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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를 찾아서 <29> 김정성 세계해동검도연합회 총재

"칼을 뽑지 않고도 이기는 게 최고의 劍人"

한국의 문화상품인 해동검도 전세계 보급에 열성

"검의 움직임은 몸과 마음상태에 따라 저절로 나와"

  • 국제신문
  • 염창현 기자 haorem@kookje.co.kr
  •  |  입력 : 2008-06-05 19:09:20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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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늦게 빼고 먼저 베야 한다. 검을 늦게 빼는 이유는 상대의 기를 제압하기 위한 것이고 상대에 대한 한민족의 양보의 미덕이다.… 그러나 최고의 검인은 검을 뽑지 않고 승리하는 것이다'.

부산 남구 감만동의 사단법인 세계해동검도연합회 총본관. 도장 벽에 붙은 글귀가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다. '검을 뽑지 않고 승리하는 것이 최고의 검인이라…'. 묘한 말이다. 무도인의 궁극적인 목적이 이기는 것에 있음은 누구나 수긍하는 터. 근데 어떻게 일합을 겨뤄보지도 않은 채 상대를 굴복시킬 수 있다는 말일까.

궁금증은 김정성(52) 세계해동검도연합회 총재와의 대화 도중 풀렸다. 김 총재가 영국에 갔을 때의 일화. 현지 세미나 후 화장실에 들렀는데 키가 190㎝은 족히 될 듯한 한 흑인이 시비를 걸었다. 알고 보니 그는 킥복싱 선수. 덩치나 신장이 김 총재와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일촉즉발의 위기. 그러나 대결은 이뤄지지 않았다. 김 총재가 그 흑인에게 말했다. 힘이 있어 겨루는 것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칼은 싸움의 도구가 아니라는 것이다. 칼은 다만 심신수련의 도구다. 해동검도는 절대로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라고. 살기등등하던 흑인도 오랫동안 운동을 했던 실력자. 고수끼리는 한 수만 손을 섞어도 서로를 알 수 있지 않다던가. 마침내 그 흑인은 김 총재의 말에 수긍의 뜻을 나타냈다.

하지만 세상에는 막무가내로 고집을 피우는 사람도 있게 마련. 이쯤되면 김 총재는 어쩔 수 없이 목검으로 한 수 지도를 한다. 게다가 진검으로 베기 등을 시연하면 애초의 혈기는 간 데 없이 대부분 고개를 숙이고 만다.


   
두 개의 칼을 이용한 쌍검동작을 선보이고 있는 김정성 세계해동검도연합회 총재. 아래 사진은 신문지 베기 시범. 박수현 기자 parksh@kookje.co.kr·
해동검도는 스포츠가 아니다

해동검도는 국내외적으로 상당히 알려진 무술. 한때 모 유명 탤런트가 해동검도의 고수라고 알려지면서 더욱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여러 단체가 생겨 일반인으로서는 옥석구별이 쉽지가 않은 실정.

김 총재도 이런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사회에서 보는 우려의 시선과는 명확한 선을 긋는다.

"태권도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같은 태권도지만 ○○관, △△관 해서 수많은 도장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올림픽 등에는 단체의 구별없이 태권도라는 하나의 이름아래 출전을 합니다. 해동검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름대로 해동검도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거지요. 다만 해동검도를 배우고 싶다면 그 도장이 얼마만큼 활동을 하고 있는지를 먼저 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해동검도는 예부터 내려온 전통수련방식을 바탕으로 현대인에게 맞게 재구성한 것. 단전호흡을 비롯해 검법 베기 격검 등의 수련방법이 있다. 그러나 김 총재는 궁극적으로 해동검도는 스포츠가 아니라 무술이라고 단언한다. 따라서 일정한 경기규칙에 따라 수련을 하는 일부 검도와는 비교를 거부한다. 점수에 의해 승패를 가리는 식의 검법은 무술로서의 존재가치를 상실했다는 이유에서다. 그건 무술이 아니라 스포츠라는 것. 이런 까닭에 김 총재는 해동검도를 그냥 해동검도로 봐주길 원한다. 어느 검도가 더 뛰어난가라는 식의 질문은 그야말로 우문(愚問)이라는 게 김 총재의 지론이다.

