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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식교수의 이야기 가야사 여행 <37> 여성성을 빼앗긴 가야산신

건국 신화의 '정견모주' 남성중심 사회에서 여성성 잃어

불교이전의 토착신 해인사 창건때 필요한 땅 빌려줘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7-10-18 20:30:22
  •  |   본지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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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 해인사

우리나라 3대 사찰의 하나인 가야산 해인사로 갑니다. 불교의 세 가지 보물 불(佛)·법(法)·승(僧) 중에 법의 상징 팔만대장경이 있기에 법보사찰(法寶寺刹)로 불리는 해인사(海印寺)는 가야산에 있습니다. 지금 가야산 해인사는 경상남도 합천군이지만, 합천군 소재지보다는 고령군청에서 훨씬 가깝고, 대가야 건국신화의 중심무대도 되기 때문에, 대가야의 역사와 문화에 포함시켜 생각해야 할 부분도 적지 않습니다.

가야산 해인사가 '신정아 사건' 등으로 불교계의 혼탁이 구설수에 오르는 요즈음 경허 스님이나 성철 스님을 더욱 생각나게 하는 불교의 성지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불교 전래 이전에는 대가야 건국신화의 무대가 되는 가야문화의 성지이기도 했습니다. 현재의 가야산과 가야면 같은 지명도 이러한 흔적의 하나이지만, 불교의 성지 해인사에도 대가야 건국신화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국사단 할아버지

일주문을 지나, 사천왕문으로도 전하는 봉황문을 지나면, 가파른 돌계단 위로 해탈문이 우선 눈에 들어옵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곳은 그 계단 아래 오른쪽 귀퉁이에 자리한 국사단(局司壇)입니다. 정면 3칸 측면 1칸짜리의 자그마한 맞배집 안을 들여다보면, 코 밑과 턱에 검은 수염을 수북하게 기르고, 검은 장화에 붉은 옷을 두른 할아버지 한 분이 서 계십니다. 결이 그대로 들어난 나무판에 그려진 초상은 나무 액자에 넣어져 불단 중앙에 놓인 빨간 방석 위에 올려져 있습니다. 이 분이 바로 가람의 수호신 국사대신(局司大神)입니다. 이 분은 불(佛)이 아니라 신(神)입니다. 즉 불교 이전의 토착신으로, 해인사를 짓는데 필요한 땅을 빌려 주었던 토지신이었습니다. 불교가 땅을 빌리는 대신 토착종교의 토지신을 국사대신으로 대우해 모시게 된 것입니다. 아니 빌렸다기보다는 외래종교의 불교가 토착종교의 신성성을 극복하기 위해 이전까지 신성시 되던 공간을 의도적으로 선택했던 결과입니다.

영주의 부석사와 같이 불교는 토착종교의 신성한 공간에, 풍기의 소수서원과 같이 유교는 불교의 절터에, 각각 사찰과 서원을 세우던 것과 같은 논리입니다.

경남 합천 해인사의 국사단(局司壇·오른쪽)과 그 속에 모셔진 국사대신(위).
가야산신 정견모주

어쨌든 해인사가 토착의 토지신에게 빌렸던 땅이 가야산이었고, 그 산신이 할아버지로 그려져 있는 겁니다. 그러나 가야산신은 대가야의 건국신화에서 천신 이비가와 혼인하는 정견모주(正見母主)였습니다. 정견모주의 어미 모(母)와 님 주(主)는 '어머님'으로 새겨질 수 있습니다. '어머님'은 대지의 신이고, 산신은 여성입니다. 천신(天神)이 남성이고, 지신(地神)이 여성임은 세계 공통입니다. 그런데도 해인사에 땅을 빌려주었던 가야산신은 할아버지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일찍이 손진태 선생이 갈파하셨던 것처럼, 원래 여성이었던 산신의 성이 언제부터인가 남성으로 바뀌었던 겁니다. 남성중심사회의 부산물이었을 겁니다. 다행히도 지리산 등에는 아직도 여성의 산신이 남아있습니다. 지리산의 노고단(老姑壇)은 늙을 노(老), 여자 고(姑)의 '할미단'입니다. 이 노고(老姑)는 노구(老)와 같은 용례로 '삼국사기'에도 자주 보여, 국가의 변고를 예고하는 할미나, 영웅을 기르는 모성으로 지신이나 산신과 같이 이해되고 있습니다. 결국 정견모주의 정견(正見)은 8정도(正道)의 하나로, 해인사 성립 후에 불교적으로 채색된 말이겠지만, 모주(母主)는 가야 산신 '할매'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흔적임에 틀림없고, 남성중심사회가 되면서 여성을 빼앗긴 탓에, 수염이 더부룩한 '할배'의 모습으로 남게 되었던 것입니다. 대가야 건국신화에서 가야산신이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할 때, 해인사 이전의 가야산은 대가야 건국의 성지이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신라 말의 최치원이 해인사를 창건한 이정 스님의 전기를 찬하는 과정에서 채록되었던 대가야사의 조각이었습니다. 그런 뜻에서 해인사 아래의 홍류동에 남은 최치원의 자취를 살피는 것도 좋겠지요. 인제대 인문사회대 학장·역사고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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