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근현대사 산증인
- “돈·명예 얻는데 매이지 말고
- 일의 가치 소중히 여겨야
- 인생의 황금기는 60~75세”

100세를 눈앞에 둔 노교수는 70분 강연 내내 400여 청중 앞에서 꼿꼿했고 흔들림이 없었다. 목소리는 부드러우면서 힘이 있었고, 설득력이 강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100세를 살아보니…”로 시작하는 경험담 앞에서는 어떤 반론도, 의문도 맥을 추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동아대학교 인문과학대학과 인문역량강화사업단(학장 및 단장 박은경)이 지난 15일 부민캠퍼스 다우홀에서 김형석(사진)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를 초빙해 ‘2018 인문학대중화사업 인문학 콘서트’를 열었다. 평안남도 대동 출신으로 1920년생인 그는 대한민국 100년 역사의 산증인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6·25전쟁을 겪었고, 북한을 탈출해 한국의 경제·정치발전을 모두 목격했다. ‘행복 예습’ ‘영원, 그 침묵의 강가에서’ 등 숱한 저서를 냈고, 2016년 8월 펴낸 ‘백년을 살아보니’는 10만 부 판매를 기록했다. 지금도 일주일에 서너 번씩 강의를 하는 ‘열혈 현역’이다.

이날 김 교수는 ‘인문학적 사유와 과제’의 큰 틀 아래에서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100년의 경험과 공부, 사유를 토대로 그 누구보다 확신에 찬 어조로 풀어냈다. 그는 “인간이 행복하려면 진리를 알아야 하고, 희망이 있어야 한다. 젊었을 때 ‘(물질 명예 등을 얻어) 즐겁게 사니 행복하다’로 끝내지 말고 성공과 더불어 꿈(이상)이 있어야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중학교 때 윤동주(1917~1945) 시인과 함께 공부했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시인’이 된다 했다. 지금은 병아리 시인이지만 나중에 사회에 큰 울림을 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도 초등학교 4학년부터 철학가가 되겠다 꿈을 가졌고, 지금까지 즐겁고 보람 있게 살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일의 가치’를 소중히 여길 것을 당부했다. 북한에서 탈출했기에 자녀 6명을 포함한 10명의 식구를 건사하기엔 30대 중반 전임강사의 급여로는 너무 빠듯했다. 당시 일의 목적은 무조건 ‘돈’이었기에 타 대학에 가서도 강의를 하고, 돈을 많이 주는 특강 위주로 삶을 꾸렸다. 정신없이 살던 어느 날 대구에 사는 교사 제자로부터 의뢰받은 강연을 마친 뒤 서울로 돌아왔을 때 ‘내 인생을 좀 더 보람 있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미치게 됐다. 김 교수는 “돈 때문에 사는 인생은 가치가 없겠다 싶었다. 소중한 일을 먼저 생각하자는 것으로 마음을 바꾸니 인생관이 달라졌다. 신기한 건, 돈 때문에 하는 일은 돈을 받으면 끝이 나나, 소중한 일을 하게 되면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시 내 앞에 온다는 사실이다”고 역설했다. 이어 그는 “지금 내가 하는 모든 일의 목적은 내 일 덕분에 무엇인가 받아들인 상대방이 행복해하는 걸 보는 거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일을 사랑하지 않는 민족은 복 받지 못한다”고 확신했다.

그는 인생의 황금기가 60세부터 75세라고 말했다. “성장하는 사람은 늙지 않아요. 60세가 되면 제2의 마라톤을 뛰어야 합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행복해지려면 새로운 지식을 추구해야 합니다. 항상 사회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행복의 그릇도 커집니다.” 100세를 살아보니 어떻냐고 묻는다면, 그는 이렇게 답하겠다고 했다. “나는 행복했습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십시오. 지금 새 출발을 하십시오.”

임은정 기자 iej09@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