그래서 김 총재는 어떤 무술이든 간에 강하고 약함은 없다고 본다. 강하다는 것은 수련하는 사람의 태도에 달렸다는 것이다. 김 총재는 극단적으로 모든 무술은 다 똑같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이는 두 손과 두 팔, 두 다리를 움직인다는 점에서 무술의 기본 원리는 일치한다는 전제에서 비롯된다. 다만 그것을 행하는 이들의 표현양식이 서로 달라 사람들의 눈에 다르게 보일 뿐이라는 것이다.

김 총재의 이런 생각은 우리나라 무술계에 널리 퍼져있는 '단(段) 숭배' 풍토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내 무술의 합계가 몇 단이오'라는 식의 자랑은 정말 불필요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무술을 하는 데 단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단이라는 건 수련생에게 성취도를 부여하기 위한 하나의 체계죠. 솔직히 말해 심신수련에 무슨 단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단에 연연하는 사람을 보면 말합니다. 그까짓 단 없어도 혼자서 열심히 잘하면 된다고요."

검보다는 마음이 우선

   
김 총재의 해동검도는 쌍검이 특징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한 자루의 검으로 수련하는 것보다 검법을 한단계 발전시켰다고 볼 수도 있다. 쌍검은 훨씬 다양한 동작을 펼칠 수 있다.

하지만 보통사람이라면 한 자루의 검도 제대로 건사하기 어렵기 마련. 검 두 자루를 사용해야 한다면 우선 주눅부터 들기 일쑤다. 그런데 뜻밖에 김 총재는 그렇지 않다고 손사래를 친다.

"검 한 자루를 가지고 있으나 두 자루를 가지고 있으나, 아예 없으나 마찬가지입니다. 길이도 관계가 없습니다. 오른쪽 칼이 길든 왼쪽 칼이 길든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검이라는 것은 부차적인 것이죠. 몸과 마음의 흐름에 따라 검은 저절로 따라오게 됩니다. 즉 검은 몸의 움직임에서 나오는 표현을 나타내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알송달쏭하다. 말이 어렵다. 하긴 고수의 경지를 일개 필부가 무슨 수로 이해하겠는가. 요컨대 겉으로 보이는 모습보다는 내공의 힘이 더 중요하는 뜻인 듯하다. 자신이 쥔 칼이 살상용이 되는가, 아니면 심신단련용이 되는가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 달린 것이 아니던가.

쌍검은 고수만이 할 수 있다는 일반인들의 선입견에 대해서도 그렇지 않다고 못을 박는다. 초보자라고할 지라도 제대로 배우기만 하면 얼마든지 쌍검 구사가 가능하다는 것이 김 총재의 주장이다.

"'쌍검=고수'라는 등식은 절대 성립하지 않습니다. 검을 모르는 사람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동안 쌍검은 고수만이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을까요. 그건 가르치는 체계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자신은 쌍검을 할 수 있지만 남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는 몰랐던 까닭이지요. 그러다보니 고단자 외에는 쌍검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할 수밖에요."

김 총재의 말마따나 우리나라에서도 쌍검을 사용하는 사람은 꽤 된다. 그러나 아직 체계화된 이론은 쉽게 찾기 힘들다. 그나마 국내에 소개된 이론은 일본의 '이도류(二刀流)' 정도다. 일본에서는 쌍검에 대한 연구가 상당히 이뤄져 있다.

김 총재는 그동안 두 권의 해동쌍검교본을 펴냈다. 조만간 세 권 분량의 후속교본을 출간할 계획이다. 해서 쌍검에 대한 김 총재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일반인에 대한 보급을 목적으로 쌍검이론을 체계화한 선구자라고 믿는 까닭이다.

바람을 가르는 두 자루 검

도복을 차려입은 김 총재. 왼쪽 허리에 두 자루 검을 차고 우뚝 섰다. 전장에 나서는 무사의 모습이 연상된다. 하나씩 검을 뽑아드는가 싶었는데 순식간에 검이 춤추기 시작한다. 날랜 동작. 불빛을 받은 검의 움직임이 더욱 현란해진다. 두 자루의 검이 버티고 있는 그 공간은 이른바 살상지대. 어떤 무기를 들더라도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는다. 상대방이 설사 긴 창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대나무 베기. 김 총재의 몸짓에 따라 플라스틱 대나무가 하나씩 토막토막 끊겨 나간다. 잘린 대나무의 단면은 매끈하다. 작두를 사용해 작심하고 자른들 이보다 더 예리할 수는 없을 듯.

