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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주의 규장각 다시 읽기 <13> 해동제국기

개인 기행문 넘어 조선초 대일외교 지침서

조선 한류스타 신숙주 세종때 서장관 파견

성종 명으로 편찬

일본 견문 체험 바탕 외교관례 체계적 정리

잘못된 부분 계속 보충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6-10-08 22:03:46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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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숙주가 지은 '해동제국기' 서문. 왼쪽 위는 이 책의 표지, 아래는 '해동제국총도'.
우리에게 일본은 언제나 가깝고도 먼 나라이다. 최근에만 해도 2002년 한· 일 월드컵을 공동 개최하고, 일본에 한류(韓流) 바람이 불면서 친근한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듯하다가도, 일본 총리의 신사참배나 독도문제에서 보이듯 조금만 방심하면 우리를 자극하는 나라가 일본이다. 조선시대에도 비슷한 상황이 재현되었다. 조선과 평화를 갈망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다가도 불시에 도발을 할지도 모르는 나라. 일본은 조선에게 그렇게 인식되었다. 체제가 어느 정도 정비되자 조선은 무엇보다 일본을 잘 알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세종이 '검증된 학자' 신숙주(申叔舟:1417~1475)를 통신사의 서장관(書狀官)으로 파견하고, 성종이 신숙주로 하여금 '해동제국기'를 편찬할 것을 명령한 것도 이러한 판단의 결과였다. 15세기 조선에게 있어서 일본은 어떠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었을까?


▲왕명으로 쓴 일본 기행문 '해동제국기'

1443년(세종 25) 신숙주(1417~1475)는 세종의 명을 받들어 일본으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병마에 시달리다가 회복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고 가족들도 긴 여행을 우려했으나 흔쾌히 이를 받아들였다. 그의 나이 27세 때였다. 당시 그의 직책은 오늘날 기록관에 해당하는 서장관으로서 통신정사, 부사에 이어 서열 3위에 해당하였다. 서장관은 외교뿐만 아니라 문장에 특히 뛰어난 사람이 임명되는 직책으로 세종은 집현전 학자로 있던 신숙주에게 큰 믿음을 보였다. 신숙주 일행은 7개월 간이라는 당시로서는 짧은 기간 동안에 외교적 목적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 특히 대마도주와 체결한 계해약조는 당시 외교 현안이었던 세견선(일본이 해마다 보내는 배)과 세사미두(해마다 바치는 쌀)의 문제를 각각 50척, 200석으로 해결한 것이었다. 그가 일본에 도착했을 때 그의 명성을 듣고 온 일본인들에게 즉석에서 시를 써 주어 그들을 감탄하게 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당시 학문에 뛰어났던 통신사 일행은 일본인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조선시대판 '한류' 스타였던 셈이다.

'해동제국기'는 신숙주가 일본에 사행을 다녀온 지 28년이 지난 1471년(성종 2) 겨울에 완성되었다. 이처럼 긴 시일을 두고 완성된 것은 이 책이 단순한 개인 기행문이 아님을 의미한다. 이책은 저자의 일본 사행의 경험을 바탕으로 당시의 외교 관례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완성된 것으로, 조선전기 대일외교의 축적된 경험들이 모아져서 편찬되었다. 1471년에 1차로 완성된 이후 중요한 조약 체결과 같은 외교적 내용이 추가되거나 잘못된 부분은 계속 보충하는 과정을 거친 것은 이 책이 개인 기행문의 성격을 넘어 외교 관례의 지침서 역할을 했음을 분명히 해주고 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해동제국기'는 신숙주의 서문과 7장의 지도, '일본국기(日本國紀)', '유구국기', '조빙응접기'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국기는 천황의 세계, 나라의 풍속, 8도 66주의 군현, 대마도, 등의 항목으로, '유구국기'는 국왕의 세계, 국도(國都), 나라의 풍속, 도로리수(道路里數)의 세부항목으로 구성되었다. 7장의 지도는 해동제국총도, 일본본국지도, 일본국 서해구주지도, 일본국 일기도지도, 일본국 대마도지도, 유구국 지도로서, 이 책의 제목 '해동제국'은 일본 본국을 포함한 부속 도서와 유구국임을 나타내고 있다. 신숙주는 서문에서 '동해에 있는 나라가 하나만은 아니나 일본은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나라이다. 그 땅은 흑룡강의 북쪽에서 시작하여 제주의 남쪽에 이른다. 유구국과 서로 접해 있으며 그 세력이 심히 크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해동제국기'의 일본 지도는 우리 나라에서 만든 목판본 지도로서 현재 전해지는 것 중에서 가장 오랜 지도로 평가받고 있으며, 조선식의 독특한 파도무늬가 바다에 그려져 있는 점이 특징이다.
그러면 신수주가 이 책을 통해서 알리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래의 서문은 이 책의 편찬의도를 알 수 있게 한다. 신숙주는 " ... 그들의 습성은 강하고 사나우며, 무술에 정련하고 배타기에 익숙합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와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서로 바라보게 되었으니, 그들을 만약 도리대로 잘 어루만져 주면 예절을 차례 조빙(朝聘)하고 그렇지 않으면 문득 함부로 노략질하였던 것입니다. ... 신은 듣건대 '이적(夷狄)을 대하는 방법은 외정(外征)에 있지 않고 내치에 있으며, 변어(邊禦)에 있지 않고 조정(朝廷)에 있으며, 전쟁에 있지 않고 기강을 진작하는 데에 있다'고 하였는데 그 말이 이제 징험이 됩니다" 라고 하여 무엇보다 일본에 대한 경계심을 나타내고 교린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미구에 발생할지도 모를 전란을 막기 위해서는 조정의 기강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신숙주는 임종하기 직전에도 성종에게 '일본과의 화호(和好:평화)를 잃지 마십시오'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 나타나는데, 어쩌면 신숙주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00년 전에 이미 일본인의 호전성을 간파하고 일본과의 우호적 관계를 강조한 것이 아닐까?

