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표 있는 삶과 노력 강조
- 힘든 시기 겪는 청춘에게
- 희망·위로의 메시지 전해

높지도 낮지도 않은 톤에, 친숙한 경상도 억양. 아버지가 아들딸을 앉혀 놓고 지나온 60년 인생을 들려주듯 편안했고, 살짝 지루하다 싶을 때에는 아름다운 시로 귀를 맑게 해 주었다. 예순을 바라보는 시인은, 20대에게 희망이 되는 한마디 한마디를 건네면서 그렇게 지친 어깨를 토닥였다.

	지난달 31일 동아대에서 초청강연회를 하고 있는 정호승 시인.

지난달 31일 동아대학교 승학캠퍼스 인문대에서 ‘정호승 시인의 초청 강연회-절망의 시대, 정호승과 다시 희망을 찾는다’가 열렸다. 인생의 마무리 단계를 향해 가고 있다고 말한 시인은 “내가 나이가 든 뒤 주변 분들이 좋은 이야기를 해 줄 때가 많았다. 20대에 들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싶어 책을 읽으면서 좋은 구절이나 젊은 세대에게 도움이 될 구절을 메모해 둔다. 여러분이 마음에 담아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란 정 시인은 고등학교 3학년 2학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생각했다. 아무도 시인이 되라고 말한 사람은 없었지만 ‘시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경희대학교 문예장학생으로 입학했다. 그는 “목표를 세우면 목표가 나를 이끈다. 새우잠을 자더라도 고래 꿈을 꾸어야 한다. 20대인 나 자신을 바다라고 생각해야 그 바다에 고래가 살 수 있고, 키울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맞춤 시인 ‘고래를 위하여’(푸른 바다에 고래가 없으면/푸른 바다가 아니지/마음속에 푸른 바다의/고래 한 마리 키우지 않으면/청년이 아니지/…)도 읊었다. 고래를 은유화해 청년들에게 꿈과 목표를 말하고 싶었노라고.

성철 스님과 얽힌 일화도 소개했다. 잡지사 기자로 일할 때 경남 합천 해인사 백련암 주지였던 성철 스님을 취재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당시 스님은 일절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을뿐더러, 만나고자 하면 3000배를 해야 했다. 대책 없이 백련암에 도착한 그가 ‘시인’임을 알아본 원택 스님(현 백련암 주지)의 주선으로 겨우 성철 스님과 함께 길을 걸으며 잠깐 동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스님의 뒷모습만 찍던 사진기자는 잠시 주장자를 세운 채 계단에서 쉬는 스님의 모습에 미친 듯이 셔터를 눌렀다. “와 이리 많이 찍노”라고 나무라는 스님에게 “좋은 장면을 얻기 위해서”라고 하자 화두를 던지듯 하신 말씀이 “사진을 찍으려면 천 번을 찍어라”였다.

정 시인은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때부터 시를 쓰며 힘들 때마다 천 번을 고쳐 써야지 생각하면 어느새 초고가 끝나 있다. 노력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46년째 시를 쓰고, 신작 시집 13권을 냈다. 시를 쓸 때마다 실패한다. 발표했다고 해서 다 성공이 아니다. 그냥 내가 그 정도까지 쓰고 손을 놓은 것이다. 그래서 시선집을 낼 때 이미 발표했던 시도 또 고친다”고 말했다.

노력만큼 시인이 강조한 것은 ‘고통’이었다. 자신의 시 ‘내가 사랑하는 사람’(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을 읊조린 시인은 “고통이 없길 바라면 곤란하다. 고통은 인생을 아름답게 하려고 존재한다. 고통은 그 의미를 찾는 순간 더는 고통이 아니다”고 말했다. 남편, 아들을 3개월 새 잇따라 잃은 고 박완서 소설가가 생전 ‘고통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견디는 것’이라고 한 말을 인용한 정 시인은 “지금 많이 힘들 시기다. 견딜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 살아가는 힘은 견디는 데서 나온다. 견딤이 앞으로의 쓰임을 결정한다”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임은정 기자 iej09@kookje.co.kr