김 총재가 이번에는 신문지 베기에 나섰다. 호흡을 가다듬은 뒤 내지르는 몸놀림에 신문지가 단숨에 일도양단된다. 거침이 없다. 이번에는 신문지 세 장이 번쩍이는 섬광 한 번에 속절없이 두 조각이 나버린다. 위쪽만 고정된 채 공중에 매달린 신문지를 자른다는 것은 웬만한 검도인들도 엄두를 못낼 일. 아래에서 받쳐주지 않기 때문에 물체에 힘이 제대로 가해질 수 없다. 무턱대고 검을 휘두른다면 그냥 찢어지거나 신문지가 둘둘 말려 오는 게 고작일 수밖에.

던져 베기 역시 놀랍다. 공중에 던져진 테니스 공만한 작은 나무토막 세 개에 정확하게 검이 가격된다. 1초가 채 걸리지 않았을 시간. 그 짧은 동안 공중에서 세 번의 동작이 이뤄진 셈이다. 오랜 수련으로 체득한 탁월한 '동체시력(움직이고 있는 물체를 주시하고 있을 때나 자신이 움직이고 있을 때 사물을 바라보는 능력)'이 없다면 나올 수 없을 터다.

"신문지와 같은 부드러운 물체를 벨 때는 내공을 검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순간속도가 더해져야죠. 베어야 하기 때문에 잡아당긴다는 기분으로 검이 원을 그려야 합니다. 이게 단순히 치는 것과 베는 것의 차이점입니다. 던져 베기 같은 경우는 고도의 집중력과 공간 및 거리 파악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한국의 무술상품인 해동검도

김 총재의 무술인생은 초등학교 5학년 때 합기도에 입문하면서부터 시작된다. 그 이유가 아주 재미있다. 학교에서 뒷자리에 앉은 친구가 하도 때리길래 맞지 않기 위해서다. 이후 중학교 때에는 유도를 했고 대학시절에는 태권도를 수련했다. 좀 더 강해지려고 킥복싱도 배웠다.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그때 자신을 괴롭혔던 그 학우는 나중에 크게 혼났을 것 같다고. 김 총재는 그냥 웃었다. 어떤 상황이 있었는지는 김 총재만 알 일이다.

현재 해동검도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인기가 높다. 현재 미국 등 전세계 40여 나라에 지부가 개설되어 있다. 덩달아 김 총재도 바쁘다. 일년에 절반 이상은 해외에 체류한다. 수시로 세미나를 연다. 해동검도의 세계화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다. 김 총재는 통역없이도 강연이 가능할 만한 영어실력을 갖추고 있다.

일정도 빡빡하다. 김 총재는 얼마 전에도 외국에 다녀왔다. 이달에도 필리핀과 미국 방문 계획이 잡혀 있고 다음달에는 푸에르토리코에 갈 예정이다. 타국의 무도인들도 수시로 김 총재의 도장을 찾는다. 그들에게는 생소한 타국의 무술인 해동검도. 대체 왜 외국인들은 그것에 대해 열광하는 것일까.

"저도 그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일단은 태권도로 유명한 한국의 무술이라는 점이 이유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 같습니다. 또 인터넷을 통한 홍보효과도 무시못한다고 봅니다. 그 다음으로는 저 자신의 노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김 총재는 해동무술을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보고 있다. 더 나아가서는 한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수단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지난 2001년 부산문화회관에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해동검도 공연을 연 것도 이런 생각에서 나왔다. 해동검도를 발전시키려면 수련생들에게 동기부여를 해야 하고 동시에 사람들에게 무술을 널리 알려야 한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작용했다. 올해의 해동검도 공연은 오는 9월 을숙도문화회관에서 열린다. 세계대회는 내년 7월로 일정을 잡았다. 김 총재는 전세계 60~70개국에서 선수들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저는 궁극적으로 해동검도를 태권도와 같은 한국의 대표적인 무술상품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년에 세계대회가 끝나면 향후 2~3년 안에 100개국에 지부를 만드는 것이 또 하나의 소망입니다. 외국인들에게 해동검도뿐 아니라 이를 통해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 등을 알려주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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