   
▲일본 외교의 지침서가 되다

'해동제국기'의 '도로리수'란 항목에서는 우리 나라 경상도 동래현 부산포에서 대마도, 미로관 등을 거쳐 일본의 수도에 이르기까지의 거리는 수로가 323리, 육로가 18리(우리나라 리수로 계산하면 수로 3230리, 육로 180리)임을 밝혀주고 있으며, 이어 일본의 8도 66주 및 기내(畿內) 5주에 관해 직접 견문한 내용들을 기록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는 일본의 물산으로 유황과 동철에 관심을 보인 내용이 주목되는데, 이것은 유황과 동철이 무기제조에 필요한 자원이라는 점이 큰 작용을 했던 것으로 이해된다.

'해동제국기'는 완성 이후 대일 외교에 있어 중요한 준거가 되어 외교협상에서도 자주 활용되었으며, 후대의 학자들에 의해서도 그 가치가 자주 언급되었다. 실학의 선구자로 칭해지는 이수광의 '지봉유설', 18세기의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 등에는 모두 '해동제국기'가 인용되어 있다. '해동제국기'는 특히 이후에 일본 사행을 떠나는 통신사들의 필수 서책이 되었다. 조선 통신사들의 일본 기행문에는 일본의 학자들이 조선 통신사에게 '해동제국기'의 존재를 묻곤 하던 기록이 여러 차례 발견되고 있어서 이 책이 미친 후대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해동제국기'는 조선전기 관료학자 신숙주에 의해 저술되어 대일외교의 지침서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그러나 이제까지 신숙주에 대해서는 쿠테타를 일으켜 집권한 세조의 대표적인 참모로 활약한 이유 때문에 '변절자'라는 인식이 강했고, 그로 인해 그의 탁월한 업적조차도 평가절하 되었다. 특히 절친한 친구 성삼문이 단종복위운동에 가담하였다가 처형된 후 충절의 상징으로 추앙되면서, 신숙주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해동제국기'의 저술이나 '경국대전'의 편찬에서 보이듯, 신숙주는 정치와 문물 정비라는 조선전기의 시대적 과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였다. 이제 신숙주라는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그 빛과 그림자의 측면이 균형 있게 제기되어야 할 것이다. 서울대 규장각 학예연구사


◇ 15세기 일본의 풍속
- 사무라이 전통·젓가락·차 문화
- 지금과도 유사한 점 너무 많아


'해동제국기'의 '일본국기' 중 '국속(國俗)' 항목은 일본에서도 자료가 거의 없는 당시의 일본 풍속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나라의 풍속은 천황의 아들은 그 친족과 혼인하고, 국왕의 아들은 여러 대신과 혼인한다. …무기는 창과 칼 쓰기를 좋아한다. …음식할 적엔 칠기(漆器)를 사용하며 높은 어른에게는 토기(土器)를 사용한다. …젓가락만 있고 숟가락은 없다. 남자는 머리털을 짤막하게 자르고 묶으며, 사람마다 단검(短劍)을 차고 다닌다
   
. 부인은 눈썹을 뽑고 이마에 눈썹을 그렸으며, 등에 머리털을 드리우고 다리로써 이어 그 길이가 땅에까지 닿았다. 남녀가 얼굴을 꾸미는 자는 모두 그 이빨을 검게 물들였다. …'('해동제국기', '국속')

이 글에서 15세기 당시 일본의 풍속이 오늘날과도 거의 유사한 점이 발견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일본의 사무라이 전통, 젓가락 문화, 차를 즐기는 풍속 등이 이책 곳곳에 나타나 있어 일본 전통문화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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