 개발이 그것이다. NNW는 GDP에서 공해, 방위비, 통근시간 등 복지와 관련되지 않는 항목을 삭감하고 여가나 주부노동을 추가했다. 이것은 나중에 ISEW(지속가능경제복지지수), GPI(참진보지수), ISH(사회건강지표) 등 다양한 지표로 발전한다. ISEW는 개인의 소비를 복지의 핵심요소로 보고 여기에 가사노동, 교육보건, 공공지출 등 사회복지 증진요소는 더하고 국방비, 교통사고피해, 환경파괴 손실 등 감소요인을 뺀다. GPI는 ISEW를 수정해 경제활동가치에 생태발자국 등 26가지의 비용 편익을 포괄하는 지표이다. ISH는 영아사망률, 고교 중퇴자, 빈곤, 10대 자살, 범죄, 실직률 등 16가지 분야를 포함한다.

유엔개발계획(UNDP)은 1990년부터 경제개발지수에 덧붙여 인간개발지수, 즉 국민소득, 고용, 교육, 건강, 환경 등의 개념을 취합한 HDI(인간개발지수)를 바탕으로 한 ‘인간개발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영국 신경제재단(NEF)는 HPI(Happy Planet Index: 행복지구지수)를 내놓았다. 지구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국민의 삶의 행복도가 높을수록 지수가 올라간다. 유엔과 세계은행은 SEEA(환경경제통합회계체계)에 따른 EDP(생태적국내생산)라는 녹색GDP계정을 GDP계정에 보조계정으로 추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부탄의 ‘국민총행복(GNH)’은 경제적 삶의 만족도, 즉 행복도에 대한 국민의 조사지표로 질적 평가지표이다. GNH는 2년마다 한 번씩의 청취조사를 실시해 인구 67만 명 중 총 72항목의 지표에 1인당 5시간의 면담을 실시해 8000명의 데이터를 분석해 연간 변화나 지역 및 연령층의 차이 등을 파악한다. 심리적 행복, 건강, 교육, 문화, 환경, 커뮤니티, 좋은 통치, 생활수준, 자기 시간사용 방법이라는 9가지 요소가 지표에 깔려있다. GDP에서 측정되지 않는 ‘심리적 행복’ 요소를 지역별로 측정해 국민의 감정을 나타내는 지도를 만든다. 우리나라도 ‘한국형 GNH’ 조사를 한번 해보면 어떨까.

GNH 조사항목에는 ‘당신이 아플 때 돌봐줄 가족이나 친지가 있는가’를 묻는다. 재난의 시기에 정말 필요한 것은 개인에 대한 위안과 경제적 지원이다. 재난의 시기에는 구약성서 나오는 희년(禧年)과 같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전향적 지원과 불평등의 시정조치가 필요하다. 지금 논란이 되는 재난기본소득제 도입에는 이와 같은 희년의 정신이 들어가야 한다.

재난의 시기에 어려운 사람들을 구하는 일은 당연히 나라가 나서야 한다. 조선시대에도 자연재해와 질병, 곤궁기 등을 대비해 진휼청, 혜민국ㆍ대비원, 의창ㆍ상평창과 같은 구휼제도가 있었다. 또 지금과 같은 재난의 시기야말로 사회 지도층이 자발적으로 사회적 약자를 위해 자신의 가진 것의 일부를 내놓는 ‘노블리제 오블리주’를 실천할 기회가 아닐까. 조선시대 경주 최부잣집이 가뭄·홍수가 났을 때 ‘주변 10리 안에 배곯는 사람이 없도록’ 쌀독을 퍼내 주었다는 미담이 과거의 것으로만 치부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고위공직자, 국회의원, 교수 등 안정된 봉급을 받는 사람들, 특히 국회의원들이 앞장서 세비의 일부를 반납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차제에 교수사회도 개학연기로 어려운 제자들을 위해서 자발적 기부 논의를 해보면 어떨까. 노블리제 오블리주의 물결이 일어날 때 재난극복기금이나 재난기본소득 재원을 제도화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고 공동체성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나눔과 기부문화의 제도화·일상화야말로 재난을 대비하는 사회적 안전판이다. 재난이 일어났을 때 물심양면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이 많고 이러한 지원제도가 정착된 사회야말로 가장 ‘지속가능한 경제구조’를 가진 웰빙사회이다. 전례 없는 비상사태를 맞은 이때, GDP을 넘어서 ‘이타와 연대’를 바탕으로 ‘행복한 지속공동체’ 만들기에 한번 도전해보자. 경성대 건설환경도시공학부 교수 hckim@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