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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책과 세상 <24> 옛이야기가 아이를 살린다

조상의 지혜 담긴 옛이야기 들려줄 때

현실판단·문제해결 능력 키워, 게임에 빠진 자녀들에 중요

한 어머니 "이건 살아있는 경전"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11-17 20:21:20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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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텍사스주 덴트시 초등학교 2학년 교과서에 실린 우리의 전래동화 '흥부와 놀부'의 영어 번안인 '제비의 선물' 표지.
게임을 못하게 한다고 중3 학생이 어머니를 살해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었다는 기막힌 뉴스를 접한 이른 아침, 정신과 의사 하지현 씨가 2005년에 펴낸 책 '전래동화 속의 비밀코드'(살림 펴냄)가 떠올랐다. '한국 전래동화의 정신분석적 접근'이라는 박사논문을 쓴 그는 자신의 경험을 되살리고 자신이 두 아이의 부모가 된 경험을 더해 이 책을 냈다.

'우리 옛이야기를 정신분석학적으로 풀어낸 최초의 책'이란 의미를 지닌 이 책은 옛이야기가 "수백년에 걸쳐 아이들을 효과적으로 가르치기 위해 치밀하고 정교하게 가다듬은 '교재'"이며 "그만큼 임상적으로 검증된 도구라"고 말한다.

옛이야기란 무엇일까. 어렸을 적 듣고 자란 그 이야기에 대체 무엇이 숨어있을까. 생각해보면 별것 아니다. 흥부와 놀부에서 형제 간의 우애를, 효녀 심청에서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을 아이에게 전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이야기는 올바른 마음을 갖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인간세상의 오랜 약속을 어린이에게 전해준다.

억울한 마음, 괴로운 마음, 무서운 마음을 다스리기에는 아직 자아가 약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아이들이 겪고 있거나 겪게 될 문제들을 미리 보여주면서 나름의 해결책을 가르쳐주는 조상의 지혜가 암호처럼 숨어있는 것이 옛이야기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이들은 자신만이 어려움을 겪는 게 아니라는 것에 안도하게 되고, 사회적 관계들을 미리 경험하며, 이야기 속 주인공을 흉내내면서 현실판단능력과 문제해결능력을 키우게 된다. 수백권 책으로도 해낼 수 없는 교육적 효과와 가치를 갖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 민족의 전통적 가치관과 정서를 강요하지 않고도 고스란히 전해줄 수 있다.

자기 나라 옛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전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우리나라에 시집온 외국인여성들이 증명한 예가 있다. 부산 북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지난 8월부터 지역공동체사업의 일환으로 베트남 필리핀 우즈베키스탄 등 다문화가족 어머니들을 모아 손수 자신의 모국 전래동화, 창작동화, 동요를 번역하고 구연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 작업 결과물을 직접 책으로 만들었다.

이는 학자나 전문가가 이 여성들에게 '조상 대대로 내려온 가치관과 정서와 지혜를 전달해야 한다'고 가르쳐서 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한국에서 태어났으나 자신의 피를 절반은 이어받은 아이에게 전해주고 싶은 옛이야기가 있다는 마음이 우러났기 때문일 게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림동화'는 독일의 언어학자이며 문헌학자였던 형 야코프 그림, 동생 빌헬름이 독일 전역의 옛이야기와 전설을 수집해 예술적으로 표현하고 다듬은 결과물이다. 독일 언어와 문헌을 연구하던 그들은 옛이야기 속에 그 모든 것이 담겨있음을 간파한 것이다. 그림동화는 게르만 언어와 문화와 가치관을 전세계 어린이들에게 오늘도 전하고 있다.

한국도 옛이야기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활발한 움직임이 있다. 재미화가 허유미 씨에 의해 '흥부와 놀부'가 2009년 텍사스주 댈러스 북쪽 덴트시의 샘휴스턴 초등학교 2학년 학생들의 읽기 교과서에 '제비의 선물'이란 제목으로 실리기도 했다. 미국 초등생들이 흥부와 놀부를 읽고, 허유미 씨가 그린 그림을 보며 한복 입는 법과 한국 문화까지 배운다. 해외에 나가 인기를 끄는 연예인들의 상업적 활동보다 수 백 배는 더 가치 있는 진정한 한류가 이런 것 아닐까.

우리에게는 옛이야기를 후세에 전할 책임이 있다. 이야기를 듣고 자란 세대는 다음 세대에게 이야기를 해주어야 한다. 전래동화집을 사주는 데 그치지 말고 아이와 눈을 맞추고, 입말로 이야기하면서 마음을 전해야 한다. 영어단어와 수학공식을 배우는 것보다 인간다운 심성을 지니고, 쉽게 좌절하거나 세상에 주눅 들지 않고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을. 국제신문에 '줌마칼럼'을 쓴 강정아(책과 아이들 대표) 씨의 표현을 따르면 옛이야기를 아이에게 들려주던 어떤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건 살아있는 경전이야."

동의대 문헌정보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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