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 무료하고 의욕 없던 삶
- 명상 시작 뒤 180도 달라져
- 많은 깨달음 글로 담아내자
- 출판사 17곳서 러브콜 쇄도
- 고정관념 깨는 시각 돋보여

대형선망업계에 종사하는 수산인이 에세이집을 출간했다는 소식에 관심이 갔다. 책 제목도 ‘파도는 잘못이 없다’(덴스토리)로 바다와 관련돼 흥미롭다. 책 앞부분을 읽으면서 저자가 50세 이상인 중년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생활 속에서 느끼는 단상을 잔잔하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저자 김선희(39) 씨를 만나자 30대 후반의 나이에 어떻게 이런 깨달음을 얻고 글을 쓸 수 있는지 놀라웠다.

성신수산 김선희 이사가 일상 속 깨달음을 담은 책 ‘파도는 잘못이 없다’를 소개하고 있다.

그는 현재 부산에서 3대째 수산업을 하는 성신수산에서 이사로 재직 중이다. 할아버지 때부터 국내 고등어 어획량의 꽤 많은 부분을 책임지는 대형 선망어업 선단을 운영해와 그는 유복하게 성장했다. “부족함 없이 자라다 보니 별생각 없이 젊은 날을 보냈어요.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딱히 행복하지도 않았습니다.”

김 씨는 몸만들기에 빠져 헬스장에 살다시피 한 적도 있지만 그것 외에는 관심 있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삶의 무료함에 빠져 있던 그가 세상과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눈을 180도 바꾸게 된 계기는 2017년 시작한 명상 덕이다. “후배의 권유로 ‘마음보기’라는 책을 소개받고 명상을 하면 삶이 달라질까 하는 호기심으로 관련 도서를 여러 권 사보고 꾸준히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해 명상했습니다.”

그는 명상을 하면서 궁금한 게 더 많아졌고 수행처와 스승을 찾아 수행했고 생활 속에서 본연의 나를 마주하고 사랑하는 법을 실천했다. “내가 할 수 있으면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경험하고 알게 된 것을 공유하고 싶어 책을 쓰게 됐습니다.”

김 씨는 자신에게 보이고 들리는 것을 관찰하고 스스로 들여다보면서 깨달은 것을 담담하게 써 내려갔다. 책을 출간하겠다 생각한 이후 두 달 만에 원고량을 채웠다. “따로 글쓰기 연습을 한 적도, 책을 많이 읽지도 않았지만 명상 후 느낀 깨달음이라 쉽게 쓸 수 있었습니다.” 책 한 권 분량의 원고를 쓴 후 여러 출판사에 문을 두드렸다. 삶의 깨달음을 간단하고 명료하게 써 내려 간 글을 보고 17곳의 출판사에서 책을 내자는 제안이 왔다. 신인작가에게는 드문 일이다. 그는 고민 끝에 김형석 교수의 ‘백년을 살아보니’를 출간한 덴스토리출판사와 작업을 했다.

그의 책은 ‘고등어가 내게 말했다’ ‘내 이름은 김선희’ ‘묵묵히 파도를 기다릴 뿐’ 등 6장으로 구성됐다. 1장 ‘고등어가 내게 말했다’는 대형선망업을 하면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서 느낀 바를 담아냈다. 그는 기존 관념이나 선입견을 깨는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봐 눈길을 끌고 있다.

한 예로 고등어를 사체라 표현한 점이다. 여름 위판장 바닥에 버려진 생선 주위에 갈매기와 파리 떼가 들끓는 광경을 보며 죽음이란 무엇인가 생각했다. 사체라는 먹잇감을 두고 갈매기와 파리들이 경쟁하는 모습을 보며 다른 생명의 죽음을 섭취하면서 힘을 얻는 인간을 돌이켜 본다. “한 생명체의 죽음을 더 넓은 관점에서 보면 또 다른 시작일 수 있습니다. 인간도 사후를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때가 되면 또 있는 그대로 존재하면 됩니다.”

2장 ‘내 이름은 김선희’에서는 이름만 듣고 그를 여자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편견에 대해 이야기한다.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깨는 데 제 이름만큼 좋은 예는 없는 것 같습니다. 선희는 여자 이름이 아닌 보통 이름일 뿐입니다. 글을 쓰면서 늘 남을 탓하는 우리의 모습에 대해서도 생각해봤습니다. 서핑을 잘하려면 파도를 탓하지 말고 묵묵히 기다렸다 원하는 파도를 타면 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원하는 흐름이 올 때까지 지켜봐야 그 흐름을 잡을 수 있습니다.” 김 씨는 앞으로 ‘독자와의 만남’을 통해 자기 생각을 전달하고 세상의 이치를 배워갈 계획이다.

글·사진=이은정 기자 ejle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